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여전히 판타지-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사랑은 여전히 판타지-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 이상길
  • 승인 2021.03.11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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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한 장면.
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한 장면.

 

스포일러가 있는 글입니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는 제목에 끌려 얼떨결에 보게 됐다. 멜로 영화로 제목이 다소 특이했던 것. 내일 너를 만나는데 어제의 너라니? 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아야겠다는 심산으로 시덥잖은 젊은 남녀의 연애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솔직히 내 나이쯤 되면 멜로는 가짜라는 걸 이미 안다. 현실에서 사랑은 에로도 많은데 동화 속 이야기처럼 순수하고 예쁘게만 포장되는 멜로영화는 분명 비현실적이다. 현실에선 멜로와 에로가 결합된 게 사랑인데 영화 속에선 물과 기름처럼 잘 섞이질 않는다. 멜로영화에 에로는 잘 없고, 에로영화에선 멜로가 잘 없다.

젊은 남녀의 첫 만남부터 시작되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역시 그간 수많은 멜로 영화들을 통해 익히 봐왔던 풍경이어서 별 감흥이 없었는데 중간에 그만 볼까하다가도 여주인공이 예뻐서 차마 끊질 못하고 계속 봤더랬다. 남자의 이름은 타카토시(후쿠시 소우타)였고, 여자는 에미(고마츠 나나)였는데 타카토시가 우연히 지하철 안에서 에미를 처음 보고는 첫 눈에 반해 데이트를 신청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에미도 타카토시가 싫지 않은 듯 데이트 신청을 받아주게 되고 이후 둘은 매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중반부에 이르니 드디어 제목이 왜 그 모양인지 이유가 밝혀지더라.

사실 에미는 다른 세계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다른 차원에서 온 사람인데 타카토시의 세계 바로 옆에 위치한 그 세계는 타카토시와는 시간이 반대로 흐르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타카토시가 늙어 가면 에미는 젊어지고, 에미가 늙어 가면 타카토시는 젊어지는 식이다. 그리고 둘의 세계는 5년마다 한 번씩 겹쳐져 서로 한 공간에서 만나 30일을 같이 있을 수 있게 되는데 타카토시가 지하철에서 에미를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된 때 둘은 똑같이 스무살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둘의 시간은 반대로 흐르기 때문에 타카토시가 에미를 지하철에서 처음 만난 날은 타카토시애겐 1일차지만 에미에겐 마지막 날, 즉 30일차였다. 그래서 자신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 타카토시를 향해 에미는 알 수 없는 눈물부터 흘렸다. 마지막 날이니까. 그를 다시 보려면 5년을 기다려야 하니까. 다른 세계에서 온 에미는 이 모든 걸 알고 있었고, 그래서 제목이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였던 거다. 이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속으로 ‘하. 사랑을 소재로 이런 스토리의 영화를 만들 수도 있구나’싶더라. 한 마디로 기가 찼다.

헌데 더 기가 찬 건 그걸 알고도 끝까지 봤다는 것. 또 이 영화의 100자평에 수도 없이 달린 글처럼 마지막엔 꼴사납게 눈물까지 글썽였다. 사실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된 건 그 100자평 중 ‘처음 볼 땐 마지막에 눈물을 흘리고, 두 번 째 볼 땐 처음부터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글 때문이었다. 해서 며칠 뒤 다시 처음부터 봤더니 진짜 그렇더라. 젠장. 작년에 재밌게 본 TV드라마 중에 <멜로가 체질>이란 작품이 있는데 나도 멜로가 체질인 건가? 에이. 설마.

사실 내 생각은 그렇다. 따지고 보면 장르적으로 멜로는 현실에서의 사랑과 가장 관계가 멀다. 남녀가 만나 알콩달콩 멜로를 찍을 때는 잠시 뿐이고 둘은 이내 에로로 접어든다. 그러면서 가끔 싸우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스릴러로 확 바뀐다. 또 관계가 오래되면 서로가 지루해지면서 다큐멘터리로 바뀌었다가 헤어질 때가 다가오면 공포로 변한다. 그리고 해어진 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마침내 한 편의 사랑 영화가 완성된다. 그리고 헤어진 둘은 각자 존재하지도 않는 멜로 같은 사랑을 다시 꿈꾼다. 사랑은 여전히 판타지다. 2017년 10월12일. 러닝타임 110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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