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듄’-리산 알 가입
영화 ‘듄’-리산 알 가입
  • 이상길
  • 승인 2021.11.18 2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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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듄’의 한 장면.
영화 ‘듄’의 한 장면.

 

스포일러가 있는 글입니다.

만약 신(神)이 존재한다고 쳤을 때 그가 과연 이 우주 안에 우리와 같이 있는지 아니면 우주 바깥에 존재하는지도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고대인들 중에는 신은 분명 우주 바깥에 존재하고 별이라는 구멍을 통해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들도 있었다. 참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그 상상력만큼은 탁월하지 않나. 원래 높으신 분들은 아랫것들과는 겸상을 잘 안하니 신이 우리와 같은 우주공간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건 다소 불경스러운 일인 만큼 일견 수긍은 간다.

뭐 그렇다 해도 신이 꼭 우주 바깥에 존재하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왜? 이 우주는 어마어마하게 넓으니까. 솔직히 끝이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만약, 아주 만약에 이 우주가 우리들 마음처럼 끝이 없는 존재라면 분명 신은 이 우주공간 안에서 우리랑 같이 있는 것이 된다. 다만 아직 찾아오지 않은 것 뿐.

한편 그렇게 봤을 때 신이 꼭 인간과 다른 존재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신의 능력이라 하면 전지전능함도 있겠지만 가끔은 구원자, 즉 메시아로서의 역할을 할 때도 우린 그를 신이라 부르곤 한다. 가령 몰살위기에 처한 한 종족을 외부에서 어떤 존재가 나타나 구해준다면 그 종족에게 그는 분명 신적인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듄>에서 아라키스 행성에 사는 프레멘 부족들은 그런 존재를 ‘리산 알 가입’이라 부른다. ‘외계에서 온 목소리’라는 의미로 바로 ‘메시아’를 뜻한다.

사실 사막행성인 아라키스에 사는 프레멘 부족은 아주 불쌍한 종족이다. 온통 사막으로 이뤄진 척박한 환경도 그렇지만 그 사막에는 이곳 지구에서의 다이아몬드처럼 값어치가 나가는 스파이스가 생산되기 때문. 스파이스는 노화를 늦추고 예지력 등 두뇌활동을 높이는 신성한 환각제인데 이게 있기 때문에 아라키스 행성은 문명이 발달한 다른 행성들로부터 늘 침략을 받았다.

그 전에는 기에디 프라임 행성에 사는 ‘하코넨’이라는 아주 못된 가문이 침략해 스파이스를 장악하고 있었는데 황제의 명령으로 칼라단 행성에서 온 ‘아트레이더스’ 가문으로 교체가 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아트레이더스 가문은 대다수 귀족들로부터 존경받는 레토(오스카 아이삭) 공작이 이끌고 있는데 그의 아들이 바로 주인공 폴(티모시 살라메)이다.

그런데 아라키스 행성의 관리자가 하코넨에서 아트레이더스로 바뀌게 된 건 평소 레토 공작을 질투한 황제의 계획된 음모였고, 결국 하코넨 가문의 습격으로 아트레이더스 가문은 몰살 위기에 처하게 된다. 가까스로 엄마 제시카(레베카 퍼거슨)와 함께 탈출에 성공한 폴은 이후 프레멘 부족에 합류한 뒤 그들의 메시아로 성장하게 된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모티브가 되고, SF소설 거장인 ‘아서 C. 클라크’가 “대적할만한 작품은 오직 <반지의 제왕>밖에 없다”고 극찬했던 <듄>을 스크린으로 보면서 개인적으로 신(神)이라는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더랬다. 물론 이야기의 큰 줄기가 프레멘의 메시아로 성장해가는 폴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그걸 지켜보면서 현실에서의 신도 생각해보게 됐던 것.

사실 그렇다.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우리는 아직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있지 않다. 기독교에서는 우주만물을 창조한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신으로 여기지만 불교에서 신처럼 받들고 있는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은 인간이다. 그분(神)이 명확하게 우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결국은 믿음의 문제일 뿐인 거 같은데 내 주변에 착해빠진 사람들이 고통 받으며 힘겹게 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솔직히 신은 없는 것 같다.

그렇다. 나는 무신론자다. 다만 수도 없이 많은 영화를 보면서 그려지게 된 현실적인 신의 모습이 하나 있는데 바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의 주인공 마츠코(나카타니 미키)다. 신이라고 하기엔 부담스러우니 그냥 나의 ‘리산 알 가입’이라 해두겠다. 아무튼 그 영화의 후반부에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그들에게 주기만 하다 인생이 통째로 망가져버린 마츠코 고모의 너덜너덜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카인 쇼(에이타)는 이렇게 말한다. “마츠코 고모는 하나님이라고 류상(마츠코의 제자)은 말했다. 마지막까지 끝끝내 구제불능에 끝끝내 불행했던 이 사람을 하나님이라고.

나는 신 같은 건 잘 모른다. 생각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혹시 이 세상에 하나님이 있어서 그 분이 사람에게 웃음을 주고, 사람에게 힘을 주고, 사람을 사랑하고, 하지만 자신은 늘 상처받아 너덜너덜해지고, 고독하고 패션도 너무나 촌스럽고, 그런 철저하게 바보스러운 사람이라면 나는 그 하나님을 믿어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2021년 10월 20일. 러닝타임 155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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