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만명게놈프로젝트’를 완수하고 (下) 게놈산업 강국의 비전
‘울산만명게놈프로젝트’를 완수하고 (下) 게놈산업 강국의 비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5.13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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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의료는 개인 맞춤형 의료와 동의어다. 어떤 질병에 걸렸을 때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치료법 대신 개개인에게 가장 적합한 맞춤 치료법을 찾아 적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맞춤 치료법은 어떻게 찾는 것일까? 먼저 각 개인의 체질을 정밀한 기준으로 분류해야 하는데, 이때 가장 핵심적인 정보가 바로 게놈이다. 키, 나이, 몸무게, 성별, 고향, 직업을 분류하듯 게놈을 활용하면 모든 사람을 정확한 게놈정보로 분류할 수 있다. 외형적 구별이 힘든 일란성 쌍둥이도 게놈 일부가 조금 다르고, 환경적 효소를 반영하는 외유전체(epigenome)를 분석하면 자신의 몸 상태를 가장 과학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처럼 자신의 게놈 체질에 맞는 유전자 맞춤형 치료는 곧 의료의 미래이기도 하다.

게놈은 생각보다 우리 생활과 밀접하다. 2019년부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정체도 게놈을 통해서만 풀 수 있다. 바이러스도 맞춤형인 셈이다.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침투하면 개인적 게놈 변이에 따라 감염률과 증세의 심각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바이러스와 질병에 대응하기 위한 신약개발에 개인의 게놈정보가 사용되면 더 정밀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인체에서 질병과 바이러스의 타깃이 되는 단백질을 찾고 그 분자상호작용을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제지하는 화합물을 발굴해내는 것이 신약개발의 기본 절차다. 이러한 예측 프로세스는 생체 내 바이러스의 활동에 직접 기능하는 단백질 레벨에서 이뤄지지만, 게놈과 전사체 등의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개인에게 더 적합한 약물 설계를 할 수 있다. 즉 개인의 유전형이 고려된 약물 혹은 약물 요법이 적용되는 맞춤 의료가 실현되는 것이다.

사실 각종 암이나 질병에 걸릴 확률이 게놈의 유전자 변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연구는 오래전에 확립됐다. 일례로 할리우드 유명 배우인 안젤리나 졸리는 본인에게 유방암 위험 유전자 변이가 있다는 게놈 분석결과를 보고 예방을 위해 유방절제술을 받았다.

게놈 기반 바이오산업은 세상에서 규모가 가장 큰 산업이고, 인류가 영원히 끌고 갈 궁극의 산업이기도 하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반도체, 컴퓨터산업을 계속 이어가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 게놈 기반 산업은 모든 다른 산업과도 관련이 있다. 심지어는 자동차, 항공기 산업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게놈정보를 기반으로 한 친환경 소재 개발은 울산이 할 수 있는 유력한 차세대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테면 옥수수 같은 식물 바이오매스를 이용해 잘 썩는 친환경 바이오 플라스틱을 개발하거나 특정 미생물 균주를 이용해 플라스틱, 비닐 등을 자연환경에서도 빠르게 분해하는 연구를 수행하는 ‘화이트 바이오’ 산업을 들 수가 있다.

게놈정보는 인간의 행동, 정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세계적으로 암, 우울증과 같은 질병에 관해 예측할 수 있는 지표로서 ‘게놈 바이오 마커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2019년 UNIST 게놈산업기술센터와 클리노믹스(주)는 공동연구를 통해 우울증 환자와 정상인의 혈액을 채취해 자살 및 우울증과 관련한 새로운 유전자 지표들을 찾았다. 이 지표를 이용해 AI 알고리즘으로 자살 시도나 고도의 우울증 발병 예측 모델을 개발해 세계적, 사회적 문제인 자살과 우울증을 예방할 상품개발에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런 행동이나 스트레스 관련 유전자 마커는 단순한 DNA 변이가 아니라 후천적으로 생활하면서 생기는 환경변화를 DNA 위에 기록한 지표를 찾아 예측하는 신개념의 게놈 연구인데, 이것을 ‘게놈 2.0 시대’라고 한다. 게놈 2.0 시대의 핵심은 게놈 자체를 넘어 단백질, 전사체, 대사물질 등 유전과 관계가 밀접한 다양한 ‘체’를 같이 분석하는 것으로, 이것을 영어로 ‘멀티 오믹스라고 한다.

UNIST와 울산시는 4월 26일, 한국인 1만명 게놈의 해독을 세계 최초로 완료했음을 선언했다. 울산만명게놈프로젝트가 서양인 게놈 지도에 더해 한국인 고유의 유전자 변이를 활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이다. 이는 한국이 게놈 강국이 되는 데 작은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감히 확신한다.

박종화 울산과학기술원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게놈산업기술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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