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 칼럼] 또 하나의 공업탑(工業塔)
[명사 칼럼] 또 하나의 공업탑(工業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6.17 2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구 신정동 공업탑로터리는 2000년 7월 신호체계가 도입되기 전만 해도 심각한 교통혼잡과 하루 평균 6~7건의 교통사고 발생으로 ‘전국 교통사고 1위’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던 곳이다. 지금이야 신호대기 중에 잠시라도 올려다볼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울산시민이든 외지인이든 우뚝 솟은 이 흰색 탑을 제대로 볼 겨를이 없었다.

공업탑은 1962년 울산이 특정공업지구로 선포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67년에 설치되었다. 내년은 특정공업지구 선포 6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그 해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2∼1966년)이 시작된 해였고, 울산항 제1부두가 건설되면서 정유공장이 들어서고 항만기반시설이 막 갖추어진 해이기도 했다. 그 뒤 1967년부터는 비료·화학 공장과 화력발전소 등이 건설되고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도 자리를 잡아 갔다. 울산이 국내 최대의 중화학공업단지로 발전하고, 산업수도의 위상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만 해도 울산은 인구가 10만 명도 안 되는 소도시였다. 그러기에 공업탑 기둥 5개에 담은 ‘50년 후 인구 50만의 도시’라는 염원은 허황한 꿈으로 들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울산 인구는 그로부터 불과 30년 만인 1990년대에 100만 명을 거뜬히 돌파했다. 공업탑 세울 때의 염원이 의외로 빨리 달성된 것이다.

더욱이 지난 1월 한 달 울산항에서 처리한 물동량은 1천534만7천 톤이나 되었고(울산항만공사 월별통계), 2019년 지역내총생산(GRDP)은 약 75조 원으로 광역시 중에 서울, 부산, 인천 다음 규모를 자랑하기에 이르렀다. 명실상부한 산업수도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기에 특정공업지구 선포 당시 품었던 정치·경제 정책결정자들의 염원도 충분히 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전통 제조업 중심으로 편성된 울산의 주력산업은 최근 들어 성장에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고, 이로 인한 지역 경기의 침체는 정책결정자들에게 ‘새로운 돌파구 마련’이라는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울산 공업센터 지정을 위한 조사단이 1962년 1월 4일 결성된 후 특정공업지구 지정이라는 국가적 대사는 불과 반년 만에 일사천리로 결정되고 추진된다. △1962년 1월 27일 지구 지정 결정·공포 △2월 3일 기공식 △6월 1일 울산시 탄생 등 일련의 일정이 그야말로 숨 가쁘게 진행된 것이다. 오늘날 중요하게 여기는 지역균형발전, 자치와 분권, 절차적 정당성, 관련 당사자의 참여와 주민 동의 등의 가치기재를 고려하면 60년 전의 국가 중심, 중앙집권적 의사결정과 대규모 산업·경제체제 구축 관행은 격세지감마저 들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울산 서부권과 UNIST 주변지역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울주 강소연구개발특구, 울산경제자유구역, 울산게놈서비스산업규제자유특구, 울산도심융합특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지구가 비록 흩어져 있기는 해도 울산의 미래를 책임질 새로운 산업과 창업, 일자리 마련에 있어서 중요하게 기능할 경제정책의 플랫폼이자 울산의 미래 40년을 준비하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형태의 울산특정공업지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KTX 울산역 앞에는 10년 전 울산공업지구 5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한 ‘비상하는 고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내년 60주년에는 KTX 울산역과 UNIST 주변지역 일원에서 활력을 되찾아 보겠다는 울산의 새로운 염원을 담아 산업수도 울산의 공업탑을 하나 더 세워도 좋지 않을까 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최용준 울산과학기술원 창업팀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