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풍경소리]간절함을 담은 간절곶
[울산의 풍경소리]간절함을 담은 간절곶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1.18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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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함을 담은 간절곶,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간절하면, 간절히 원하면, 간절히 기도하면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진다는 소망과 믿음을 누구나 가지고 있기에 이름부터 호감이 간다. 먼 바다에서 바라보면 긴 간짓대(대나무 장대)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니 참으로 그럴싸하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해돋이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니 제 이름값은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간절곶은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 동쪽 해안에 자리한 곶으로, 북쪽 서생포와 남쪽 신암리만 사이에 돌출된 부분을 일컫는다. 대부분 암석해안으로 이루어져 있는 간절곶에는 바다를 지키는 등대도 있어서 다른 곳과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울산 12경’의 한 곳으로 손꼽힌다.

동해안의 일출명소인 정동진, 호미곶과 함께 유명해진 간절곶은 정동진보다는 5분, 호미곶보다는 1분 빨리, 그러니까 전국에서 가장 먼저 해돋이를 볼 수 있는 곳이어서 해마다 새해 아침이면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이날 울산시민들은 이곳을 아예 외지 방문객들에게 양보하고 다른 곳에서 일출을 맞기도 한다.

울산이 일찍이 ‘산업도시’, ‘공해도시’란 이름으로 알려지다 보니 사람들은 천혜의 자연자산과 소중한 문화자산을 가진 보배로운 도시임을 잘 알지 못한다. 1960년대 산업화의 길로 들어선 지 반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 울산은 ‘생태도시’, ‘첨단스마트도시’로 새로 브랜딩해가는 중이다.

울산은 곳곳이 산이고 강이고 바다이다 보니 접근성 뛰어난 자연자원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그래서인지 시민들의 삶은 풍요롭고 여유로워 보이고, 발길 닿는 곳마다 이국적인 풍경을 즐길 수 있어서 좋다. 가끔씩 간절곶을 찾으면 초원에 우뚝 선 등대 아래쪽, 바다와 맞닿은 곳에 눈길 끄는 것이 있다. 소망우체통이다. 높이 5m, 너비 2.4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우체통이라고 한다. 다들 호기심에, 장난삼아 내가 나에게 엽서를 쓰기도 하는데, 우편물을 드문드문 거두어 간다고 해서 ‘느린 우체통’으로 불리기도 한다.

등대 주변은 솔숲이다. 등대가 흰색이어서 초록 숲과 푸른 바다 사이에서 더욱 청아해 보인다. 울기공원처럼 울창하지는 않아도 꼬불꼬불한 모양이 정겹다. 이곳에는 영화 ‘한반도’와 MBC드라마 ‘메이퀸’, ‘욕망의 불꽃’의 세트장인 드라마하우스가 있다. 이제는 카페로 변해 누구나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볼거리가 되었다. 공단이 지척이긴 해도 시골의 평화로운 정서를 흠씬 느낄 수 있고, 무겁고 복잡한 머리를 식히는 데도 한몫을 한다.

해안으로 밀려오는 파도가 철썩 처얼~썩 소리를 낸다. 등대 앞 바닷길을 따라가면, 예전엔 좌우로 즐비했던 포장집과 찻집이 사라져 다소 황량한 느낌은 들어도, 덕분에 길은 넓고 환해졌다. 망연히 바라보는 바다는 빼어난 수채화가 되고 파도소리는 힘찬 연주곡이 된다. 그곳에서 차를 마시고 팥빙수를 먹던 지난 시간들이 스멀스멀 향수로 되살아난다. 예전에 아이들과 바닷물에 발을 담근 채 게를 잡고, 고동을 건지고, 성게를 들추던 일도 아련히 떠오른다. 해안가 횟집에서 탱글탱글한 생선회를 먹던 일도 달콤한 추억으로 보관 중이다.

아이들은 모두 출가했고 나 또한 나이가 드니 간절함도 덜한 것 같다. 갈증과 배고픔이 사라지고 소망도 욕망도 퇴색해버린 느낌이다. 젊은 시절처럼 그리 아등바등 살면 뭐 하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내게 간절한 그 무엇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아침기도 때마다 애원하고 염원하며 내가 바라는 소망 몇 가지를 늘 고백하고 다짐하고 있으니 말이다.

꿈과 희망과 소망을 기원하는 곳, 환희와 기쁨을 안겨다주는 간절곶이 내가 사는 도시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둥마냥 든든하다. 젊은 날의 달력은 촘촘하고 빽빽했으나 지금 나의 시간표는 느슨하고 헐렁해서 여기저기 공백도 보인다. 그래도 날마다 주어지는 선물 같은 시간을 후회 없이 쓰려고 애쓴다. 나를 버티게 하는 삶의 열정과 간절함이 가득한 간절곶으로 오늘도 발길을 옮겨본다.

우진숙 남구 삼산중로, 울산과학대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강좌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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