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전후
1972년 전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4.21 22: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반세기…, 한 세기 100년의 절반이다. 없다 있다, 잃다 얻다, 가난 경제, 존재 가치, 퇴보 진보, 창조 비전의 경계에서 혼돈의 순간들은 있었을 것이다.

50년 전 동구의 사진을 본다. 전원적인 농어촌 풍경으로 드문드문 놓인 초가집 몇 채와 바다 풍경이 전부다. 일산 바닷가와 대왕암공원은 눈에 들어오는데 번덕, 전하, 명덕은 지금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 어디쯤이 옛날 살던 곳인지 알 수 없어 손가락을 더듬으며 “여기쯤일 거야” 추측하며 얘기를 나누곤 한다.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중화학공업 시대가 열리고 1972년 3월 23일 ‘현대울산조선소’가 들어오면서 동구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22년 올해로 반세기가 지나고 있다. 바다를 메운 자리에 회사가 들어서고, 들과 산에는 집들이 들어서고, 공장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회사를 위해 살던 터를 내주어야 하는 이주민들도 생겨났다. 없던 것이 생기면서 잃는 것도 생겨났다. 두 가지 모두를 양손에 움켜쥘 수는 없었다.

<현대중공업 그룹 창립 50주년 특별전>이 현대예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동구 주민의 한 사람이 지난 반세기를 둘러본다. 전시는 5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그 당시를 재현해 놓은 듯한 ‘현대울산조선소 기공’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문주 모양의 구조물이 관객을 맞는다. 문주 아래는 건설 당시의 황토흙을 밟고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도록 꾸며놓았다.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보이며 차관 도입에 성공한 정주영 창업자, 조선소도 없이 26만 톤 유조선 2척을 수주하며 조선 산업의 신화를 창조한 회장님과 500원짜리 지폐 사진 앞에서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순간을 사진으로 만난다.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얹는 순간이다. 사람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얻는다.

1973년 현대중공업 시업식을 시작으로 현대미포수리조선소, 엔진사업부, 중전기사업부에서 종합중공업 회사로 발돋움하는 사이 울산 동구는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월급날이면 명절처럼 호황을 누리던 상점들과 골목들이 있었다.

전시된 사료와 기록들은 반세기의 흔적들이다. 사라지고 태어난 것들을 돌아본다. 선박을 건조하기 위한 선표, 세월을 못 이겨 누렇게 변색한 일일 일정표, 급여봉투, 급여명세서, 출입증, 외출증, 승차권, 식권, 사보, 업무노트는 울산 동구를 일으켜 세운 증거물들이다. 각종 야유회, 체육대회, 운동회는 동구민 화합의 장을 일구었고, 한때 끓어오르던 함성들은 울산을 휘감기도 했다.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뜨겁던 그 시절, 우리를 산업역군으로 만들었던 그 날의 현장이 지금을 있게 만들었다.

조선업의 불황은 지역 상인들의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한동안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인구가 빠져나가고 거기에다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빈 점포들이 많이 생겨났다. 2021년부터 조선 경기가 되살아나면서 시장도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 활기를 되찾을 것 같다. 1972년 울산에서 시작한 현대조선소가 2022년 세계 속의 현대중공업 그룹이 되었다. 2030 비전으로 ‘친환경 디지털시대를 선도하는 초일류 조선 해양기업’이 기대된다. 정주영 명예회장님의 불굴의 도전정신을 되살려 나아갈 때라는 생각에 잠긴다.

김뱅상 시인·현대중공업 리포터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