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기자(記者) 생활
슬기로운 기자(記者) 생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8.05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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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짜 뉴스 피해 구제를 빌미로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잘못된 보도로 인한 시민 피해 보상을 강화한다는 명분의 개정안이 언론의 자유와 권력 감시 기능에 족쇄를 채우는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권 말 차기 대선을 앞두고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정치적 의도가 아니냐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 개혁’이라는 명분을 무색게 하고 있다.

정치적 의도를 차치하고라도 이 개정안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언론 자유와 알권리 제약을 넘어 악의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단체들이 지난 몇 달간 정부 여당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해 오고 있는데 이어, 울산의 중견기자들로 구성된 ‘울산언론인클럽’이 성명서를 내며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나선 것은 지방언론도 이 문제에 공감한다는 의미다.

울산언론인클럽은 여당 개정안의 독소조항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제대로 된 개정안을 만들기 위해 언론 현업단체, 학계, 노동계, 정당이 참여하는 공론장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개정안은 언론의 고의 또는 중과실에 의한 허위 조작 보도로 피해를 입은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손해배상액을 정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고의 또는 중과실 여부의 입증 책임을 피해를 입었다는 기관이나 당사자가 아닌 언론사에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민법 체계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규정이다.

고의 또는 중과실이란 표현 자체도 모호할뿐더러 범위도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 어떤 내용이 가볍고, 어떤 내용이 무거운 과실에 의한 허위 보도인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인가.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허위·조작 보도의 폐해를 막겠다면서 피해액만큼이 아닌 피해액의 5배까지 배상토록 한 데다 손해배상 액수의 상·하한선을 해당 언론사 매출액을 기준으로 했다는 점이다.

언론 자유와 알권리가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개인의 명예나 기본권을 해치면서 추구할 수는 없다.

유튜버나 블로거의 경우 도를 지나친 사례를 적지 않게 본다.

이들에 대해 일정 부분 제재를 가하는 것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허위·조작 보도는 근절돼야 하고 이에 대한 책임도 엄하게 물어야 한다는 데는 백번 동의한다.

하지만 현행법 체계에서도 민·형사상으로 손해배상과 명예훼손죄 등으로 충분히 악의적 보도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런데도 일부 악의적인 가짜 뉴스나 언론사를 뿌리 뽑겠다고 어설프고 급조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골자로 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밀어붙인다면 언론 자유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당장 취재 현장에 있는 기자들부터 움츠러들 것으로 본다.

회사로 소송이 들어오면 기자 개인 입장에서는 확 위축돼 버린다. 그럼 공격적 취재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보도자료에 의존한 기사만 양산될 지도 모르겠다.

지방언론의 경우 가까스로 연명하는 영세한 언론사도 많은데 거기다 돈을 물리겠다고 하면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게다.

후배 기자들에게도 슬기로운(?) 처신을 요구해야 할 때가 올 지도 모르겠다.

정재환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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