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에
스승의 날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05.12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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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위당 정인보 선생이 후배 학자이자 절친한 벗이었던 나비박사 석주명을 위해 지은 장편 한시가 처음 공개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위당이 우리 현대사에 남긴 공적을 이 좁은 지면에서 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등 우리나라 4대 국경일의 노랫말을 모두 위당이 지었지요.

비 오는 거리를 위당 선생이 걷고 있었습니다. 그 빗길에서 갑자기 스승을 맞닥뜨렸습니다. 위당은 앞뒤 가리지 않고 질퍽한 땅바닥에 엎드려 스승에게 큰절을 올립니다. 햇빛이 짱짱한 날이었다면 스승의 그림자도 비켜가며 뒤따랐겠지요. 정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뭐라고 할까요.

교실이 무너지고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스승은 없고 교사만 남았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원인을 나름대로 짚어보았습니다. 학부모의 높아진 교육 수준을 먼저 꼽고 싶습니다. 옛날에는 교사가 학부모보다 대부분 학력이 높아 자연스럽게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요즘에는 고학력의 학부모가 대부분입니다. 게다가 분야별로 전문성까지 지니고 있습니다.

인터넷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겠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궁금한 게 있으면 대부분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물었지요. 요즘에는 인터넷에서 지식 검색으로 뚝딱 해결해버립니다. 어떤 분야는 학생들이 더 많이 그리고 깊게 알고 있기도 합니다.

자녀가 귀한 것도 하나의 원인입니다. 요즘 부모들은 엄하게 키우는 걸 원치 않습니다. 남의 자식보다 귀하고 밝게 자라기를 원합니다. 교실에서 회초리는 이제 찾아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스승의 날을 전후로 학교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일부 언론의 영향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는 이에 따라 부분을 학교 사회 전체의 그림처럼 이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교권이 무너지게 된 요인의 많은 부분이 우리 교육자 자신에게 있었다는 걸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우리 교육청에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서예 작품이 한 점 걸려 있습니다. 스승은 학생에게 가르침으로써 성장하고, 제자는 배움으로써 앞으로 나아간다는 말이지요. ‘교학상장’은 자칫 학문을 게을리 할 수 있는 우리에게 당근과 채찍이기도 하며 교권회복의 도화선이 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르친 제자나 사회인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교사를 전문가로 인정하고 교육문제는 교육전문가들에게 믿고 맡기는 사회적인 풍토 조성일 것입니다. 교원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사기를 진작시키는 일이 덧붙여진다면 교권은 그야말로 금방 일어서겠지요.

우리나라는 그 동안 경제적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인적자원 외는 어느 것 하나 내세울 수 없는 우리나라가 이만큼이라도 잘 살게 된 것은 전적으로 교육의 힘이었다는 걸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스승의 날입니다. 존경하는 선생님은 대부분 멀리 계시거나 이제 이승에 계시지 않아 안타깝다는 말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주 듣습니다. 내리사랑만 하다 치사랑을 온몸으로 느낄 쯤이 되면 부모님이 계시지 않듯 스승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는 이미 계시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저는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존경하는 선생님을 가까이에 모시고 있습니다. 교육자로서 또는 행정가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과 그 일의 차례까지 일일이 지적해주시고 잘못한 일은 따끔한 충고까지 해주십니다. 그런데 이 못난 제자는 전화조차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열일 제쳐두고 예쁜 꽃 한 송이 앞세워 선생님을 뵙고 싶습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 최성식 울산광역시 강남교육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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