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 낡은 피아노에 담긴 어머니 추억
[독자칼럼] 낡은 피아노에 담긴 어머니 추억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6.22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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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자유가 보장될 때 비로소 개인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진리를 코로나 시대를 보내면서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여행도 갈 수 없고, 가족과 지인 모임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은 아무런 생각 없이 누렸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뒤돌아보게 하였다. 자연스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취미와 운동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나 또한 그동안 방치되어 있던 낡은 피아노를 가까이하는 중이다.

봄꽃들의 향연이 펼쳐진 어느 날, 태화강 국가정원을 산책하다가 왕버들 마당(옛 느티나무 광장)에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안내문에는 4월부터 10월까지 누구나 마음껏 연주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이 알림을 보면서 문득 “우리 태화강 국가정원의 위상이 이 정도는 돼야지” 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마침 한 시민의 연주가 펼쳐지고 있어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힐링의 시간을 즐겼다. 봄 햇살이 따사롭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국가정원에서 감상하는 야외 음악회가 주는 평안함과 감동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피아노 건반 위에서 수많은 봄꽃이 환하게 피었다 지는 것을 반복하니 넓은 뜰에는 향기로 가득 찼다.

연주자는 젊은 남학생이었는데, 악보 없이 여러 곡을 연속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보노라니 내 안에선 새로운 욕구가 꿈틀거렸다. “기필코 올 10월이 가기 전에 지금처럼 피아노 감상으로만 끝내지 않겠다”라는 작은 희망이 피어난 순간이었다. 며칠 후 다시 찾은 그 피아노에선 같은 사람이 연주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시민이 다가오면 얼른 자리를 비켜주고, 가면 다시 연주를 반복하는 것으로 보아 그 학생은 피아노 연주를 알바로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울산시에서 시민들을 위해 다양하게 배려하고 있음을 알게 되어 기뻤다.

시집올 때 가져와 정이 많이 든 물건이라 쉽사리 버리지 못하고 지금껏 동고동락하고 있는 낡은 피아노의 추억을 떠올려본다. 내 아이들은 바이엘을 시작으로 어려운 곡까지 연주하며 어릴 적엔 제법 피아노 사용빈도가 높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피아노는 자리만 차지하고 식구들이 연주도 잘 하지 않아 이사할 때마다 고민했다. 게다가 적절한 시기에 때맞춰 조율하지 않아서 피아노 소리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도 피아노는 내 곁을 떠나보낼 수 없는 아주 특별함을 간직하고 있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방학 때 조카들이 놀러 왔다가 피아노 소리판을 발로 차서 원목 나무판이 떨어졌다. 이내 수리했으나, 원모습을 찾지 못해 외관이 매끄럽지 못한 상태였다. 엄마는 계속 신경이 쓰였는지 어느 날 피아노 전체에 니스칠을 혼자 해 놓으셨다. 시력도 안 좋고 섬세한 붓질 실력도 안 되니 칠이 고를 리가 있겠는가. 칠 두께도 다르고 울퉁불퉁 엉망이었다. 어머니는 나름 좋은 방법을 생각해 딸에게 깜짝 선물로 주려고 하셨을 터. 하지만 못난 딸은 어머니의 속마음은 알려고도 하지 않고 연신 짜증을 내며 못마땅한 티를 냈다.

어느덧 나도 부모가 되어 보니, 어머니는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헌신과 사랑을 남기고 가셨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푸른 하늘을 보거나 엄마가 좋아하셨던 음식을 먹을 때, 그리고 일상의 곳곳에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예고 없이 밀려온다. 심지어 어머니의 모음 첫 글자만 떠올려도 가슴이 싸하게 경직된다. 그만 잊혀질 때도 되었는데 늦둥이 철부지 막내라서 그런지 그리움과 시간의 비례관계는 여전히 삐거덕거리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는 나에게 엄마라는 이름으로만 존재해서 엄마가 아닌 한 인간으로, 한 여성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머니의 이름으로 살다 가신 한 사람에 대한 존경과 연민, 그리고 가까이에서 섬김과 존중을 제대로 해 드리지 못함에 대한 반성이 그리움의 시간을 물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악기의 생명은 외관이 아닌 소리에 있기에 남은 날들을 함께할 작정이다. 오래된 의자에 앉아 묵은 악기의 건반을 누르면 먼저 마음 깊은 곳에서 소리가 울린다. 애잔한 그리움의 소리. 너무나 멀리 있는 그녀의 소리를 끌어 올리며 로망스를 연주한다. “어머니! 보고 싶어요.”

김미정 ㈜케이연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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