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당신’이라 부르는 이름
철새, ‘당신’이라 부르는 이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8.23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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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작은 화단에서 목화 그루가 눈길을 주었다. 다소곳하게 자세를 잡은 목화는 어느새 여러 송이 꽃을 활짝 피웠다. 상앗빛 꽃은 서로 뒤질세라 얼굴을 내밀었다. 다가서니 잎에 가려진 모습이 부끄러워 숨는 듯했다. 해가 뜨고 다시 찾았을 때 머리를 감고 등 뒤에 살며시 나타난 아내처럼 느껴져 마음이 설Ž

다음날 꽃잎 가장자리는 입술인 양 연한 붉은 빛 파스텔 색조의 립스틱을 바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예쁘고 청순했다. 한참을 넋을 잃고 지켜봤다. 다시 하루해가 반원을 그리며 서산으로 숨바꼭질하자 꽃잎은 꽈배기로 말려 땅에 떨어졌다. 립스틱의 색은 이미 바래져 있었다. 꽃잎 속을 살펴볼 양으로 꽃잎을 한 장씩 차례로 떼어냈다. 다섯 장이 둘러싼 속에는 수술이 두루미 머리의 단정(丹頂)처럼 붉은 점이 찍혀있었다. 열매를 만져봤다. 작은 봉오리의 느낌이 손가락으로 전해왔다. 그 밑에서 이미 작은 목화씨가 잉태되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모든 꽃잎은 씨를 위한 병풍임을 새삼 일깨워줬다.

입추가 지나고 백중이 떠나자 선바위 지역 입암(立巖)들에는 마지기마다 벼 이삭을 앞세워 나락 꽃을 피웠다. 이제 한 달만 지나면 햅쌀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농부는 호미씻기로 마지기를 떠났는데 오히려 백로들은 마지기 물꼬마다 ‘호위무사(護衛武士)’처럼 지키고 섰다. 물꼬에서 움직이는 먹이를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인 묵객은 꽃 중의 꽃 화중왕(花中王)이 모란(牧丹)이라 했지만, 농부들의 꽃은 누가 뭐래도 나락 꽃과 목화(木花)이다. 나락 꽃은 생명의 곡식이요 목화 또한 생명의 의복이기 때문이다.

울산의 철새가 떠나고 있다. 철새의 생태학·인문학적 정의는 다르다. 생태학적 철새는 “계절 따라 서식지를 찾아 번식 혹은 월동하는 조류”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인문학적 철새는 “실질적인 이익을 좇아 계절과 의리 등에 구애받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울산 삼호대숲(이하 대숲)은 생물학적 철새인 백로의 번식지이다. 대숲은 사람으로 보면, 친정엄마의 손길이자 포근한 품이다. 올해는 짧고 늦은 장마 덕분에 백로는 새끼를 별 탈 없이 건강하게 키울 수 있었다. 그 결과 칠월 중순께는 그 수가 최대 4천500마리까지 헤아릴 수 있을 정도였다.

대숲에서 번식한 백로들이 지난 팔월 중순을 고비로 서서히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다. 현장 관찰 노트에는 하루에 300여 마리씩이나 줄어든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지켜보는 대숲은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애지중지 키운 여식이 출가하면 함부로 말을 낮추지 않고 공대(恭待)하듯 대숲은 떠나는 백로를 그런 자식에 빗대어 ‘당신’이라고 지칭했다. 대숲은 스치는 바람을 핑계 삼아 작은 손짓으로 나직하게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리우면 왔다가 싫어지면 가 버리는/ 당신의 이름은 무정한 철새/ 진정코 내가 싫어 그러시나요/ 이렇게 애타도록 그리움 주고/ 아~ 가 버릴 줄 몰랐어요 당신은 철새” (김부자의 ‘당신은 철새’)

이 노래는 구습(舊習)을 쫓는 자기중심적 사고와 행동하는 옛사람의 태도를 벗어버린 관점에서는 대숲 즉 어머니의 마음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이다. 봄이면 다시 찾아올 철새 자식인 줄 알면서도 눈앞에서 떠나는 이별의 아쉬움을 ‘당신은 무정한 철새’라는 말로 감추었다. 그 손짓은 가슴에 돌담을 쌓고 교족(翹足)의 발돋움도 모자라 지나는 바람을 핑계 대며 초록빛 손을 한없이 흔들고 있다. 떠남의 아쉬움이 가라앉아 잊혀질 즈음 삭풍(朔風)은 떼까마귀의 추억을 되살리며 몸부림치게 만들겠지.

그렇다. 어머니의 마음은 언제나 자식 생각이 떠날 날이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숲은 백로와 떼까마귀를 번갈아 뒤에서 감싸주는 성숙한 울산 시민의 정서적 상징이기도 하다.

김성수 철새홍보관 관장·조류생태학 박사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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