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은 경영·상품화 교육, 소비자는 GMO 교육이 절실합니다”
“농민은 경영·상품화 교육, 소비자는 GMO 교육이 절실합니다”
  • 김정주
  • 승인 2021.07.2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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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만 ‘한국농업경영인 울산광역시연합회’ 회장
박경만  한국농업경영인 울산광역시연합회장 인터뷰 모습.

울주군청 아래 지통골서 1천평 밭농사

개울 건너 농장 언저리에는 슬며시 여름이 다가와 있었다. 종(種)의 다양성이라도 뽐내려는 것일까. ‘동네 거랑’에는 한눈팔 여유도 없었다. 나비, 잠자리에 멧비둘기, 쇠백로에다 청둥오리까지 저마다 눈도장 찍기에 바빴다. 얼핏 뒤돌아보니 청송마을과 울주군청이 코 닿을 듯 지척이다.

자연마을 3곳을 품은 울주군 청량읍 율리. 그중에서도 남쪽 산자락을 뒤로하고 개울을 따라 길게 뻗은 청송마을 속의 새마을 ‘지통골’. 그 숱하던 모래는 흔적도 없고 시멘트 호안이 물길의 이정표다. 이곳 계단식 옥수수밭 약 1천 평이 전문농업경영인 박경만 회장(57, 한국농업경영인 울산광역시연합회)의 문전옥전(門前沃田).

“옥수수로 바꾼 지 한 4년 됐습니다. 배 과수원 자리에 무, 배추 농사를 지었는데 수익도 그렇고 지금이 훨씬 더 낫습니다.”

박 회장은 과일처럼 달다는 ‘생으로 먹는 옥수수’ 얘기로 신바람이 났다. 품종이 궁금했다. “‘초당(超糖)’. 당도가 세다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포도 못지않습니다. 이 옥수수는 삶지 말고 꼭 쪄먹어야 제맛이 납니다.”

일반 옥수수의 2배라면 값도 센 편이다. 판매를 맡기는 곳은 굴화·청량·진장농협 하나로마트의 로컬푸드점. 요즘 잘 나가는 게 더 있다. 옥수수밭 속 45평짜리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는 ‘아삭이(풋고추)’와 홍고추가 그것. 매운 청양고추는 그다음 순서다.

그렇다고 고추 농사가 주종은 아니다. 옥수수 철이 끝나면 검은콩(서리태) 철이 온다. 그래도 하우스 고추 조수입이 한철 700만 원이면 초당 옥수수처럼 ‘효자’ 소리도 들을만하다.

대학 1학기-軍 복무 거쳐 농업에 투신

투박한 말투. 34년차 농부의 체취가 물씬하다. 지통골에서 나고 자랐다지만 처음 희망이 ‘농사꾼’은 아니었다. 눌러앉은 사연을 듣고 싶었다.

“학고(학성고, 12회) 나와서 울산대 수학과에 들어갔지요. 자연의 이치를 따지는 수학과 물리학을 참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데 변화의 바람이 분다. 반년만이다. 1학년 1학기를 끝내기 무섭게 공군에 자원입대한 것. 거기서 35개월을 보내고 군필(軍畢) 지장을 찍었다. 일사천리로 대학을 자퇴하고, 아버님이 하시던 과수원과 논농사에 뛰어들었다.

“집에서는 난리가 났지요. 그 당시엔 농촌 출신 대학생이 귀하던 시절이었으니까.”

‘OO 같은 놈’, ‘빌어먹을 놈’ 소리를 귀 따갑게 들었다. 그래도 악으로 버텼다. 그 와중에 천군만마(千軍萬馬)도 얻었다.

“큰형님 지원이 엄청 컸지요. ‘니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며 우군이 돼 주셨으니까.”

자연스레 부모님을 모시게 됐다. 8년 연하의 아내도 시집살이하며 시부모 뒷바라지를 도맡았다. 박 회장은 말머리를 부인 구성미 여사(49) 쪽으로 돌렸다.

“집사람, 어렵게 자라서 그런지 삶의 의미를 잘 압디다. 둘째(차남)가 5년이나 백혈병을 앓는 바람에 고생이 참 많았는데. 지혜와 끈기로 기어이 이겨냅디다.”
 

지난해 11월 25일 울산 롯데백화점 로컬푸드 매장에서 열린 ‘울산 딸기 축제’ 개막행사에 자리를 같이한 박병석 울산시의회 의장(왼쪽 두 번째)과 박경만 당시 행사총괄 사무총장(왼쪽 첫 번째). 왼쪽 세 번째 여성은 이 행사의 주관단체 ‘새싹 로컬푸드’의 정남희 이사장.
지난해 11월 25일 울산 롯데백화점 로컬푸드 매장에서 열린 ‘울산 딸기 축제’ 개막행사에 자리를 같이한 박병석 울산시의회 의장(왼쪽 두 번째)과 박경만 당시 행사총괄 사무총장(왼쪽 첫 번째). 왼쪽 세 번째 여성은 이 행사의 주관단체 ‘새싹 로컬푸드’의 정남희 이사장.

 

농촌 엘리트집단 ‘한농연’… 울산 회원 650명

지난 1월부터 박 회장이 지휘봉을 든 ‘사) 한국농업경영인 울산광역시연합회’(울산 한농연)는 그의 농심을 살찌워준 대목(臺木) 같은 존재. 울산 회원은 650명을 헤아린다. 1994년에 농민후계자(현 농업경영인)로 선정됐다면 이 조직에서 27년이나 잔뼈가 굵은 셈이다.

“농촌 엘리트집단, 그렇게 보시면 됩니다. 울산원예농협 김철준 조합장. 울주군의회 간정태 의원, 언양농협 간은태 조합장의 면면만 보아도 짐작이 갈 겁니다.”

‘농민운동’에 대한 그 나름의 철학에 관심이 갔다. 소신에 찬 답변이 돌아왔다. “법률적 권리도 잘 모르는 농민들의 의식을 깨우쳐 주는 운동, 바로 그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농민들, 참 순박하고 순진합니다. 도시 근로자들 같으면 단박에 들고 일어나겠지만, 우리 농민들이야 어디 그렇습니까? 허허.”

그래서 기획한 것이 9차례의 농업인 역량강화 워크숍이다. 농민들에게 절실한 것이 ‘경영’과 ‘상품화’에 대한 인식이라고 보고 이 2가지를 교육 주제로 삼기로 한 것, 지난 14일 경주에서 첫발을 내디딘 워크숍은 북구 진장 유통센터 교육관에서 8차례 더 진행된다.

박 회장이 그다음 구상 작품은 GMO(=유전자변형농산물) 식품을 주제로 한 소비자 교육이다, 이러한 소비자 교육이 변화를 꺼리는 농민들의 의식을 역으로 깨우쳐 줄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GMO는 대량 재배와 다수확을 위해 농약(제초제)에도 내성을 갖도록 조작한 농산물 아닙니까? 심각한 것은 우리 소비자들도 GMO의 위험성을 잘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GMO 수입 불공정 계약, 지금도 여전”

열변에 가까웠다. PLS 제도(=농약 허용기준 강화제도)의 잣대가 0.01ppm인 데 반해 GMO에서는 2~4ppm, 즉 200~400배나 되는 농약 성분이 검출된다는 지론도 폈다.

“이 농약 성분, 안 빠져나가고 몸에 쌓이는 게 문젭니다. GMO 농산물이 본격적으로 수입되는 약 20년간 선천 기형아 급증, 불임증 급증, 한국의 자폐증 발병률 세계 1위, 아토피 환자 급증, 세계에서 가장 빠른 치매 증가율, 갑상선암 발생률 세계 1위 등의 의학 통계가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GMO 대목에서 그의 말은 막힘이 없었다.

“러시아에선 재배나 수입 자체를 금지하고 있답니다. 우리나라는 미국, 캐나다, 브라질, 아르헨 등 북미와 남미, 그리고 중국과 유럽 일부에서 수입합니다. 그런데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가 어딘지 아십니까? 바로 한국과 일본입니다.”

일본은 가공용으로 수입한다고 하지만, 한국은 유일한, 그리고 세계 최대의 식용 GMO 농산물 수입 국가라고 했다.

“우리 한국인의 쌀 소비량이 1년에 1인당 60∽65kg이라면 GMO 식품 섭취량은 연간 45kg이나 된다는 통계를 보았습니다. GMO 식품은 콩과 식용유, 밀가루 같은 게 대표적인데, 우리는 싫어도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장기수입 계약 과정에 임의적인 농약 검사나 실험을 일절 못하게 못 박은 탓이라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한미간의 불공정 수입계약 관행이 지금까지 그대로 내려온다는 얘기다. 사실 미국 수입 GMO가 한국의 식량 자급 의지를 꺾고 식량안보마저 위협한다는 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수염, 아내 허락받고 1년 전부터 길러

대화 도중 분위기를 압도한 것은 박 회장의 성성한 구레나룻. 매일같이 가위와 면도기로 애지중지 관리하는 신체 부위다. 혹시나 하고 물었더니 진지하게 응수한다.

“오래 전부터 기르고 싶었는데 아내가 반대해서…”

마음 놓고 기른 지 1년밖에 안 된다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진짜 이유는? 박 회장이 자신의 ‘흑역사’라며 수염 기른 속사정을 털어놓는다. 씨름선수 최홍만 얘기부터 꺼냈다. 호르몬 계 질환인 ‘말단비대증’에 대한 설명이었다.

“40대에 접어들어 신체의 말단이 커지고 얼굴에 변화가 옵디다. 그전까지는 집안 식구들처럼 동안(童顔) 소리도 들었는데.”

13년 전 울산대병원에서 뇌수술을 받았고 기적처럼 깨끗이 나았다. GMO 때문은 아니었는지, 의심이 든다고도 했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딴 데 있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미국 FRB((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벤 버냉키의 저서 <행동하는 용기>를 읽고 감명 많이 받았지요. 그런데 그분 수염, 너무 멋있지 않습디까?”

그러면서 씩 웃는다.

<네순 도르마> 열창하는 낭만주의자

취미는 다양한 편. 아마 바둑 4단에 성악과 산책을 즐긴다. 농사도 그렇지만, 겨루기는 그의 끈질긴 집념이 이룬 독학(獨學)의 산물. 그중에서도 성악은 음대를 나온 성악가(바리톤)한테서 ‘테너’ 소리까지 들은 탐나는 재능이다. 짬나면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에 나오는 아리아 ‘네순 도르마’를 아내 앞에서 열창하기도 한다.

요즘은 코로나 사태로 그럴 기회마저 안 나지만 신앙적으로 기대는 개척교회(문수로교회, 신도 12명)에서 찬송가를 솔로로 부르기도 한다.

부인 구성미 여사는 요양보호사. 무거동과 율리의 두 가정집에서 몸이 불편한 어르신을 돌본다. 월~목요일에 봉사하러 나가지만 피보호자 가정의 부탁으로 금요일은 자신의 시간을 희생하는 일이 몸에 배었다.

의욕이 넘치는 박 회장에겐 또 하나의 꿈이 있다. 연말 안에 두 권의 책을 펴내는 일이 그것. 한 권에는 ‘1970년대의 농촌’을, 다른 한 권에는 ‘농부의 일기’를 담아낼 참이다. 그 속에는 귀농에 목마른 은퇴 세대들에게 길잡이가 될 솔깃한 체험론도 포함될 것이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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