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헌 박상진의 여섯 번째 친필
고헌 박상진의 여섯 번째 친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9.05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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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울의 지인이 메시지 한 통을 보내왔다. 일전의 부탁에 대한 회신이었다. 고헌(固軒) 박상진(朴尙鎭, 1884-1921) 의사의 친필(親筆) 한문 서한에 대한 서예박물관 이동국 박사의 풀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다.

‘上候狀/ 藿川宅’(=문안 편지/ 곽천댁)으로 시작되는 고헌의 친필 서한을 단박에 풀어내는 이는 드물었다. 서예 전문가에게 들은 얘기지만, 행서체(行書體)에 간간이 초서체(草書體)도 섞인 달필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보따리를 좀 더 풀어 보자.

“省式 白(=생식하고 아룁니다.)/ 伏惟肇寒 靜養氣力(=초겨울을 맞아 기력을 정양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以時萬康否 伏溯區區 無任下?(=철을 따라 강건하신지 궁금한 마음 그지없습니다.)/ 侍生 朞降人 兩庭事?安 庸是私幸耳(=저 기강인은 부모님께서 그런대로 편안하시니 다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第白家嚴甲日在於今月望日(=드릴 말씀은, 아버지의 환갑이 이번 달 보름입니다.)/ 而親意則不欲設施者 以時勢故也(=당신께서는 환갑잔치를 원하지 않으시고 요즈음 형편이 그렇기도 합니다.)/ 雖然在渠道理 不可虛度(=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도리상 그대로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辦小?/ 只伸微?計(=약소하게나마 작은 술상을 차려 보잘것없는 작은 정성이나마 펼치려고 합니다.)/ 一者命駕以光 此日之席寵榮極矣(=한 번 찾아주셔서 빛내어 주신다면 이날의 은총과 광영이 더 없을 것입니다.)/ 勿孤下望 千萬千萬(=저의 바람을 저버리시지 마시길 간곡히 바랍니다./ 餘撓不備 伏惟下察(=어수선하여 이만 줄입니다.)/ 辛亥 十月 十一日 侍生 朞降人 朴尙鎭 狀上(=신해·1911년 10월 11일 시생 기강인 박상진 올림.)”

이 서한에서 생식(省式)이란 ‘예의를 줄인다’, 즉 한문식 우리말 표기 ‘제번(除煩)하옵고’(=말씀 줄이옵고)의 뜻으로 읽힌다. 그리고 낯설어 보이는 ‘기강인(朞降人)’의 뜻은 상주(喪主)라는 것이 이동국 박사의 귀띔이다. 이 박사는 친절한 설명도 곁들여 주었다. ‘생식(省式)’은 상중에 있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낼 때 안부를 묻지 않고 편지의 첫머리에 쓰는 말이고, 원문의 ‘갑일(甲日)’은 환갑이 되는 해의 생일을 뜻하는 말이라는 것.

서울의 지인은 이 간찰(簡札=서한)을 고헌의 증손자 박중훈 선생(박상진 의사 생가 지킴이)에게도 전해주기를 원했다. 전화기 속 박 선생의 소리는 그의 표정을 그대로 전했고, 몹시 기뻐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덤으로 알게 된 것은 ‘곽천댁(藿川宅)’이 ‘미역내’(또는 ‘미역네’)로도 읽힌다는 사실이었다.

박 선생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편지글의 필체가 증조부의 것이 틀림없으며, 이번 서한이 자신이 확보한 증조부의 여섯 번째 친필이라며 들떠 있었다. 그리고 증조할아버지가 고향 친구 임춘식에게 보낸 부친 회갑 초대 글(1911년)도 이번에 입수한 편지글과 내용이 비슷하다고 했다.

박중훈 선생은 이미 지니고 있던 증조부의 친필 5점 가운데 나머지 4점의 내용도 간추려 주었다. △1918년 4월 공주감옥에서 동생들에게 보낸 편지(부모님과 아이들을 부탁하는 말과 변호사 선임과 비용 문제, 민사소송 문제를 다룸) △1910년, 종숙인 시준에게 보낸 편지 △1915년 서울 민사법정에 낸 촉탁증인심문 청원의 글 △사촌 처남 최준(경주 최 부자 가문)에게 20장의 대구은행 어음 융통과 한도 5천 원 상향조정을 부탁하면서 지배인 윤정하에게 영향력 행사를 요청한 편지가 그것.

박 선생이 필자에게 말했다. “증조부님을 뵌 듯 반갑고 벅찬 감격에 전율마저 느낍니다. 노력하면 어딘가에서 증조부님의 유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도 생깁니다.”

김정주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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