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나라, 모로코 ③
영화의 나라, 모로코 ③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11.09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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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와 북아프리카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아틀라스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봉우리가 독특하고 장엄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곳을 넘어가면 사하라 사막이 펼쳐진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신비로운 풍경을 경험하게 된다. 화자는 사하라 사막에서 비행기가 추락했을 때 어린 왕자를 만났다.

‘만일 당신이 언젠가 아프리카 사막을 여행한다면 이곳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도록 이 풍경을 주의 깊게 보아 달라’고 했다. 혹시 어린 왕자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책 속의 글귀들이 환청처럼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사막은 좀 외로운 기분이 들게 하는 곳이구나.’,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야.’ 그 속삭임을 몸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사하라는 우리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하라로 가는 길에 다데스 협곡으로 가게 되어있는데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떡같이 넓적한 눈이 점점 많이 오기 시작했다. 사막에도 눈이 오나 싶어서인지 모두 신기해했다. 결국, 모든 길이 눈으로 막혀 버렸다. 아프리카의 그랜드 캐니언이라는 다데스 협곡과 토드라 협곡은 갈 수가 없었다. 온 천지가 하얗기만 하고 길도 하늘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추워서 히터를 켠 차의 매연을 맡으며 처음엔 차 뒤에서 볼일을 봤다. 시간이 흐르면서 차들이 뒤를 이었다. 4시간이 지나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현지인들은 ‘신의 축복’이라며 눈 위를 뛰어다니면서 눈싸움도 하고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우리는 점심때가 지나자 배도 고프고 차에 갇혀 있는 일에 한계가 느껴졌다. 먹을 게 별로 없어 물만 먹었다. 그다음엔 차 옆으로 일렬로 서서 우산으로 앞뒤를 막은 채 자리를 바꾸어 가며 볼일을 봤다.

사하라는 워낙 넓어서 다 평평하고 더운 사막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산맥도 있고 겨울철에는 영하로 내려가기도 한다. 내 상식이 모자란 탓을 학교 때 배운 교과서로 돌리기도 했다. 사하라의 시작 지점은 농사를 무리하게 짓고 나무를 함부로 베내서인지 오아시스마저 사막으로 변하는 사막화 현상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었다. 수 천 년 동안 베르베르족이 혹서와 혹한의 기후를 무릅쓰고 농사와 언어와 신앙을 지켜온 곳이 그랬다.

드디어 사하라 사막으로 가는 관문인 모로코 동남부의 작은 도시 메르주가에 도착했다. 모래바람 속에 나타난 사막 호텔이 구세주 같았다. 붉은 사막 속에 오아시스처럼 야외풀장이 펼쳐지는 NOMAD PALACE 호텔은 영화 속의 한 장면으로 다가왔다. 배를 양껏 채우고 났으나 이 안에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새벽 6시에 두건으로 무장하고 SUV로 사파리 투어를 하러 나섰다. 어둠 속에 차 불빛만 비추며 붉고 고운 모래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넘고 또 넘었다. 다칠까 봐 팔과 온몸에 용을 쓰며 도착했는데 낙타 투어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모래바람이 눈과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다. 낙상사고가 날 것 같다고 했지만, 떼를 썼다.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간다는 말인가?

합의 후 낙타 투어가 시작되었다. 4~6명씩 줄지어 낙타가 움직이는데 3개의 관절이 꺾이기 때문에 탈 때나 내릴 때는 주의를 해야만 했다. 부드러운 모래가 이리저리 바람 따라 날리다가 쌓여 이루어진 모래 언덕은 엄청나게 딱딱했다. 헤어 터번을 두르고 기를 쓰며 낙타를 타고 행진을 했다. 사구를 하나씩 넘을 때마다 사하라는 자국 하나 없는 고운 맨몸을 드러냈다. 오랜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모래바람에도 젊은 베르베르족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처럼 두건을 휘날리며 다녔다.

아침에 여행용 가방을 끌고 로비로 나갔다. 사하라 일대에 눈이 많이 와서 토사가 흘려내리는 바람에 길이 막혀 다음 여행지로 이동을 못 한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우리는 사막 호텔에 발이 묶여 다시 짐을 풀었다. 모든 문을 다 닫고 잤는데도 욕실이나 화장실 천장에서 내려온 고운 모래가 모래성처럼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복도에도 모래가 매트처럼 깔려있었다. 마치 모래가 살아 전갈처럼 스멀스멀 기어들어 오는 느낌이었다.

김윤경 여행큐레이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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