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시한폭탄, 학교폭력
인생의 시한폭탄, 학교폭력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2.25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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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여자배구선수 자매로부터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피해자들의 폭로로 배구계가 큰 진통을 겪고 있다. 그 뒤로는 남자배구선수와 아이돌 멤버, 배우 등 유명인을 가해자로 지목한 학교폭력 폭로가 꼬리를 물고 있다. ‘나도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이른바 ‘학교폭력 미투’ 현상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것이다.

학교전담경찰관으로 근무하면서 많은 학교폭력 사건을 옆에서 지켜본 결과, 제대로 봉합되지 않고 종결된 사건이 적지 않다. 여기서 ‘봉합’이란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와 피해자의 용서’를 의미한다. 화해절차가 매끄럽지 못하면 피해자는 사건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평생을 고통과 분노 속에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학교폭력이라는 시한폭탄의 타이머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한폭탄은 가해자가 가장 화려하게 빛날 때 터지는 경향이 있다. 지금처럼 SNS가 활성화된 사회에서는 유명 연예인들뿐 아니라 누구라도 시한폭탄의 제물이 될 수 있고, 그 파급력 또한 강하다.

작년부터 코로나19 사태로 정상적인 학사운영이 힘들어져 비대면 수업일수가 늘어나면서 신체폭력은 많이 줄었지만 사이버 공간의 폭력은 증가추세에 있다. 작년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으로 촉발된 사이버 공간의 성폭력은 여전히 학생들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최근에는 친구나 후배의 카카오톡 계정을 빼앗아 팔거나 어플을 깔고 가입하면 지급되는 가입 축하 포인트를 빼앗는 등 새로운 형태의 학교폭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상대방의 표정이나 감정을 읽기 힘들다. 가해자가 별일 아니라고 부탁한 것도 피해자에게는 큰 부담이 되고, 강요나 협박이 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사이버 폭력은 피해자에게 지속적이고 심각한 피해를 남기지만 가해자는 죄의식을 별로 못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학교폭력 사건은 진정한 사과와 용서 없이 가해자 처벌로 종결되고, 그렇게 또 하나의 시한폭탄이 만들어지곤 한다.

그동안 경찰은 학교폭력 사건을 ‘가해자 처벌’ 위주의 형사사법 체계에 따라 처리해왔다. 하지만 이는 피해자를 소외시키고 범죄피해 회복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회복적 경찰활동’의 도입이다. 아직은 도입단계지만 민간 대화전문가 주재로 진행되는 ‘회복적 대화모임’은 피해자가 느낀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고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학교폭력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갈등이 쌓이는 층간소음, 가정폭력 등 해결이 쉽지 않은 사건에 우선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그동안 쌓인 오해를 대화로 풀고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진정한 관계 회복을 추구한다는 장점이 있다.

학교폭력 미투 현상은 현재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에게 어떠한 학교폭력 예방 교육보다 더 효과가 있어 보인다. 학교폭력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또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통해 학교폭력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해결 방법을 다시 고민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렇게 된다면 피해자를 평생 고통 속에, 가해자를 불안 속에 살게 하는 ‘학교폭력’이라는 시한폭탄을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지게 해체할 수 있을 것이다.

손성민 울주경찰서 여성청소년계 학교전담경찰관, 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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