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탄신(誕辰) 100주년을 기리며
아버지 탄신(誕辰) 100주년을 기리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3.13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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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필자의 아버지가 태어나신 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자식 된 도리로 칼럼을 통해 아버지를 추모하는 저의 무례함을 부디 혜량하여 주시길 청한다. 선친의 함자(銜字)는 청암(淸庵) 이남규(李南珪)다. 한산(韓山)이씨 인제공파의 자손이다. 필자는 그분의 5남 2녀 중 셋째다. 이 글은 2004년에 자손(子孫) 및 지인들에게만 극소수 발간된 ‘판사(判事) 이남규 회고록’의 머리말을 발췌하여 내용을 정리했다. 아버지는 회고록을 출간한 지 4년 후에 소천하셨다.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보면 전쟁의 연속이었다. 이조말의 일제강점, 만주사변, 제2차 세계대전, 8·15해방, 6·25동란 등을 체험하면서 살아왔다. 나의 고향은 그 당시 38선 이남인 황해도 연백군 유곡면 이포리 즉 백천온천에서 남쪽에 위치한 농촌이었다. 그런데 휴전이 되면서 이북 땅이 되었다. 그리하여 졸지에 고향에서 살고 계시던 어머니와 동생들과 생이별을 하고 만다. 당시에 나는 29세 초임판사로 청주법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과거에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상봉하는 장면을 TV 화면으로 보곤 했다. 각자들의 비읍(悲泣)을 보면서 실제로 이산가족이 된 나로서는 너무나 몹시 슬퍼서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단장의 비애를 참을 수가 없어 술을 마시지 않고는 잠을 잘 수가 없는 비통(悲痛) 비한(悲恨)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울보가 된 나의 이 심정을 무슨 말로 형용할 수 있으리오. 그래서 당신들의 자식이 특별히 내세울 건 없지만 부모님의 뜻에 크게 어긋나지 않게 살아왔음을 알리고 싶을 뿐 아니라, 생전에 효도를 못 하였고 또 산소에 엎드려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있는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보기 위해서 회고록을 쓰기로 결심했다.

나의 판사 시절은 그 당시의 신문에 보도된 기사 및 법률신문사 창립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창간한 법조 50년 야사, 또는 한국인물연구원에서 발간한 ‘한국현대인물열전 33선’에 실린 것을 전재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내가 건강을 위하여 만사를 뒷전으로 미루고 오로지 1965년 봄부터 요가를 수행한 결과, 누구나 열망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부하면서 그 체험과 아울러 다른 나라의 요기(요가의 지도자) 또는 도사들의 글을 옮겨 보았다.”

아버지는 많이 과묵하셨다. 그 옛날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가부장적 아버지였다.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보낸 기억은 나무를 옮기거나 나뭇가지를 자르며 집안 정원을 가꾸던 일이다. 또한 대학(원) 다닐 때 매주 큰 배낭을 메고 아버지를 모시고 삼각산으로 등산 다니던 일이다. 그 당시는 산에서 버너와 코펠에 고기, 밥과 찌개가 허용되던 때였다. 항상 경치 좋은 명당자리에서 구워 먹던 소고기와 매실주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대부분 옆자리에도 늘 오시는 등산객들이라 안면이 있어 서로 자리를 양보하여 지정석과 다름없었다. 젊은 아들이 일요일에 아버지를 모시고 산에 온다고 칭찬도 많이 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한국현대인물열전’에 실렸던 33명 중 한 분으로 그곳에 실린 소제목을 모아 일대기를 소개하겠다. 법조인생 56년, 그리운 어머니, 개성공립상업학교 시절 민족정신 싹터, 만주 국립신경법정대학 졸업, 우덕순 의사(禹德淳 義士)댁 가정교사가 되다, 한이윤 대학후배를 광복군에 보내다, 고등고시에 합격하다, 8·15해방이 되어 귀국하다, 6·25동란 때 인민군 20여명 사로잡다, 임시수도 부산지법 판사 1년 근무, 원주지원장과 서울고등법원 판사, 15년간의 판사직을 사임하고 ′64년 변호사 개업, 세기적인 사건 ‘박태선장로교’ 사건의 재판장, 소신있는 판결로 기존의 판례 깨, 명판결·아름다운 판결 등, 순조어명(純祖御命) 사건 변론 등이다.

과묵한 선친도 당신의 자세한 소개는 원치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간단히 서술했다. 다음에는 40여 년간 수행하신 선친의 요가 이야기를 할 참이다. 비록 나는 요가 수행을 하지 못했으나, 선친과의 술자리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으며 선친도 많은 이들에게 그 좋은 점을 널리 알리고 싶어 하셨기에. 꿈에서라도 아버지가 보고 싶다.

이동구 본보 독자위원장·RUPI사업단장,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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