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두려운가?
무엇이 두려운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05.27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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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없고, 법률이 없이는 형벌도 없다”(nullum crimen, sine lege nulla poena sine lege)라는 유명한 법격언이 있다. 범죄와 형벌은 미리 법률로써 규정되어 있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는 근대형법이론의 근간인 죄형법정주의 원칙이다.

따라서 아무리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잘못을 저질렀다 할지라도 현행 법률에 범죄로써 규정되어 있지 있다면 처벌할 수 없다. 이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권력의 자기제한(自己制限)인 셈이다.

이 확고부동한 법 원칙을 거스르는 일이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 23일 밤, 경찰버스로 둘러싸인 서울 덕수궁 앞 분향소 근처 인도에서 경찰과 추모객 사이에 조그만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 동영상은 유튜브 사이트를 타고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노전대통령의 추모행사에 참석하려던 한 아버지의 무등을 타고 있던 다섯 살 꼬마의 촛불을 두고 경찰이 불법이라고 제지하고 나선 것이다. 경찰은 아이가 든 촛불이 불법이라 통과를 제지했고, 아이의 아버지는 불법의 근거를 대라고 요구하며 말싸움을 하다, 결국 어른들의 싸움을 보다 못한 아이가 갖고 있던 촛불을 불어 꺼버리면서 실랑이는 끝이 난다. 아이의 엄마는 전경버스 사이의 좁은 골목길을 통과하면서 “동네 양아치들도 이런 짓은 안한다.”며 앙칼진 목소리로 일침을 놓고 가버린다.

맞다. 동네 양아치도 안하는 그런 짓을 왜하는 걸까. 촛불을 들고 가는 것이 위법이라는 현행 법률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 집시법이나 도로교통법에도 그런 조항은 없다. 그런데도 제지한 경찰은 왜 불법이라고 하는 걸까. 그 경찰이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몰랐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일개 경찰의 인식을 넘어 촛불에 대한 이 나라 경찰수뇌부, 아니 이 정권의 현 상황인식을 여과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못해 분노감을 느낀다. 촛불에 대한 일종의 노이로제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이는 아고라포비아(agoraphobia, 광장공포증)라고도 한다.

묻고 싶다.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정부다. 이 정부가 과거 군사정권처럼 쿠데타로 집권한 세력인가? 권력의 정통성이 없어 안절부절하는 정권인가? 도대체 뭐가 두려운가? 그렇게 자신 없는가? 10년만에 되찾은 권력을 잃을까봐 두려운가? 아이가 들고 있는 촛불 때문에 스스로를 그 정도로 자신 없고 지지기반이 취약한 정권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 정부에 뭘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노 전대통령의 서거이후, 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의 예우에 걸맞게 장례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국민장으로 치르라고 한 마당에 서울시청 앞을 가로막고 있는 버스는 또 뭔가? 그럴 바엔 국민장을 거부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살아있는 권력이 죽은 권력과 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산 중달이 죽은 공명을 두려워하는 꼴이다. 죽은 대통령은 살아있고, 살아있는 대통령은 죽었다. 촛불시위가 그렇게 겁이 나는가? 만약 지금의 민심이 촛불을 원한다면 받아들여라. 그리고 반성하고 소통해라.

많은 국민들이 전직대통령의 죽음을 비통해 하고 있다. 촛불을 들고 추모하고 싶고, 소리쳐 울분을 삭이고 싶다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둬라.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가?

노무현에 대한 수많은 추모행렬은 그가 끊임없이 국민과 소통하고자 했던 소탈한 대통령이었다는 뒤늦은 인식에서 비롯됐다. 솔직 담백한 성격이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제 권력도 솔직 담백해져야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는다. 권위적이고 근엄함은 이미 노 전대통령에 의해 깨뜨려졌고, 국민들은 이미 그런 친근함을 맛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의 권위주의 권력은 이제 국민들의 몸에 맞지 않는 낡은 옷에 불과하다.

끊임없이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장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솔직담백해져야 한다. 촛불을 보면서 청와대 뒷산에서 뼈저린 반성을 했다고 말했다가 유모차 부대를 수사하는 뒷통수 때리기가 아니라, 전직 대통령 예우를 해주겠다고 말하면서 시청 앞 광장을 경찰차로 봉쇄하는 표리부동이 아니라, 국민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야 이 정권이 진정으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권력으로 거듭날 것이다.

3년 후 다섯 살 꼬마아이의 손에 들린 촛불에 벌벌 떨었던 겁쟁이 정권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순 없잖은가.

/ 김명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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