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민철 칼럼]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
[노민철 칼럼]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2.25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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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올해 90세고 아내는 86세다.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는 자신의 살아온 삶 전부를 다시금 절절히 느낄 수 있는 나이다. 필자의 아버지, 어머니 이야기다.

아버지는 어릴 때 만주 신경(지금의 장춘)에서 살다 중학교 1학년 때 해방돼 귀국하여 고향인 대구에 정착했다. 불행하게도 고3 때 6·25가 발발하면서 공군에 자원입대하여 무스탕 전투기 정비사로 복무하다 종전 후 3년이 지나 전역했다고 한다.

현재 얼마 남지 않은 6·25 참전 생존 용사라고 작년에 국무총리에게 받은 은메달과 전쟁 시 받은 훈장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신다. 그 후 결혼하여 아들 둘을 둔 상태에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월남전에 미군 군무원으로 가게 되었다. 당시 한 달 월급이 공무원 일년 연봉보다 많아 위험을 무릅쓴 지원자가 많았다 한다.

하는 일은 보트로 메콩강을 올라가 미군에 군수품을 전달하는 일이었다. 어디서 베트콩이 나올지 몰라 항상 M-16 소총을 휴대해야 했다.

이 일을 4년 하면서 돈이 조금 모이자 귀국했다. 몇 번의 사업 실패 후 40대 중년의 나이에 시작한 철판 사업에서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둬 처자식을 간수하며 살 수 있었다. 몇 년 전 영화 ‘국제시장’에 나온 한국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온몸으로 겪은 산 증인인 셈이다.

당신께서는 65세에 은퇴하여 농사를 지으며 간혹 여행도 다니는 여유로운 생활을 즐겼다. 그러나 80세가 넘으니 통풍, 척추관협착증 등이 생기면서 이제는 보행 보조기에 의지하여 몇 발자국 걷는 게 전부인 좁은 세계에 갇히게 되었다. 다행히 정신건강에는 문제가 없어 인지기능은 잘 유지되고 있다.

어머니는 항상 아프다고 하면서 살았지만 큰 병 없이 지내다 2년 전부터 시작된 인지장애 증상이 최근 더 심해져 신경과에서 꾸준히 진료를 받았다. 지금은 초기와 중기 정도의 치매로 진행되어 성격 및 감정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망상적인 행동이 나타날 때면 난폭한 행동을 보이기도 하고 외부로 나가려 해서 행동이 불편한 아버지께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사실 대부분의 시간은 약간 기억력이 떨어지는 정도로만 보이고 간단한 대화를 할 때는 전혀 치매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재가 요양보호사가 하루 3시간씩 방문해 도움을 주고 두 아들이 번갈아 가며 이틀에 한 번씩 도움을 준다.

그래도 많은 시간을 두 분이 보내게 된다. 이때 장소에 대한 지남력(상황이나 환경 따위를 올바로 인식하는 능력)이 없는 어머니가 집을 나가면 어떡하나 하는 아버지의 걱정은 머릿속을 맴돈다.

아버지의 걱정과 달리 두 아들은 어머니의 치매 진행과 보행 보조기에 의존하는 아버지의 건강 상태를 염려한다. 아들들이 아버지에게 조심스럽게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는 것에 대해 의논을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한 명은 몸에 이상이 있고 한 명은 정신에 이상이 있으니 서로에게 의지해야 더 좋다”며 “내가 죽고 나면 요양병원에 모셔라”라고 하신다.

“60년 이상 해로한 것만도 큰 복인데 여기서 뭘 더 바라겠냐”고 늙은 철학자처럼 말씀하신다.

두 분께서 여생에서 큰 고통 없이 보내시길 기원할 뿐이다. 아니 이 세상 모든 아버지, 어머니가 그랬으면 좋겠다.

노민철 씨엘요양병원 진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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