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參禪)과 침선(針線)
참선(參禪)과 침선(針線)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3.01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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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돌아오는 음력 1월 15일을 민속에서는 ‘정월 대보름’이라 부른다. 날은 같아도 승가(僧家)에서는 ‘동안거(冬安居) 해제일’이다. 의미의 중심이 다른 것이다. 올해 음력 1월 15일(양력 2월 26일)에 민속에서는 여러 가지 곡식으로 밥을 지어 먹는 풍속이 있지만, 그 의미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말할 수 있어서 생략한다.

‘동안거’는 승가 수행 방법의 하나다. 수행승이 안정된 수행 공간 즉 선방(禪房)에 모여 겨울철 석 달의 정진 기간을 정해 안거(安居)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안거’는 더운 여름철과 추운 겨울철에 3개월씩 일정한 수행 공간에 모여 공안(公案)이라는 화두(話頭)를 생각하는 수행행위를 말한다. 안거 기간에는 승려들이 외출을 삼가고 수행에만 전념한다.

참선은 특히 조계종 수행자의 대표적 수행 방법의 하나다, 해제일은 그 기간이 끝나 다시 만행의 수행을 시작하는 날이라는 의미가 있다.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가 ‘동안거 정진 대중’의 현황을 정리한 <경자년 동안거 선사방함록>에 따르면, 지난해 음력 10월 15일에 결제(시작)한 이번 동안거에는 전국 93개 선원(총림 7곳, 비구 선원 56곳, 비구니선원 30곳)에서 총 1천951명(총림 244명, 비구 1천54명, 비구니 653명)의 대중이 동참했다.

올해 동안거 해제일을 맞아 조계종 종정 스님은 물론 제방의 방장 스님과 각 종단은 해제 법어를 통해 수행 정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더 강조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은 “결제와 해제에 무관하게 전 생애를 걸어야 한다”며 사부대중의 부단한 정진을 당부했다.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성파(性坡) 스님은 ‘게고동’과 ‘이 뭐고?’를 비유한 법어를 내렸다.

게고동은 죽은 고동 껍데기 속에 몸을 숨기고 사는 고동을 말한다. 하지만 이 고동은 고동껍데기를 평생 지고 다녀야만 한다. ‘이 뭐고?’는 화두를 타파하는 대표적인 물음으로, 한평생 답습하고 반복해도 ‘이 뭐고?’의 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달고 다닌다는 것을 비유로 삼았다. 마지막으로 “개 한 마리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개 백 마리가 그 소리를 듣고 덩달아 짖어댄다(一犬吠影百犬吠聲)”는 말을 인용하며 독자적인 공부를 강조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필자는 창조적 안거의 하나로 ‘침선(針線) 수행’을 하게 된 속마음을 털어놓고자 한다.

‘침선’은 참선처럼 불교 수행의 또 다른 방법인 것 같지만, 실은 ‘바느질’을 한자로 바꾸어놓은 말이다. 혹자는 침선을 어찌 참선이라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침선도 하면 할수록 참선만큼 화두로 챙길 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다고 필자가 참선을 백안시(白眼視)하는 것은 아니다. 생활 참선인 침선(針線)을 청안시(靑眼視)하기 때문에 실천할 따름이다. 필자는 전통불교 전문강원 대교과 졸업 후 용맹정진, 철야정진 등 부담스러운 용어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참선이 부담스러워서인지 이판 소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보통 ‘절집 수행’이라 하면 대부분 떠올리는 수행 방법이 염불, 기도, 참선과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대중처소의 수행과는 달리 말사(末寺) 혹은 토굴에 머무는 스님들은 분명 대중이 함께 활동하는 본사(本寺)의 수행 방식과는 사뭇 다른 사고와 행동을 보인다. 고정된 틀을 벗어나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깨달음을 얻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수행의 다양성과 전문성 심화의 관점에서도 이해해야 할 수행 방법의 하나다.

이들의 고집스럽고, 흔들리지 않고, 번뇌를 잊은 듯한 수행 방법은 현대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기도 한다. 일상 자체가 수행이라는 대중처소 밖 수행자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또 다른 수행 방법으로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스님들의 수행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또, 좀 더 귀 기울여보면 수행 방법론의 새로운 변화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종교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 때문에 신부, 목사, 승려는 성당, 교회, 사찰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직접 소통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상 자체가 수행이라고 보는 승려가 추구하는 수행의 가치는 관습·답습·반복적인 것과는 차이가 있다. 침선을 함께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침선의 재료라 해야 각종 행사에서 받아온 친환경적 ‘베 가방’이다. 참선에서 ‘이 뭐고?’가 쌓인다면 침선에서는 가장자리를 마무리하고 남은 자투리 헝겊이 늘어난다. 이번 동안거 침선 수행에서 쌓인 헝겊은 크고 작은 것이 250여 점을 헤아린다. 그 사이 바늘에 찔려가며 깨우친 것이 있다. 알고 보니, 듣고 보니, 확인하니, 경험하니와 같은 ‘사실 점검’의 중요성이다. 더불어, 불상 혹은 불화에 금선(金仙)의 귀는 유난히 크게 드러나 보이지만 입은 작게 다문 듯이 보이는 까닭도 새삼 알게 됐다. 금신(金身)의 과장된 큰 귀는 남의 말은 귀를 기울여가며 경청하지만, 결코 중간에 이러쿵저러쿵 딴지를 걸지 않는다는 의미의 상징적 이미지일 것이다.

침선은 해진 옷을 깁기 위한 유비무환의 수행이고, 찔린 바늘 끝은 수면 마장을 쫓는 장군 죽비이다. 침선은 삼백육십 오 일이 수행인 탓에 결제와 해제가 따로 없다. 다만 게으름을 멀리하고 부지런함을 가까이할 뿐이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조류생태학 박사·철새홍보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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