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의 ‘희년(禧年)’ 같은 글 보여드리는 게 꿈”
“가톨릭의 ‘희년(禧年)’ 같은 글 보여드리는 게 꿈”
  • 김정주
  • 승인 2021.03.02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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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로 변신한 유태일 약사
수필가로 변신한 유태일 약사.
수필가로 변신한 유태일 약사.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당송 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사람인 송나라 시인 구양수(歐陽修)의 ‘삼다(三多)’라는 말이 떠오른다. 글짓기라는 정삼각형의 세 꼭지를 이루는 ‘다작(多作), 다독(多讀), 다사(多思)’ 이 세 가지를 뜻하는 말이다. 글자 뜻 그대로 ‘많이 짓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라’는 의미이고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즉 ‘많이 듣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라’는 말과도 쓰임새가 비슷하다.

그의 근황을 접한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처음엔 고개를 갸웃했다. 약사가 웬 산문집? 그래서 수소문했고, 만나보기로 했다. 2월 마지막 토요일, 그의 이름을 딴 ‘태일 약국’ 부근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동강병원 입구 언저리에 있는 줄 알았던 약국이 찻길 건너편으로 옮긴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니….

올해 만 71세인 유태일 씨. 그를 어떻게 호칭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사실 그대로 ‘태일약국 대표약사’? 아니면 정치인? (그는 시의원을 거쳐 중구의회 의장을 지낸 바 있다.) 그도 아니면 문필가? 이런 고민은 그의 산문집 <불후의 명곡을 꿈꾸다>를 접하면서 이내 사라졌다. ‘약사가 쓴 산문’이란 수식어가 시선을 끄는 초록·연둣빛 표지의 산문집. 그와 만나기 전 소설가 지인한테서 들은 얘기가 있었다. 유 씨를 ‘U 수필’에서 흔쾌히 영입하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경주 ‘동리목월’에서 글공부 3년

‘에세이문학 출판부’에서 지난해 말(2020. 12.15)에 펴낸 ‘유태일 산문집’에는 지방의원 시절부터 써온 글 중에서 엄선한 57편의 산문(칼럼·기고문·수필)이 실려 있다. “저녁의 책상 앞, 글을 쓰는 시간이 하루 중 제일 행복하다.… 실타래 풀 듯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산문집을 여는 글이다.

그의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에는 ‘바람처럼, 구름처럼 흘러간 것들’도 있고, ‘어린 시절, 상처와 애환, 만남과 이별, 여행, 그리고 풀꽃 같은 잔잔한 감동들’도 있다. 그렇다고 신변잡기만 모아둔 건 아니다. 공감의 바다로 향하는 잔잔한 메시지들이 느낌표의 물결을 이루기도 한다.

‘산문’에 대한 그 나름의 지론이 있었다. “피천득 선생 같은 분은 수필을 ‘마음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 했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좋은 수필이란’이라는 제목의 글(‘유태일 산문집’ 201쪽)에서 그는 가르친 이의 생각을 이렇게 전한다. “‘수필은 교시의 문학이다. 성경만큼 지혜롭게 써야 한다. 아픔 같은 명사형은 제목으로 사용하지 마라. 작품을 통해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아야 한다. 좋은 수필은 첫째 주제가 분명하고 둘째 의미화가 잘되어 있다. 교훈적이어서는 안 된다. 쓰고자 하는 이야기가 탄탄하면 서정이 필요 없다.’ 깊이 새겨들어야 할 일침이었습니다.”

‘깊이 새겨들어야 할 일침’이란 표현은 그가 글짓기 수업 과정을 충실히 거쳤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앞으로 접하게 될 그의 글에서는 ‘교훈적인’ 글도 적잖이 만날 것만 같다. 스승의 가르침을 곧이곧대로 따르진 않을지도 모른다는 느낌 때문일까?

사실 그는 글공부를 경주의 ‘동리목월문학관’에서 3년간이나 했다. 울산 남구문화원에서 주인석 작가의 ‘스토리텔링 작법’ 특강을 들은 적도 있다. 어느 하나 기름지지 않은 자양분이 있었겠는가. 하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게, 변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물음표를 쏟아냈고, 그런 물음표는 그의 글이 ‘교훈적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과 맞닿아 있었다.

남부로타리클럽 회원들이 마련해준 생일 축하연에서 촛불을 끄고 있는 유태일 약사(분홍색 모자를 쓴 이).
남부로타리클럽 회원들이 마련해준 생일 축하연에서 촛불을 끄고 있는 유태일 약사(분홍색 모자를 쓴 이).

 

‘지구온난화’·환경보전에 각별 관심

그 이유는? 유태일 수필가는 이렇게 말한다. “내 주장이 많이 들어가는 칼럼과는 달리 수필에서는 자기 것만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자기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 못지않게 상대방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이런 말도 곁들인다. “사실 처음엔 전문성을 살려 건강에 도움 되는 에세이를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많이 달라진 겁니다.”

이처럼 남다른 생활이념은 그의 입김이 닿았던 사회관계망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태화강보전회 회장, 울산시약사회 회장, 울산시의회 보사환경위원장, 울산시 중구의회 의장, 울산시 신용보증재단 이사장…등등, 문학 관련 단체 이사를 비롯해 전·현직 직함만 해도 열 손가락에 가깝다.

지구 온난화와 이상기후에 대한 그의 관심은 유별난 데가 있다. 코로나19 사태도 지구 온난화와 유관하다고 판단한다. 세계적 기상이변을 꼬치를 꿰듯 엮어 보이기도 한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뱀들이 집 안으로 떼 지어 들어오고, 모진 날씨로 직장 나가는 것도 포기해야 한다니….” 그러면서 미국의 트럼프 직전 대통령이 주도한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웃기고 사악한 짓’이라고 질타한다.

그는 ’태화강보전회 회장‘ 시절로 되돌아간 듯했다. “인간이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는 걸 잘 알면서도 자기애에 너무 집착하는 게 문젭니다. 이웃끼리 나누지도 못하는 세상, 얼마나 서글픕니까?”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그의 이야기에는 마침표가 없었다.

“세대·빈부 간 격차를 좁힐 수 있는 사상을 누군가는 만들어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기보다 ‘영끌’, ‘비트코인’의 유혹에 더 빠지는 이 시대의 잘못된 흐름, 이대로 두어선 안 됩니다.” “남 못 되기만 바라지 않나, 남 엿보는 관음증에 사로잡히지 않나, 20~30년 전 일까지 ‘미투’라는 이름으로 끄집어내질 않나.”

“예수 재림 전에 인류 멸종할 수도”

그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획기적인 변화’였다. 도가(道家)의 창시자인 중국 노자(老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을 끄집어냈고, 루쉰의 <아Q정전>을 불러냈고, 미국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의 <월든>을 소환했고, 생물학자 ‘니컬러스 머니(Nicholas P. Money)’의 <이기적 유인원>까지 인용했다. 이들 작품에는 분명 공통분모가 있었다. ‘이기(利己)’가 아닌 ‘이타(利他)’, 바꿔 말해 ‘더불어’ 또는 ‘공동체’ 의식 같은 것이었다.

<이기적 유인원>에서 몇 줄을 인용해 보자. “지구 온난화로 인해 현재 지구는 말기 암 환자와 같은 상태에 있다. 하지만 인류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계속 이 사실을 외면한다.” <이기적 유인원>에게 말하는 ‘엄중한 경고’가 무엇인지도 알아보자. “인류는 신의 계시가 아니라도 조만간 멸종할 것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각종 기후재앙과 생태계 파괴, 그리고 인구 포화로 인해….”

이른바 ‘혼밥’, ‘혼술’, ‘욜로족’ 같은 신조어도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유태일 수필가도 먼저 짚고 넘어간 말이다. “이대로 가선 안 됩니다. 자기중심적 사고로는 예수 재림 이전이라도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린 더불어 같이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재림’ 얘기 끝에 알고 보니 그의 종교는 가톨릭(천주교). 그의 본명(영세명)은 ‘루카’, 부인의 본명은 ‘베로니카’로 부부가 ‘우정성당’을 같이 다닌 지 제법 오래라 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그가 꺼낸 말은 뜻밖에도 ‘희년(禧年, jubilee)’이란 단어였다. 가톨릭에서 성년(聖年)으로 여기는 희년은 49년마다 돌아오는 뜻깊은 해. 이 해에는 옥살이도 풀어주고 빚도 탕감해주는 밝은 관습이 있다. 유태일 수필가가 힘주어 말했다. “모든 이들에게 희년과 같은 그런 글을 써서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2018년 수필 등단… 각종 상 한아름

‘유태일 산문집’의 뒷장에서 시선이 멈췄다. 글제 ‘불후의 명곡’(73쪽)을 간추린 글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좋아하는 불후의 명곡은 ‘삼포로 가는 길’이다, 삼포는 이상향이며 피안의 세계이다.…누가 먼저 삼포에 가거든 내 소식도 좀 전해주오. 나는 지금 노래 대신 글을 쓰고 있다고. 명곡만큼이나 감동을 주는 글을 남기고 싶다고.”

중앙대 약대를 나와 현재 25명의 ‘재울산 중앙대 약사동문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울주군 두동면 은편리가 나고 자란 고향. 2년 전부터 도심 아파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연화봉 아랫마을로 돌아가 전원생활을 탐닉하고 있다. 울산제일중(15회)을 거쳐 울산고(13회)를 졸업했다. 정갑윤, 박대동 전 국회의원은 중학교 동기, 박맹우 전 시장과 이상탁 전 ‘재경 울산향우회’ 사무총장은 중학교 1년 후배다.

지난 2018년 ‘대구매일’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당선, ‘경북일보’ 수필 가작 당선, ‘대구일보’ 수필 가작 당선, 울산시약사회 학숙제 시 부문 장원이 그가 한꺼번에 거머쥔 열정의 결실. (사)한국수필문학진흥회 이사, 울산문인협회 회원이란 직함도 그의 만만찮은 필력과 실력을 입증해 준다.

대구 효성여대를 나온 부인 조순옥(67) 여사와의 사이에 2녀 1남을 둔 다복한 가정이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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