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까마귀의 이합집산(離合集散)
떼까마귀의 이합집산(離合集散)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3.07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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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겨울철이면 울산을 찾아와 삼호대숲에 잠자리를 정하는 철새가 있다. 깃을 비롯해 몸 전체가 온통 검은 작은 새다. 낙곡(落穀=떨어진 곡식), 풀씨 등이 주된 먹이다. 낮에 활동하는 주행성 조류이며, 울산에서 번식은 하지 않는다. 번식지는 몽골초원, 만주, 러시아, 시베리아 툰드라 등 북쪽 지역이다. 현재는 ‘떼까마귀’와 ‘갈까마귀’로 나누어 부르지만, 옛날 경상도 농부들의 농요에는 ‘갈가마구’로 나타나고, 울산 사람도 ‘갈가마구’라고 부른다.

옛날 기록에는 갈가마구를 비거(??), 한아(寒鴉), 당아(唐鴉) 등으로 표현했다. 비거에는 아조(雅鳥=작으면서 깜찍하고 아담한 새), 소이다군(小而多群=작지만 큰 무리를 이루는), 복하백(腹下白=배 아랫부분이 흰) 등의 설명이 붙어있다. 말하자면 몸집이 작고, 무리를 지으며, 복부가 흰 새임을 알 수 있다. 또 한아(寒鴉)라는 이름에서 추운 겨울에 이동하던 철새임을, 당아(唐鴉)라는 문자에서 옛 중국 당나라 쪽에서 찾아오던 철새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해마다 월동지 울산에서 6개월 남짓(180여 일) 서식하는 떼까마귀는 울산에 머무는 대가를 군무(群舞)로 보답한다. 월동 기간, 특히 12월 초∼2월 말 사이에 일찍 일어나 삼호대숲 근처를 찾는다면 분명 떼까마귀 군무의 경이로움을 체험할 수 있다. 잠에서 먼저 깨어난 떼까마귀는 일정한 시간을 두고 울기 시작한다. 주위에 있는 떼까마귀도 한 마리, 두 마리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이러한 행동은 이른 시간에 무리가 떼를 지어 함께한다. 울음 활동은 보통 삼십 분 넘게 이어진다. 이는 포식자를 향한 경고이자 무리의 결속력을 높이는 집단행동이다.

이윽고 그 울음소리가 최고조에 이르면 서서히 대나무를 박차고 날아서 나오기 시작한다. 이소(離巢=새들이 둥지를 박차고 나오는 행동)는 끝나기까지 4∼10분가량 걸린다. 물론 맑은 날, 흐린 날, 바람 부는 날, 비 오는 날 등 기상 변화에 따라 이소 시각과 경과 시간은 각각 다르다. 그동안의 관찰을 바탕으로 떼까마귀 무리의 기상에 따른 이소 행위의 변화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크게 대(帶)형 이소, 파도형 이소, 불꽃형 이소 등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대(帶)형 이소’는 긴 띠나 긴 끈 모양으로 길게 이어져 둥지에서 벗어나는 행동이다. 바람이 없고 맑은 날에 나타나고 짧게는 1∼2㎞, 길게는 5㎞ 이상 이어진다. 그다음 ‘파도형 이소’는 마치 폭이 넓고 길이가 긴 백사장 해변으로 몰려오는 큰 파도를 떠올리게 하는 행동으로, 검은색의 경이로운 장관이 수십 초 동안 이어진다. 마릿수가 많고 바람이 적을 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불꽃형 이소’는 마치 불꽃이 밤하늘 가득 사방으로 퍼지듯 흩어져 나는 모습으로 바람이 세게 불 때 나타나는 비상(飛翔) 형태다.

떼까마귀는 이소 후 바로 먹이터로 날아가지 않고 이십여 분 동안 공중에서 선회(旋回) 비행을 한다. 해뜨기 30∼40여 분 전이어서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때 떼까마귀 무리는 공중 전체에 골고루 퍼져 날아다닌다. 무리는 선회하면서 끊임없이 울음을 이어간다. 떼까마귀는 이소·비상은 빠르게, 먹이터로 떠날 때의 비상은 느리게 한다. 이는 야행성 포식자를 경계하기 때문에 나오는 행동이다.

이소 후 나타나는 행동은 크게 공중 선회 비상과 전깃줄을 이용한 횃대 조감(鳥瞰=높은 곳에서 내려다봄)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전깃줄 이용 횃대 조감’은 겨울에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떼까마귀 무리가 이소해서 먹이터로 이동할 때 나타나는 헤어지고, 합치고, 모이고, 흩어지는 이합집산 행동은 다름 아닌 생존전략이다. 이러한 행동 양태를 관광산업에 활용하면 울산은 독보적 생태체험관광의 중심으로 우뚝 설 수 있다.

떼까마귀의 자연·생태적 이합집산은 이해관계에 따라 합종연횡(合縱連橫)하는 인간의 행동과는 차원이 다르다. 떼까마귀가 울산을 찾은 것도 이십여 년이 넘었다. 하지만 주요한 가치를 사소하게 여기는 탓인지 울산에서는 아직도 실천은 뒷전이고 말만 무성하다. ‘내뱉는 말이 장(場)보기라면 상(床)다리는 부러진다’라는 속담을 되새겨 본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조류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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