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투쟁 출구전략 마련해줘야
단식투쟁 출구전략 마련해줘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1.13 22: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11일부터 울산학교비정규직노조 지연옥 위원장이 울산시교육청 로비에서 ‘목숨을 담보로 한’ 무기한 단식투쟁에 들어갔다(본보 12일자 6면). 13일로 3일째다. 이날 시교육청에서 만난 지 위원장은 초췌해진 모습이 역력했다. 건강상태를 물었더니 말없이 웃기만 했다. 옆에 있던 김선진 학비노조 부위원장이 말을 받았다. “벌써 근육이 빠지고 있다”는 것.

정상인이라면 단식 사흘(72시간) 뒤부터 건강에 이상이 온다. 72시간이 지나면 체내에서 당이 모두 빠져 나가기 때문이다. 단식투쟁 첫날을 ‘72시간 이후’로 보는 이유다. 사람은 물 없이 3일, 공기 없이 3분, 음식 없이 3주(21일)를 버티기 힘들다고 한다. 목숨을 담보로 한다는 게 말이야 쉽지, 보통 결기론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다. 그러기 때문에, 웬만큼 중대한 사안이 아니면 잘 하지 않는 투쟁이 단식투쟁이다.

단식투쟁을 시작한 지난 11일, 지 위원장은 울산학교노동자지역연대회의(학비노조+여성노조+공무직노조)의 교섭안에 대한 교육감의 결단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는 학교노동자들이 받고 있는 차별을 철폐해 달라는 ‘을(乙)’들의 요구”라고 했다. “특히 초등돌봄전담사 임금체계 1유형 전환에 대한 약속을 교육감이 지켜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시교육청도 할 말은 있다. “지역연대회의가 제출한 163개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는 데 약 486억원이 소요된다”고 했다. 또 “53개 직종이 제각기 임금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실정”이라며 “교육공무직 처우개선 문제는 단체교섭을 통해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물론 울산지역 학교노동자 연대회의의 교섭안이 모두 받아들여질 순 없다. 이들도 이를 잘 안다. 지역연대회의가 제출한 교섭안은 전국연대회의와 17개 시도교육청 대표인 경남도교육청이 타결할 사안이다. 하지만 몇 개 핵심 사안은 시교육청이 그동안의 교섭과정에서 개별적으로 지역연대회의와 약속했던 것들이다. 지 위원장은 약속한 사안만이라도 이행해 달라고 호소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 단식투쟁이라고 했다.

지 위원장의 단식투쟁의 속내를 보면 울산지역 학교 노동자 노조들의 이해가 얽혀 복잡하지만 ‘비정규직의 절박함’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차별대우에 대한 인간적인 모멸감, 약자의 서글픔, 기울어진 현실에 대한 분노 등이 뚝뚝 묻어난다. 백번 양보하고 물러서기만 하는데도 약속한 것조차 이행해 주지 않는다는 비통함이다.

지 위원장의 단식투쟁 장소는 노옥희 교육감의 출퇴근길인 시교육청 로비다. 그런데 노 교육감은 이곳을 비켜 지나다닌다. 지 위원장은 단식투쟁 후 한 번도 교육감을 만나지 못했으며 시교육청 측으로부터 어떠한 제의도 없었다고 전했다. 대표(중앙)교섭을 우선하는 원칙이 있다지만, 이유야 어쨌든 한 쪽은 절박함에 목숨까지 걸고 있는데 피하기만 해선 될 일은 아닌 것 같다.

노옥희 교육감은 교육자, 노동운동가, 야당정치인을 두루 거치면서 비정규직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 진정성도 믿는다. 지난해 학교청소노동자들의 쉼터가 열악하다는 문제가 제기되자 즉시 시정한 일도 있었다.

노 교육감은 지 위원장이 더 이상 건강을 해치기 전에 만나서 솔직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 선후를 명확히 하고 가이드라인도 제시해줘야 한다. 이는 지 위원장이 단식투쟁을 마칠 수 있도록 하는 출구전략이기도 하다. 노 교육감이 기자회견 때마다 언급하는 ‘사랑하는 교육가족 여러분’ 속에는 분명히 학교노동자들도 들어가 있을 것이다. 이제는 교육감이 결단할 때라고 생각한다.

정인준 취재2부 부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