울산의 언어 경관은 어떠한가?
울산의 언어 경관은 어떠한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4.24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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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경관에 빗댄 ‘언어 경관(Linguistic Land cape)’이라는 말이 있다. ‘자연경관’이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경치를 가리킨다면 ‘언어 경관’은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는 교통표지판, 간판, 픽토그램(예:화장실 남녀 그림) 등 눈으로 읽는 모든 언어를 가리킨다. 누구든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입국하면 공항 곳곳에서 한글이 눈에 들어오고 비로소 한국에 도착했음을 느끼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언어 경관은 지배 영역을 표시하는 기능을 갖기도 한다.

사실 ‘언어 경관’에 관한 논의는 제국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제국주의 식민지시대를 거치다 보면 한 지역 혹은 국가 안에서 언어적 갈등이 생겨나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일본도 언어 경관에 관한 연구는 꽤 활발하다.

오키나와의 언어 경관이 대표적인 예다. 오키나와 지역의 고유어인 류큐어(琉球語)와 미군 통치 기간의 영향을 받은 영어 표기, 일본어 표기가 혼용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 재일한국인의 한인타운으로 유명한 오사카 이쿠노쿠(生野?)의 언어 경관도 꽤 유명하다. 1960년대 이곳 조선시장에 걸린 현수막에서 “거짓말 宣傳(선전)에 속지 말자. 期間(기간) 지나 後悔(후회) 말고 永住權(영주권)을 빨리 申請(신청)하자“라는 구절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이렇게 한국어 중심으로 사용되다가 점차 2000년대에 들어 세대가 재일한국인 2세, 3세로 바뀌면서 한국어와 일본어 표기가 병행해서 나타난다. 이 밖에 화교 거주지로 알려진 요코하마 일대의 역사가 오랜 다문화 언어 경관 역시 유명하다.

한편 일본은 일찍이 공공안내표지에서 일본어, 영어 외에 중국어와 한국어를 병행 표기하고 있다. 지하철 역내 대부분에서 4개 국어로 표기된 안내판을 볼 수 있다. 이는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 거주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2000년 이후 급증한 한국인, 중국인 관광객을 의식한 언어 경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언어 경관은 어떤 양상을 띠고 있을까? 한국 사회는 단일언어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영역에서 한글과 영어가 함께 쓰이는 이중언어 환경에 놓여있다. 여기에 한류의 영향으로 중국인과 일본인 관광객이 급증하게 되면서 점차 중국어와 일본어가 병기되는 다중언어의 경관도 늘어나고 있다.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결국 한·중·일 모두 이 같은 언어 경관의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 된다.

울산에도 많은 외국인이 거주한다. 동구 꽃바위 인근에는 현대 외국인학교가 있고, 외국인 사택이 있으며, 그 주변에는 카페, 음식점도 상당수 들어서 있다. 하지만 이곳의 언어 경관이 우리의 주목을 끄는 일은 많지 않다. 이전에 동구의 외국인 거주자는 서양인이 많았고, 그 인근의 음식점도 대개 알파벳으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동양인 외국인도 상당수에 이른다. 체류 목적도 근로자, 결혼이주여성, 유학생 등으로 다양하다. 울산과학대의 경우 외국인 유학생은 2022년 2월 말 기준으로 170명이 재학하고 있다. 국적별로는 베트남이 79명으로 가장 많고, 그다음이 우즈베키스탄 71명이며, 그 외에 네팔, 미얀마, 파키스탄 등이 있다. 학과별로는 글로벌비즈니스학과가 73명으로 가장 많고 그다음이 IT융합학과 37명, 기계공학부 26명, 산업경영공학과 22명 순이다.

울산의 언어 경관에서 다언어 표기를 직접 눈으로 보게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인구절벽 시대에 외국인 거주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점차 증가할 것이고, 다문화 가정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울산의 언어 경관도 앞으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대학가에 축제가 열리면 다언어 경관도 한껏 누릴 수 있을 듯하다.

한국의 다문화시대는 2000년대에 들어 한국인의 입·출국과 외국인의 한국 방문이 모두 증가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한국의 글로벌시대는 ‘Western’, ‘Global’이라는 단어와는 달리 ‘Asian’의 비중이 강하다. 한국 방문의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이들은 아시아인들이며, 한국인이 방문하는 국가 역시 대부분 아시아다. 글로벌시대의 눈높이를 아시아와도 맞춰나가는 다각적인 지혜가 무엇보다도 필요할 것이다.

박양순 울산과학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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