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배출 저감과 원자력발전
탄소 배출 저감과 원자력발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2.24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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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4년간 하루걸러 한 번씩 나오는 뉴스가 ‘원자력’ 관련 뉴스다. 긍정적인 소식보다는 부정적인 뉴스가 대부분이라 안타깝기 그지없다. 원자력 관련 소식만 나오면 필자의 20대 때가 떠오른다.

필자가 원자력 분야에 입문하게 된 것은, 1987년 봄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한국에너지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입사하면서였다. 1980년대의 원자력발전 현황은 고리 발전소 일부가 상업운전 중이었고, 나머지 몇 곳의 발전소는 시험운전 중이거나 건설 중이었다. 한마디로 초기 걸음마 단계였다.

당시 원자력연구원은 국내 최대의 국책연구소로 연구원 숫자만 천 수백 명에 이를 정도였다. 주된 연구목표는 한국형 원자로 설계, 핵연료 국산화 등이었는데, 이렇게 표면에 드러난 평범한 목표 뒤에는 갑질을 해대는 미국의 공룡기업 W사의 횡포로부터 벗어나야겠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몇 가지 사례를 꼽아보자면, 고리 1호기와 2호기는 미국에서는 시공된 적이 없는 시험용 모델로 안전성과 효율성 검증이 안 된 모델이었다. 그리고 유지운영비가 말도 안 되게 비쌌다. 필자가 연구했던 증기발생기의 전열관도 비슷한 유형과 재질의 유럽산에 비해 무척이나 비싼 가격이었다. 설계부터 건설, 운용, 보수에 이르기까지 W사의 갑질이 안 미친 곳이 없었다고 보면 된다.

이에 원자력연구원과 주무기관인 한국전력은 어떻게든 국산화를 통한 원자력 자립을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한국형 원자로 설계와 핵연료 국산화 연구를 시작했다. W사의 전방위적인 방해와 로비를 뚫고 미국의 후발 원자력설계업체인 C사와 협업하여 상기 사업의 첫 삽을 뜨게 되었다. 코네티컷주의 윈저라는 작은 도시에서 수십 명의 젊고 유능한 인력들을 필두로 수년간에 걸쳐 여러 차례 연구인력들이 파견되어 각고의 노력 끝에 한국형 원자로의 설계를 이끌어냈고, 연이어 수백 명의 연구인력들이 다양한 방면으로 파견되어 핵연료 국산화 등 다방면에 걸쳐 다양한 성과를 이루었다.

이후에도 이어진 노력 덕분에 국산 기술로 설계한 한국형 원자로가 건설되어 발전되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각종 부대기술과 장비도 대부분 국산화되어 현재 운용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원자력발전의 설계에서 건설, 운용까지 토털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국가가 되었다. 심지어 아랍에미리트에 수출까지 하고 있고, 정책적 지원만 된다면 반도체, 조선업 등과 더불어 전 세계 수주량 탑(top)을 기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지금도 당시에 뭔가를 이루겠다는 연구원들의 뜨거운 열정을 잊을 수가 없다.

국민의 생명과 생활에 직결된다고 라이프 라인(life line)이라고 불리는 필수 인프라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전기, 수도, 가스 등이다. 이 중에서도 우선을 꼽으라면 전기에너지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지금도 대부분의 전기에너지는 엄청난 탄소 배출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 현재 인류에게 가장 긴급한 사안이 탄소 배출 저감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를 해결해야 한다. 인류가 2019년 한 해에 지구가 처리할 수 있는 용량 이상으로 배출한 온실가스가 510억t에 달했다고 하는데, 이 중 전기를 생산하면서 발생한 온실가스가 138억t(27%) 수준이었다. 즉 온실가스 배출이 없거나 적은 전기에너지를 생산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합당한 에너지원이 신재생에너지인데, 문제는 신재생에너지만으로는 소요되는 전기 수요를 충족시키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요즘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빌 게이츠’는 저서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에서, “전기차, 전기 난방, 공장 스마트화 등을 고려하면 ‘탄소 중립’을 위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전력이 현재의 2.5배 이상이 필요해진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전기를 어떻게든 만들어야 하는데, 그는 “원자력발전은 여러 나라에서 논란이 되고 있지만, 현세대 원전은 화석연료 등 다른 어떤 발전소보다도 안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고, 이보다 더 안전한 차세대 원전도 개발되고 있다.”며 원자력발전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와 같은 주장은 빌 게이츠 외에도 많은 에너지 전문가들이 동조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국내의 에너지 정책을 되짚어봐야 한다. 당연히 ‘탄소 배출 저감’과 ‘안전’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석탄화력발전부터 줄여야 한다. 그다음은 천연가스발전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적지만 이 또한 화석연료이기 때문이다. 그다음쯤이 원자력발전이 될 것이다. 현재 국내 전기생산의 가장 큰 축은 석탄화력발전이다. 이 비중을 줄여가야 할 시점에, 이전 정권에서 질러 놓은 초대형 석탄발전소가 속속 완공되어 올해부터 발전에 들어갈 예정이란다. 대한민국의 백년대계를 위해 지금이라도 왜곡되고 있는 전기에너지 시장의 구조를 정상화시켜야 한다. 국민의 생활, 생명과 직결되는 라이프 라인은 함부로 손대면 안 된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 대표이사·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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