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예술이 되려면
수업이 예술이 되려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1.26 20: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뭐든 반복되면 무감각해진다. 방학도 그랬다. 처음에는 너무 좋았다. 방학이라니. 한 달 가까이 학교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학교에 가야 하는 날이 며칠 있긴 했지만 그건 봐줄 만한 작은 문제였다.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런데 언제부턴가 방학이 무덤덤해지고 있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어느새 방학이었다. 방학이었는데 어느새 개학이었다. 방학을 비슷하게 보내다 보니 방학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겨울 방학에는 좀 특별한 배움이 있었다. 필자가 소속된 철학적 탐구공동체 수업 연구회에서 전국의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직무연수를 운영하게 되었다. 이번 연수는 ‘수업, 철학을 품다. 예술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수업이 왜 예술을 만나야 할까?’ 필자는 도덕 교사인데 말이다. 연수를 통해 얻은 이 질문에 대한 필자 나름의 답은 다음과 같다.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서 얼마나 성장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자. 객관식으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경우에는 답을 하기가 조금 수월하다. 교과에서 알아야 하는 내용으로 시험 문제를 만들고 그 문제를 알게 되면 학생들은 관련되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간주한다. 전보다 더 많이 맞출수록 학생들은 더 많이 성장한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양적 평가는 학생들의 아주 일부분만을 확인할 수 있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의 사랑을 점수로 변환시켜 측정할 수 있을까? 상대방이 나를 사랑한다고 느낄 수 있는 객관적인 척도가 있을까? ‘100점짜리 엄마’라는 구절로 엄마의 사랑을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100점이 시험의 100점과 같은 의미는 아닐 것 같다. 결국 인간은 양적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인간의 평가는 양적인 부분과 질적인 부분을 동시에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참 어렵다.

필자는 아이들과 철학적 탐구공동체 수업을 한다. 수업 시간에 다양한 텍스트를 함께 읽고 탐구하고 싶은 질문을 만든다. 그리고 각자의 생각을 나누게 된다. 철학적 탐구공동체의 특징 중의 하나는 교사가 억지로 결론을 이끌어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생각이 어떤 새로운 상황이나 다른 생각과 부딪히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진정한 친구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으로 탐구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각자가 생각하는 진정한 친구의 모습을 말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친구의 모습이 같을 리가 없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아이들은 일종의 불균형 상태에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대화를 통해 균형을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생각의 폭이 넓어지게 된다. 즉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서로 다른 생각들이 충돌하는 불균형의 순간에 선생님이 끼어들어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 진정한 친구는 이런 친구야.’라고 이야기하면 아이들은 균형을 찾을 필요가 없어진다. 아이들의 성장은 거기서 멈추게 된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균형을 찾아갈 수 있을까? 미묘한 경계가 있다. 청소를 예로 들어보자. 가끔 방이 더러워 보이는 순간이 있다. 아니면 엄마가 큰소리로 청소를 시키는 순간이 있다. 그러면 열심히 청소를 한다. 책상을 치우고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모아서 버린다. 한참을 청소하다 보면 ‘이 정도면 됐네.’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때의 ‘이 정도’는 양적으로 측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미묘한 균형을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한 분별능력이 바로 미적 사유인 것이다.

미적 사유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의 삶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나아가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들은 더 이상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삶을 낭비하지도 않을 것이다. 삶의 매 순간이 소중하고 의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달이나 조언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경험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연수를 듣고 준비하는 필자의 수업이 아이들에게 하나의 ‘사건’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창규 고헌중학교 교사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