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암각화 문양, 매력적이고 참 배울 게 많아요”
“반구대암각화 문양, 매력적이고 참 배울 게 많아요”
  • 김정주
  • 승인 2021.08.19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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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보 명인' 최인숙 작가
최인숙 조각보 장인.
최인숙 조각보 명인.

 

“손이 허락하는 날까지 할 생각이에요”

8월 11일 오후, 울산문예회관 제4전시장에서 막을 올린 ‘한국예술문화명인 울산지회 11인전(展)’(8.11∼16)에서 처음 대면한 최인숙 ‘국제보자기포럼’ 전문위원 겸 초대작가(70). 칠순 초입인데도 열정은 여전히 뜨거웠다.

이번 전시 출품작의 주제를 최 작가는 반구대암각화 문양과 태화강 국가정원 동식물에서 찾으려고 했다. 특히 족자로 꾸민 작품은 이번이 첫 출품, 암각화 문양 작품 20년사에 새로 획을 그을 만한 변화다.

생사(生絲)에 쪽물을 들이고 그 위에 암각화 문양을 수놓은 <푸른 물빛을 거슬러…>라는 석 점의 족자작품이 전시장 분위기를 품격 있게 연출했다. 조각보 작품으로는 쪽으로 염색한 인견에 암각화 문양을 수놓은 <고래사냥>과 자연염색 생사에 꽃과 곤충을 수놓아 감침질 기법으로 이어붙인 <국가정원에 핀 꽃과 곤충>이 시선을 모았다.

‘명인(名人)’이란 표현에 관심이 갔다. ‘울산지회 11인전’이라면 한국예술문화명인에 속한 울산지역 명인이 11명이라는 얘기? 곧바로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궁금증도 풀렸다. “명인(‘K-master’)으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았죠. 저도 2015∼16년 내리 두 번 탈락하고 세 번째 도전 끝에 간신히 얻었으니까요. 단번에 되신 분은 문근남(궁중복식), 이수경(칠보) 여사 정도라고 할까요.”

이 단체에 가입한 전국의 명인은 360명 남짓. 그중에서도 ‘조각보 명인’은 최 작가를 합쳐 6명밖에 안 된다. 하지만 조각보 분야에서 거의 독보적 존재인 최 작가에게는 제자가 정말 많다. 울산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는 유자격 강사만 여섯 명을 헤아릴 정도. 울산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도 울산농업기술센터에서도 제자들은 ‘명강사’로 통한다.

학생 때 손재주 입소문, “수예도 대신”

그런 제자들을 두기까지의 뒷얘기에는 ‘최인숙’이라는 남다른 솜씨의 조각보 스승을 빼놓을 수 없다. 최 작가도 처음엔 무명(無名)이었다. 그러나 입소문을 타면서 다른 지방에서도 강의 요청이 들어올 정도로 유명세를 몰기 시작했다. 용인, 고성, 진주. 함안, 김해, 부산… 어디를 다녀오든 인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는 사이 교사자격증, ‘규방공예 1급’ 자격이 자연스레 나이테처럼 불어났다. 개인전 7회, 해외 전시 55회, 국내 전시 209회의 이력도 차츰차츰 쌓여갔다.

‘경주여고(19회) 졸업’이 최종학력인 최 작가는 사실 학생 때부터 손재주가 뛰어났다. 이 사실을 뒤받쳐주는 일화 몇 토막이 있다.

“중학교, 고등학교 가정 시간에는 친구들이 수예를 대신 좀 해 달라고 맡기는 일이 많았죠. 그 덕분에 빵 대접은 참 많이 받은 기억이 있어요.” “대학 진학은 접었는데 한번은 대구 교대에 입학한 친구가 부탁을 해왔어요. 여름방학 숙제를 대신해 달라는 거죠. 그래서 도시락 가방을 하나 만들어 줬더니 글쎄, 친구가 2학기 때 교내 출품을 해서 ‘최우수상’을 받았다는 거예요. 자신감이 그때부터 생겼다고 해야겠죠.”

짬만 나면 조각보 만들기에 매달렸다. 천이 흔치 않던 시절이라 집 부근 양장점에서 자투리 천을 얻어다 조각보 만드는 일에 시간을 쏟았다. 조그마한 여행 가방이나 도시락 가방에 수예 솜씨도 얹어가며 손재주를 익혀 나갔다.

그러는 사이 인생에 새 역사가 기록되고 있었다. “경주 노동(현 중앙동) 옆집에 사시는 시숙모가 중신을 하신 거죠.” 그 대상은 울산시 북구 차일마을에 사는 동갑내기 이문걸 씨(70, 울산향교 섭외수석장의).

그때가 1978년이니 결혼생활이 햇수로 어언 44년째다. 약 10년 전 현대자동차를 퇴사한 남편 이 씨는 현재 고향 마을에서 소일거리삼아 분재에 심취해 있다.

지난 11일 오후 개막식에 앞서 울산문예회관 4전시장에서 기념촬영에 나선 ‘한국예술문화명인 울산지회’ 회원들.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최인숙 작가.
지난 11일 오후 개막식에 앞서 울산문예회관 4전시장에서 기념촬영에 나선 ‘한국예술문화명인 울산지회’ 회원들.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최인숙 작가.

 

‘국제보자기포럼’ 초청, 프랑스도 다녀와

시부모와 시조모를 모신 시댁살이 2년 뒤 남편과 함께 남구 신정동으로 분가한 최 작가는 이곳에서 작품활동에 다시 뛰어든다. 살림에 보탬도 줄 겸 조각보에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로 한 것.

명성과 내공이 쌓이면서 최 작가에게는 해외 나들이 기회도 덤으로 생기게 된다. 울산의 자매도시인 일본 하기시와 벳푸시에 문화예술사절단 일원으로 참여하게 된 것. 이때 수인사를 나눈 유명인사 중에는 서예가 김숙례 여사와 울산학춤 창시자 김성수 철새홍보관장도 섞여 있다.

그 무렵의 일들이 최 작가에게는 아직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일본 여성들의 모습이 참 특이했어요. 현지 언론에서 조각보 전시회가 열린다는 보도가 나가면 아침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거예요. 질서 의식이 참 대단하다고 느꼈죠. 그리고 조각보 만드는 기법이나 쓰임새는 우리나 그쪽이나 거의 같았어요. 우리가 조각보를 천 조각으로 만든다면 일본 여성들은 유럽식 퀼트 기법으로 만드는 것이 조금 다르다고나 할까요.”

해외 나들이는 프랑스로도 가지를 뻗는다. 2017년 초가을(9월), ‘성당이 많은 프랑스 도시’에서 열린 전시회에도 참여했다. ‘국제보자기포럼’에서 기획한 행사로. 퀼트 조각보의 창시자이자 포럼 대표인 이정희 미국 뉴욕대 교수의 특별초청으로 다녀온 것.

이 교수와의 인연은 아직도 끈끈하고, 이 끈끈한 인연이 조각보 작업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브라더 미싱’ 구실을 하고 있다.

조각보에 수놓은 반구대암각화 속의 들짐승들.
조각보에 수놓은 반구대암각화 속의 들짐승들.

 

골동품 수집 취미, 울산박물관에도 기증

최인숙 작가에게는 별난(?) 취미가 하나 있다. 전국 여러 곳에서 강의를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서울이나 안동의 골동품 상점에 들러 손때 묻은 골동품을 틈틈이 사다 모으는 일이 그것. “그때는 강의료를 봉투에 넣어서 주었죠. 그걸 꺼내 주전자다 뭐다 해서 골동품을 많이 사들였는데 나중엔 처치 곤란일 정도로 집 안에 잔뜩 쌓여만 갔죠.”

그래서 궁여지책 끝에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박물관 기증’ 프로젝트. 그동안 서울 색동박물관을 비롯해 서울대 박물관, 숙명여대 박물관에 많이도 기증했다. 최근에는 울산박물관에도 30점을 기증했다. 소장하고 있는 골동품 중에는 90세 되신 큰언니가 시집갈 때 가져갔던 70년 된 베개도 들어있다고.

사실 40년 만에 되돌아온 차일마을 옛 시댁은 최 작가의 창작품과 골동품들이 시야가 어지러울 만큼 수북하다. 흥미로운 것은 남편 이씨가 골동품 수집 문제로 시비를 걸어온 일이 없다는 것. ‘잉꼬 부부’ 소문이 그래서 나 있는지도 모른다.

최 작가가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과제에는 조각보를 자연염색 하는 기법도 포함된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연염색을 마친 천이 너무 쌌어요. 그래서 단가를 낮춰야겠다는 생각에 대구 자연염색박물관을 찾아갔고 그곳에서 배운 기간이 햇수로 한 15년은 될 거예요.”

최인숙 작가가 심취해 있는 분야는 조각보, 자연염색뿐만이 아니다. 녹차 달이는 경력이 자그마치 35년이나 된다. 지금도 울산차인(茶人)연합회 고문직을 맡고 있다.

하지만 최인숙 작가가 정작 빠져 있는 대상은 반구대암각화 문양, 그것도 들짐승 문양이다. “참 매력적이고 배울 게 많아요.” 그러면서 작품 속의 ‘뼈 많은 들짐승’을 애써 가리킨다.

글= 김정주 논설실장·사진= 장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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