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불레스 오불리쥬 (지위가 높으면 덕도 높아야 한다)
노불레스 오불리쥬 (지위가 높으면 덕도 높아야 한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04.29 23: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불레스 오불리쥬(Noblesse oblige)”라는 격언은 캐나다 케벡 지방을 식민화하던 사령관이요 귀족 신분인 프랑스의 레비스 공작(duc de Levis)이 1808년에 사용한 것이 그 효시가 되고 있다. 물론 그 당시는 제1제정이 시작되던 시기여서 귀족 계급이 아직 잔재된 상황인지라 혈통이나 재산 혹은 공적에 의해 정치적, 법적 특권을 누리던 기사 이상의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 등에 적용하는 경구였으리라 여겨진다. 프랑스에서는 이 귀족 신분도 1848년 2월 혁명 후 루이 나폴레옹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제2공화정이 시작되면서부터 역사의 그늘 속으로 점점 사그라져갔다.

현대 프랑스어 문법에 의하면 위의 격언은 “La noblesse oblige”로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속담이나 격언은 고대 프랑스어 영향을 받아 흔히 명사구는 관사를 생략하여 사용하기에 여성 정관사 la를 생략하며 이 격언의 경우 운을 맞추고자 ‘bl’ 발음이 명사구인 ‘귀족’을 의미하는 ‘노불레스’에도 들어 있고 동사구인 ‘당연히 해야한다’는 의미인 ‘오불리쥬’에도 들어 있다.

그런데 이 격언이 현대로 넘어 오면서 그 적용 범위가 더욱 넓어지고 있다. 즉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급에 해당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 신분에 걸맞은 도덕적 책무, 즉 정직과 청렴 그리고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타인의 어려움에 대한 배려 등을 다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최고의 지위에 있을수록 그만큼 도덕적 책임은 더 중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고의 지위요 최고의 권세인 대통령 직을 지낸 분들의 퇴임 면모를 보자면 대체로 그 결과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 많은 분들이 재직 중에 그 특권을 이용하여 부정부패를 일삼아 온 게 사실로 들어나고 있다. 이번에는 괜찮겠지 하고 기대를 하였건만 우리의 소망과 자부심은 또 무너져 내리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 국민을 배신하는 이러한 비도덕적 행위는 가뜩이나 살기 어려운 이 시대에 우리 모두가 다시 일어설 기를 꺾어버리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 지미 카터 대통령의 경우 재임시에는 도덕 정치를 외치며 바르고 정직하게 일했다. 어떻게 보면 유연성이 부족하여 너무 우직하게 일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역대 대통령 중 그 치적이 별로지만 퇴임 후 청바지를 입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하여 집을 고쳐주며 세계를 누비는 모습은 너무 멋지다. 국가간 긴장이 팽배한 경우에는 그 현장에 달려가 중재함으로써 사건해결의 실마리를 터서 긴장해소를 하는데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얼마나 존경스러운 모습인가!

지난 4월 12일은 부활주일이었다. 뜻밖에 우리 울산대학교 이사장이신 정몽준 씨께서 내가 섬기고 있는 대영교회를 방문하셨다. 나는 수석장로로서 안내를 잘 하느라 무척 신경을 썼다. 우리 교회 현황에 대해서 설명도 해드리고 특히 조운 담임목사의 자랑도 하여 설교와 찬양에 은혜가 넘칠 거라고 말씀드렸다. 예배 도중에는 바로 뒷좌석에 앉아 예배드리는데 편하시도록 해드렸다. 예배가 끝날 무렵에는 옆 자리에 앉으신 박대동 장로 부부께서 새신자로 등록했기에 나는 그분들 앞에 나아가 축하곡을 부르며 정성껏 축하해 드렸다. 예배 후 친교실에서 음료수와 과일을 나누며 환담하는 시간을 십여분 정도 갖게 되었다. 공교롭게 내가 담임목사와 이사장 사이에 앉게 되어 오렌지 쥬스를 갖고 10여명이 건배를 하는데 내 잔이 마련되지 않았다. 모서리 자리라 미처 내가 앉으리라 예상을 못했나보다. 그러자 이사장께서는 포도를 하나 꼬챙이로 찍으시더니 그걸로 대신 하시겠다고 하여, 나는 나대로 잔을 사양했다. 그러나 이사장께서는 기어코 그 포도 하나로 건배를 외치셨다. 그러자 그 사이에 다시 내 쥬스 잔이 마련되어 내 주변 사람들이 다시 건배를 외치며 화기애애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조운 담임목사께서 이사장께 한마디 하셨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대단하시군요!” 그러자 이사장께서도 웃음으로 화답하셨다. 학교에서는 이사장이시고 그 날 손님으로 예배드리러 오셨기에 당연히 우대 받아야 마땅한데도 그 특권을 포기하는 마음 쓰임이 내 뇌리에 오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경제가 어려운 이 시기에 사회 지도자는 자신보다 더 힘들어하는 이웃에게 다가가 물질로 음식으로 가진 지식과 뜨거운 사랑으로 같이 나누어야 한다. 헌혈하여 피도 나누고 사후 장기도 나누는 사랑이 바로 우리 사회 지도자들이 마땅히 실천해야 할 덕목이다. 이런 운동이 더욱 확대되어 지속적으로 실천되면 우리 국민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라 확신한다.

나보다 더 힘들어하고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해 그들이 일어서도록 돕고 배려하는 게 현대의 참 “노불레스 오불리쥬”라 할 것이다.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