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아들의 편지
대통령 아들의 편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05.05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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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9월 말, 모 일간지 ‘젊은이의 발언’에 투고된 전재국(全宰國)의 글은 그 희소가치(稀少價値)로도 세상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 했다.

역대 대통령의 아들이 직접 글을 써서 일반 독자와 같은 입장에서 발표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내용이 당시의 전두환 대통령의 통치방식에 관한 아들로서의 괴로움을 솔직하게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다르게 이 독자투고에 대해 독자들의 반응은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오늘 돋보기로 그 독자투고를 다시 읽어보는 이유는 최근의 여러 사건에서 노무현과 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이 서로 연상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국회의원으로서 자신의 명패를 던지며 청문회를 빛내고 대통령이 되었고, 당시 청문회의 증인으로 나온 사람은 대통령으로서 잘 못을 저질러 재판을 받아 옥살이 한 것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일부 발췌하여 재음미해본다(못다한 얘기 못다할 이야기. 이상현. 1991.p.48∼56).

‘참으로 긴 방학이었다. 산뜻한 마음으로 책들을 챙긴다. (중략) 4월의 어느 날, 나는 학생회관 앞 잔디 위에 누워서 포근한 봄볕을 즐기고 있었다. 주위에는 학생들이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이야기의 소재들 중의 일부는 나의 아버님에 관한 것이었다. 참으로 어색하게 느껴졌으며 또한 나를 무척 당황하게 만들었다.---모두들 불타는 내 아버님의 허수아비를 통쾌한 표정으로 바라볼 때, 그 모멸감과 고통을 견디기 어려웠지만 나는 거기를 담담히 지켜보며 서 있었다.---‘유신잔당의 괴수’라고 욕을 들으시는 아버님을 위로해 드려야만 했다. 그러나 이 못난 아들은 자정이 넘어서야 들어오시는 아버님께 위로를 해드리기는커녕 흥분해서 아버님을 욕하는 내 학우들만 두둔하고 있었다. (민주주의 본질에 입각해서; 필자 주)---12월 12일 밤, 굳은 표정을 푸신 아버님께서, ‘아버지는 시골 빈농에서 태어나 군장성이 되었으니 내 인생에 결단코 후회는 없다. 만일 이 아버지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나 너희들에게 세상의 모욕과 멸시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결코 좌절하거나 용기를 잃지 말고 꿋꿋이 살아야 한다.’

이런 마지막 말씀을 남기시고 뒤도 안 돌아보시고 차가운 밖을 향해 꿋꿋이 나가셨다. ---앞으로 아버님이 진정 아집과 사심 없이 국가를 위하여 주어진 기간 동안 훌륭히 봉사하시고 우리들 네 남매의 자상하신 아버님으로 다시 돌아오실 날을 바라며 손을 모은다.

이제는 정말 다른 차원에서 내 아버님에 대한 진정한 비판의 소리를, 또 진정한 충고의 소리를 내 학우들을 통해 들었으면 한다. 너무나 긴 방학이었다.’

당시 신문사 이상현 기자의 사족(蛇足); ‘아버지가 그 누구든, 아들로서의 인간적인 솔직한 고뇌와 심정이 잘 그려지고 담겨졌기 때문에 모두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게 아닌가 싶은 게 나의 짐작이었다. 그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 글이 투고되기 전, 전대통령은 아들이 쓴 글을 읽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전재국씨과 노건호씨는 같은 대학에서 전자는 경영학을 후자는 법학을 전공했다. 한 사람은 일간지에 아들로서의 심정을 토로했고 한 사람은 묵묵히 있다. 한 아버지는 자식에게 유언 같은 각오를 밝혔다. 다른 아버지는 4월 30일 검찰에 소환을 받아 상경하면서 아들에게 무슨 말을 남겼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법학을 전공한 아들에게 ‘증거 제일주의’를 법적으로 따져주었고, 행동으로 보여주었을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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