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무신불립(無信不立)의 가르침을 돌아보다
설날, 무신불립(無信不立)의 가르침을 돌아보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1.19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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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인 겨울과 곧 올 봄 사이에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불시개화(不時開花)라는 말이 생소하지 않을 만큼 철모르게 피는 꽃들도 있다. 한파 속에 개나리가 핀 곳도 있고, 목련이 조금 일찍 꽃망울을 터트릴 기세라는 소식도 들린다. 지구 위기 탓일 수도 있고, 돌연변이일 수도 있다. 그러는 사이 또다시 설날을 목전에 두고 있다.

평소보다는 들뜨고 붐비겠지만 예전과 같은 활력과 활기는 남 이야기처럼 들린다. 역동성이 줄어든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에는 암울과 우울, 불평과 불만이 자리를 잡았다. 한 번씩 현장을 찾을 때마다 무슨 말을 어떻게 건네야 할지 모르겠다. 어쭙잖은 위로와 격려의 말도 가슴을 후벼 파는 비수(匕首)가 될까 조심스럽다.

대통령과 정부는 걱정하지 말고 조금만 참아달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한다. 벌써 2년째다. 유력정당의 대선 주자들도 말의 성찬만 차리기에 바쁘다. 푸짐한 상차림이지만, 젓가락 갈 곳이 없다. 겉은 화려해 보여도 알맹이가 없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와 정반대다. 검소해도 누추하지 않고 화려해도 사치스럽지 않아야 하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대책은 어딘가 공허하기만 할 뿐이다.

현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대책이 자초한 결과다. 정책을 주문하고 세우고 집행하는 사람들이 현장을 모르거나 애써 외면하기 때문이다. 현장 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다지만 그저 말만 요란할 뿐이다. 최근의 ‘방역패스 논란’이 대표적이다. 백신 미접종자의 출입을 막는 설익은 대책을 내놓았으나 법원은 보란 듯이 제동을 걸기도 했다.

제각각 판결로 서울은 정지되어도 다른 지역은 유효하다며 혼선과 논란이 일자 슬그머니 방역패스 적용을 해제하고 만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한숨 소리만 높다. 접종자 출입시간 제한은 해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도 아예 귀부터 닫는다. 판결 따로, 현장 따로, 대책 따로, 따로국밥의 향연이다.

이러니 정부 정책을 어찌 신뢰하겠나. 무신불립(無信不立) 그 자체다. 믿음이 없는 자리에 애정이 싹틀 수 없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정부가 신뢰를 스스로 허물어버리는 언행은 차고 넘친다. 백신 1차 접종이 75%만 넘으면 마스크 없는 세상을 다시 맞이할 수 있다고 했지만, 결과는 어땠는가. 말 그대로 처참했다. 백신 접종으로 목숨을 잃거나 생명이 위태로운 사람도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백신 접종과 사인에 인과성이 없다며 사실상 무대책으로 일관해 왔다.

또 다른 변이가 출현하자 다시 백신 접종에 매달렸다. 2차 접종이 코로나 사태를 해결하는 신의 한 수라고 했지만, 결과는 어땠는가. 이제는 3차 접종에 사활을 건다지만. 3차 접종을 마친 사람들도 4차 접종을 마음속에 두고 있을 정도다. 이러다간, 한 달에 한 번씩 백신을 맞아야 하는 ‘백신의 일상화’가 뒤따를지 모른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물론,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다. 최상의 대책은 아니더라도 최선의 대책일 수는 있다. 하지만, 꼼꼼하지 못했고, 촘촘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코로나 비상계엄’이니 ‘백신 독재’니 하는 말까지 생겨나고 있다. 정책 당국은 책상에 앉아 꼼수를 부리기보다 이제라도 현장에서 목소리를 듣는 정수에 주력할 때다. 어쩔 수 없는 코로나라도 어쩔 수 없는 대책만 남발해서는 안 된다.

필자도 이제 임기가 5개월 정도밖에 안 남았다. 열심히 현장을 찾았다곤 해도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 정치인이 민생의 현장을 외면하고 존재할 수는 없다. 시민 속으로 더 들어가, 더 많은 목소리를 담아내겠다. 중앙 정부의 미진한 부분은 지방 정부라도 제대로 채울 수 있도록 독려하겠다. 집행부도 비상한 각오로 위기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안수일 울산시의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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