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동구 출신 서진문·성세빈 항일운동가 나라사랑 정신 후손들이 이어가 ‘훈훈’
울산 동구 출신 서진문·성세빈 항일운동가 나라사랑 정신 후손들이 이어가 ‘훈훈’
  • 김원경
  • 승인 2021.03.01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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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출신 서진문·성세빈 항일운동가의 옛날사진. 성세빈(왼쪽)과 서진문(오른쪽).
동구 출신 서진문·성세빈 항일운동가의 옛날사진. 성세빈(왼쪽)과 서진문(오른쪽).
성세빈 선생의 손자인 성낙진(왼쪽)씨와 서진문 선생의 외손자인 천영배(오른쪽)씨.
성세빈 선생의 손자인 성낙진(왼쪽)씨와 서진문 선생의 외손자인 천영배(오른쪽)씨.

 

100여년 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울산 동구출신 두 항일 운동가의 나라사랑 정신이 후손들을 통해 이어지고 있어 훈훈한 미담이 되고 있다.

지난달 16일 동구 일산동에서 열린 보성학교 전시관 개관식에 친척(팔촌)지간인 천영배(74·고 서진문 외손자) 씨와 성낙진(71·고 성세빈 손자)씨 등 두 항일운동가의 후손이 함께 했다

이들은 지난 2018년 11월 동구 화정동 서진문 묘역에서 열린 서진문 선생 서거 90주기 추모식에서 자리를 함께 한 이후 2019년 8월 열린 고 서진문 선생 흉상 제막식, 광복절 기념행사 등 항일 독립운동 관련 주요 행사에 자리를 함께하며 선조의 애국정신을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서진문(1900~1928)과 성세빈(1893~1938) 선생은 모두 동구 일산동에서 태어난 고종사촌지간으로 같은 마을에서 자라며 서로를 무척 아꼈다.

서진문 선생은 1924년 성세빈 선생이 운영하는 보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에게 항일정신을 알렸다. 1926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운동과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이후 1928년 일본에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받다가 석방됐으나, 다음 날 순국했다.

서진문의 유해는 다음해인 1929년 1월 동구 일산동으로 운구돼 면민장으로 거행됐다. 성세빈 선생이 운구를 직접 옮기고 비문을 썼으며, 서진문의 묘는 동구 화정동 화정공원에 위치해 있다.

보성학교 설립자인 성 선생은 일제 탄압으로 1929년 보성학교 교장에서 물러났으나, 보성학교는 1945년 폐교될 때까지 24년간 21회에 걸쳐 졸업생 499명을 배출하며 동구지역 학생들의 교육과 독립운동 함양에 큰 역할을 했다.

성 선생은 보성학교 외에도 동면청년회, 신간회 등을 통해 청년운동과 학생 계몽운동을 펼치다가 1938년 46세로 사망했다. 주민들은 성세빈 사망 이후 1940년 그의 공로를 기리는 송덕비를 세우기도 했다.

동구는 그의 항일운동 정신과 보성학교의 역사적 가치를 알리기 위해 옛 보성학교 터에 전시관을 설립했고, 국가보훈처에 현충 시설 지정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동구 관계자는 “선대 인연이 후대에도 이어져 귀감이 되고 있다”며 “지역 학생과 주민에게 나라 사랑 정신이 퍼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원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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