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으론 불가능한 ‘탄소중립’
탈원전으론 불가능한 ‘탄소중립’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5.02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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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정책은 개인적인 신념이나 믿음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입증된 진실과 미래에 일어날 파급효과까지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세계에너지협의회(WEC)는 한 국가의 에너지 정책을 평가하는 데 3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에너지 안보와 에너지 형평성, 그리고 환경적인 지속가능성이다. 즉, 에너지는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어야 하고, 보편적 접근성을 갖춰야 하며, 환경에 미치는 피해도 작아야 지속할 수 있다. 하지만 3가지 기준은 서로 상충하는 경우가 많아 ‘에너지 삼중고’라고 불린다.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원전 없이는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탈(脫)석탄과 탈원전을 동시에 추진하기 어려운 만큼 탄소중립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세계 각국은 차세대 원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에 우리 정부가 기존 정책을 바꿀 의지를 보여줄 확실한 방법은 탈원전의 재고다. 이 정부의 상징적 정책이 되다시피 한 탈원전은 에너지 전문가도, 기후변화 전문가도 모두 문제가 많다는 점을 잘 안다. 한전에서 만드는 전기를 사용하는 국민도 무리한 정책으로 인해 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됐다.

게다가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사장도 “현재 에너지 전환 정책은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신재생에너지만으로는 안정적인 전력수급이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신재생에너지는 기후에 따라 전력 생산의 차이가 크게 나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이 되기 힘들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SMR(Sm

all Modular Reactor, 소형모듈원자로)이다.

‘차세대 원전’으로 불리는 SMR은 전기출력 300MW 이하의 전력을 생산하며, 공장제작 및 현장조립이 가능한 소형 원전이다. 규모가 작다는 특성 때문에 전력망과 무관한 분산형 전원, 수소생산, 해수담수화 등 다양한 곳에 활용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저렴한 건설비로 투자 리스크도 적고, 탄소중립이라는 세계적 흐름과도 맞물려 있다. 최근 미국 바이든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나 빌 게이츠의 테라파워 등 원전 분야의 세계적 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SMR의 안전성에 주목했다. 탄소중립 현실화를 위해서는 더 안전한 원전기술이 필요한데 그것이 SMR이다. 게이츠는 원전 없이는 가까운 시일 내에 전력망을 탈탄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봤다. 입지, 시간, 계절과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대규모 발전이 가능하며, 탄소도 배출하지 않는 유일한 에너지원이기에. 다만, 원전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탈원전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 혁신적인 원전기술 개발로 안전성을 높이자는 주장은 눈여겨볼 만하다. 높은 건설 비용과 인간의 실수로 인한 사고위험, 폐기물 발생이라는 원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SMR을 속히 개발해야 한다.

2030년을 전후해 확대가 예상되는 세계 SMR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미국, 러시아 등 원전 설계기술을 보유한 모든 국가에서 각자의 모델을 보유하고 있거나 개발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한수원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중심이 되어 지난 2012년 표준설계인가를 받은 SMART를 개량해 경제성, 안전성 및 혁신성이 대폭 향상된 ‘혁신형 SMR’을 개발 중이다. 2028년 인허가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후 본격적으로 원전 수출시장에 뛰어들 계획이다. 정부도 지난해 개최된 제9차 원자력진흥위원회에서 혁신형 SMR 개발을 공식화한 바 있다.

우리가 보유한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산학연관이 합심해 개발하면 한국형 SMR이 향후 SMR 수출시장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상품이 될 수 있다. 다만, 안정적인 전력수급과 에너지 안보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판단이 배제된 전력수요예측이 정확히 이뤄져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에너지 정책 기조 변화가 불가피하다지만, 정치적인 요소가 고려돼 전력수요예측이 입맛 따라 변해서야 되겠는가. 단언컨대, 에너지 삼중고의 딜레마를 풀기 위해서는 전력수요예측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이동구 본보 독자위원장·RUPI사업단장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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