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식용 문화’, 공론화 도마에 올릴 때
‘개 식용 문화’, 공론화 도마에 올릴 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11.25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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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남구 팔등로 언저리에 잠시 발길을 멈추게 하는 세로 간판이 하나 걸려있다. ‘月月亭’이란 한자어 간판이다. 이를 처음 본 행인은 영문을 몰라 하다가 작게 그려진 집짐승 그림을 보고는 겨우 알아맞힌다. ‘영양탕집’이라면 다름 아닌 ‘보신탕집’이다.

이처럼 ‘보신탕’이나 ‘개고기’는 언제부턴가 금기어(禁忌語)가 돼 버렸다. 간판을 ‘영양탕’, ‘사계절탕’으로 바꿔 단 보신탕집이 자리잡은 곳은 큰 도롯가가 아니라 대개 구석진 뒷골목이다. 왜 그렇게 응달진 곳으로 밀려났을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개 식용’ 문화라면 질색인 서구인들의 식문화에 대한 시각이 그 첫째다.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정현안 조정·점검회의’를 주재한 김부겸 총리의 말에서 정답을 찾을 수 있다. 김 총리는 “개 식용 논란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닌, 1988년 서울올림픽을 시작으로 30년 넘게 이어져 온 오래된 문제”라고 말했다. 애견 인구와 동물복지단체가 갈수록 늘어나는 것을 그 두 번째 이유다. “최근 반려동물 양육 가구 수가 급증하고 동물권과 동물복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개 식용을 ‘오래된 식습관의 문화로만 보기에는 어렵지 않겠나’라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김 총리의 말이다.

김 총리가 한 말은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과 무관치 않다. 대통령은 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개 식용 금지를 신중히 검토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는 말로 사실상 ‘개 식용 문제의 공론화’를 지시했다. 25일의 회의안건은 ‘개 식용의 공식적 종식에 대한 사회적 논의 추진 방향’이었고, 회의에서는 구체적인 밑거름도 나왔다. 정부가 ‘개 식용’ 문제를 논의하는 민관합동기구를 만들고 관련 업계 실태조사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먼저 시민단체, 전문가, 정부 인사 등 약 20명으로 구성된 사회적 논의기구를 만들어 내년 4월까지 개 식용 종식의 절차·방법을 다루기로 했다. 기초자료 수집 차원의 분야별 실태조사 대상에는 사육농장, 도살장, 상인과 식당이 들어간다. 이때 ‘개 식용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도 함께 추진된다.

서구인들은 개 식용 문화로 한국인의 이미지에 ‘야만성’을 덧씌우려는 경향이 짙다. 2001년 12월, 프랑스 여배우 ‘브리짓드 바르도(BB)’가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진행자와 ‘개고기 논쟁’을 벌이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일화가 대표적이다. 2021년 ‘제18회 서울 환경영화제’ 때는 미국 다큐멘터리 감독 ‘케빈 브라이트’가 한국의 보신탕 문화를 다룬 작품 <누렁이(Nureongi, 2020)>를 들고나와 묘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문화는 변하기 마련이다. 조선조 때는 누렁이(黃狗)가 ‘효자동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건이 전혀 딴판이다. 특히 올해는 한국이 ‘선진국’ 이름으로 머리를 올린 뜻깊은 해다. ‘개 식용 문화’에 대한 결론을 단박에 내자는 건 아니다. 모처럼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모아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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