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를 위한 반대도 필요하다
반대를 위한 반대도 필요하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1.30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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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잇살 먹은 친구 중에 사사건건 시비(是非)를 거는 귀찮은 놈이 있다. 이 친구가 끼여 있으면 점심에 음식점을 고르는 일에도 꼭 한번쯤은 덜거덕 거린다.

곰탕집은 자료가 의심스러우니 가지 말자, 자장면은 손짜장이 아니니까 안 간다, 정식 백반은 남들이 먹다 남긴 반찬 다시 내놓는다, 결국은 비싸서 못 가고, 멀어서 못 가니 각자 집에 가서 먹자는 투다. 얼마 전에 이 친구가 등산 가는 모임에 참석하여 예의 트집 잡기를 다시 하였다. 우선 날짜부터 정하고 당일 코스로 다녀올 만한 산을 고르는데 이 친구 하는 말, “야, 이 겨울에 꼭 등산을 가야하냐?”이다. 이야기가 처음으로 되돌아가니까 모두들 어이없어 이 친구 얼굴만을 빤히 쳐다보는데, “왜들 그래? 늙으면 바깥 온도에 신경 써야 해. 낙엽 아래 얼어붙은 등산길, 얼음 밭이야. 낙상하면 6개월이야. 마스크 쓰면 호흡 곤란증이 생겨. 혈압 높은 놈, 올라가다 주저앉고 말아. 아니면 심장 마비야. 등산할 기운 있으면 동네 골목길 쓰레기 줍기나 해.” 하며 돌아 앉아버린다. 모두들 어안이 벙벙했지만 일리 있는 말이라고 등산계획을 수정하여 한 친구의 주말농장을 견학하였다. 그러고서 다섯 명이 한나절 동안 900m²의 밭을 청소했다. 물론 밭을 청소하는 데에도 그 친구의 시비는 따라 다녔다.

지금은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유태인들은 의사결정 회의에서 전원 찬성, 일컬어 전수가결이면 통과되지 않는다고 한다. 반대 의견이 있어야 잘못된 일을 사전에 걸러내는 여과장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기능이 국회의 야당에서, 사회의 시민단체에서, 그리고 언론기관에서 발휘되어야 큰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다. 과속하기 쉬운 자동차 길의 ‘과속방지턱(bumper)’은 귀찮지만 교통사고를 예방한다.

국회의 양원제도도 이와 비슷한 기능을 갖고 있다고 본다. 황색 차선은 말할 것도 없지만 백색 점선으로 된 차선도 없으면 불편하고 있으면 귀찮은 선이다. 도로 공사를 하면서 미쳐 그어 놓지 못한, 없어진 차선 때문에 당황하고 신경이 곤두 선 경험을 해 보았을 것이다. 옛날에 모 일간지가 백지로 나왔을 때, 차선이 없는 자동차 길의 주행과 같은 불안감이 온 나라를 뒤덮은 일이 있었다. 언론의 여과장치가 마비된 상태였다. 요즈음 우리나라 사회여론이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관해 전수가결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고 있다. 왠지 불안해지니, 반대를 위한 반대가 나와야 할 때인 것 같다.

신문이 재미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남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의 이야기를 대개 비판으로 끝내기 때문이다. 내 대신 비판해주어 카타르시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춘향전에 띄어쓰기가 없었듯이 우리나라에는 원래 신문이 없었다. 지금은 이 신문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주어야 민주주의가 다져지는 것이다.

사사건건 시비를 즐기는 그 친구의 젊었을 때 직업은 ‘기록하는 자(記者)’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기록만하지 왜 따지고 드느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 대답, “기록도 기록 나름이다. 바르게 기록하기 위해서 따지고 들다보니까 버릇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친구가 인수위원회에도 있어야 하고 여당과 야당에도 있어야 한다. 모두들 전수가결로 전봇대만 뽑겠다고 덤벼들면 송전탑까지 뽑아버려 정전사태가 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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