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야(野)해지고 있다
세상이 야(野)해지고 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05.12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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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갈수록 야해지고 있다. 야(冶)한 것이 아니라, 야(野)하다. 거칠다. 천박하게 요염하다. 이끗에만 밝아 진실하고 수수한 맛이 없어지고 있다.

갈수록 심해지는 경쟁도 세상을 야하게 만드는 원인 중의 하나이다. 치열해지는 경쟁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경쟁의 본질이 왜곡(歪曲)되고 전복(顚覆)되는 것이 문제다. 왜곡된 경쟁은 사람을 천박하게 만들고 이욕에만 골몰하게 만든다. 예의(禮儀)와 염치(廉恥)를 뒷전으로 밀쳐버린다.

교원성과급은 야하다. 천박하고 요염하다. 돈을 눈앞에다 대고 살랑살랑 흔들어대며 경쟁을 부추기니 천(賤!)하지 않을 수 없고, 그 앞에선 위엄을 부리며 얌전을 떨고 있기가 힘드니 요염한 것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교사는 교사로서의 사명감 때문에 열심히 수업한다. 또는 가르치는 것 자체가 재미있고 보람이 있는 일이어서 열심히 한다. 그러한 일들이 성과급으로 계산되지 않더라도 열심히 한다. 물론 교원도 하나의 직업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임금은 받아야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가르치는 직업에 대해서 더 열심히 가르치도록 경쟁을 시키기 위해 눈앞에다 대고 돈을 흔들어댄 역사는 없는 것 같다. 가르치는 일의 특수성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가르치는 일을 돈으로 경쟁시켰을 때 나타나는 폐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으리라.

경쟁이 적나라해지면, 경쟁을 하는 사람들의 모든 능력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듯이 보인다. 그런 면이 있기도 하다. 그런 긍정적인 면만 드러난다면, 경쟁은 치열해질수록 좋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치열한 경쟁에서의 승자는 진정한 정수(精髓)이거나 정말 사악한 자이다. 진정한 실력자와 사악한 자는 늘 있기 때문에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라 할 수도 있다. 문제는 별다른 자극 없이도 양심에 따라 성실하게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다. 눈앞에 돈을 흔들어대며 경쟁을 시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에 길들여져 간다. 대부분의 교원이 눈앞에 돈을 흔들어대야 그 돈을 보고 열심히 하는 사회와, 대부분의 교원이 스스로의 신념이나 양심에 따라 성실하게 가르치는 사회 중 어느 사회가 더 바람직하고 우월한가.

일제고사는 야하다. 일제고사는 학부모의 모든 것, 학생의 모든 것, 교사의 모든 것, 학원 강사의 모든 것을 드러내게 만든다. 모든 것이 드러나니 얼마나 야한가. 열등한 자는 얼마나 부끄럽겠는가. 더 이상 대충 감추고 살 수 없으니……. 우월한 자는 얼마나 자랑스럽겠는가. 천하에 다 밝혀지니……. 모든 일제고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전면적으로 시행되어, 결과적으로 모든 학생과 학교를 서열화하고, 덩달아 학부모와 학원마저도 서열화하는 일제고사를 말함이다.

서열화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일제고사는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인간적인 만남과 여유를 말릴 것이다. 일제고사는 더 이상 인간 삶의 참된 의미를 고민할 수 있는 싹을 뭉갤 것이다. 또한 물과 바람과 나무에 귀기울이며 자연의 소리를 듣고 내면에 침잠하는 영혼들을 비웃게 될 것이다. 그나마 조금 남아 있는 사회적 약자의 인간다운 자리를 걷어차버릴 것이다.

세상이 야해질수록 강자(强者)의 강함은 아름답게 빛난다. 그래서 강자(强者)는 정정당당하게 모든 것을 드러내놓고 경쟁하자고 한다. 모든 것을 드러내놓고 경쟁해야 할 때 약자(弱者)는 부끄럽다. 감춤으로써 무언가 있는 듯이 보였던 무능력이나 알량한 자존심과 치부(恥部)마저도 다 보여줘야 하므로……. 그래서 위장(僞裝)과 은폐(隱蔽)는 약자의 전술이다. 반어(反語)와 역설(逆說) 또한 약자의 무기가 된다. 야(野)한 것이 때로는 추(醜)하다!

/ 정호식 학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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