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름을 모르는 아이들
풀이름을 모르는 아이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04.2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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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당혹스러운 상황을 만날 때가 가끔 있다. 특히 내가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아이들이 너무 모를 때 느끼는 당혹감이 크다. 물론 이것은 실력이 보잘것없다거나 학력이 저하되었다든가 하는 문제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문제다.

어느 봄날,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 공책에다 자기가 아는 풀이름을 모두 적어 보게 한 적이 있다. 나무나 꽃 등을 포함해서 모든 식물의 이름이 가능하다고 했다. 시간을 제한하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시간을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곧 밝혀졌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몇 가지 풀이름을 적은 후에 더 이상 적을 게 없다는 듯, 뒤통수를 긁적이거나 볼펜으로 낙서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 가지 넘게 적는 학생들이 몇 있을 뿐, 나머지는 다섯 개 남짓하게 적고는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도저히 진전이 없을 것 같아서 반 전체 학생들이 함께 풀이름을 생각해서 칠판에 적도록 했다. 40명의 학생들이 저마다 새로운 이름을 부르고 그게 맞는지 자기들끼리 논쟁을 하면서 풀이름을 적어 나갔다. 그렇게 하여 100개가 넘는 풀이름들이 칠판을 가득 채우게 되었다.

그러나 칠판에 빼곡히 적힌 풀이름들을 훑어보노라면 당혹감은 더 커진다. 진달래, 제비꽃, 개나리처럼 봄에 익숙한 이름들도 더러 보이지만 그런 건 몇 개 되지 않는다. 수박, 참외, 딸기와 같은 먹거리가 나오기 시작하면 내용은 그쪽으로 일관한다. 파, 양파, 당근, 배추 등이 나오는 것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콩나물이 나오고, 급기야 고추가 아닌 풋고추가 나온다. 거의 농산물 시장의 상품 목록을 보는 느낌이 든다.

꽃 이름을 집중적으로 적는 경우에도 다를 바가 없다. 장미, 안개꽃, 백합, 난초로 발전하다가 카네이션, 아네모네, 양귀비, 에델바이스 등으로 나아간다. 혹은 나와 반 아이들 모두가 처음 듣는 이름을 불러 놓고는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파인애플, 야자, 키위와 같은 과일이 열거되기도 한다.

아이들이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진지하게 많은 이름을 찾아내기 위해 애쓴다. 그런데 왜 이럴까. 곰곰이 아이들이 적은 이름들을 따져 보니까 그것들은 모두 풀이라기보다는 상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그것들을 풀과 꽃으로 만난 것이 아니라 상품으로 만난 것이다. 식탁에서 만났거나, 과일 가게에서 만났거나, 꽃집에서 만났거나 텔레비전에서 만난 것이다.

아이들은 바쁘다. 해야 할 것, 신경 써야 할 것이 참 많다. 시험에도 안 나올 풀이름 같은 것을 알아서 무엇하겠는가. 교과서에 나온 내용이니까 강아지풀과 명아주의 뿌리가 어떻게 다른가 하는 정도는 외워 둬야 할 것이다.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면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웬만한 것은 다 해결해 줄 것이다. 돈으로 주문하면 다 구할 수 있을 텐데 굳이 관심 가져 무엇하겠는가.

그러나 그 와중에 아이들은 점차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본바탕은 모르면서 살게 되는 것 같다. 벼농사를 구경한 적 없이 밥을 먹는 것은 이미 오래 된 일이지만, 밀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상상할 필요도 없이 빵을 즐겨 먹고, 모든 어류는 맛이 있거나 맛이 별로인 생선 중의 하나로 통합될 것이며, 그조차 으깨어져서 튀긴 것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모든 동식물들이 본래의 제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가장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자란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어쩌면 그들 또한 하나의 인력 상품으로 우리 사회에 존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저마다 약간씩 경쟁력의 차이를 가지고, 그 차이에 버금가게 다른 인건비가 매겨진, 그들도 인력 상품의 하나로 세상에 얼굴을 내미는 것은 아닐까.

/ 고용우 울산제일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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