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풍경소리]숯못 산책로의 철조망, 왜 못 치울까
[울산의 풍경소리]숯못 산책로의 철조망, 왜 못 치울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1.04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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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못생태공원’을 걷는다. 중구 성안동 주택지에서 가까운 작은 저수지이다. 둘러보는 시간은 30여 분. ‘성안옛길’과 ‘칼국수 맛집’ 근처여서 길손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울산 도심과 시골의 경계를 따라 성안옛길을 걸을 때 잠시 쉬어가기에 좋다. 이름은 많이 알려지지 않아도 한번 다녀간 사람은 누구나 다시 오고 싶어 할 정도로 소박한 멋이 돋보여 나도 종종 들르던 곳이다.

숯못의 물색은 옅은 검은색이다. 오래전에 한 노파가 검은 숯을 씻었다는 전설 때문에 그런지 고인물이어서 탁해 보이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저수지가 한때 옛 성안 주민들의 빨래터였고, 농수공급처였던 것은 사실이다. 2008년에 중구청이 이곳을 친환경 자연생태공원으로 꾸민 뒤부터는 야생 동·식물의 서식공간이자 학생과 주민들의 자연관찰 및 휴식 공간으로 환영을 받았다.

저수지를 가로질러 보행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주변을 둘러볼 수 있도록 친환경적으로 가꾸어져 누구든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데크광장에서 출발해 인근 야산 숲길 산책로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저수지 중간을 지날 즈음 흉물스러운 구조물과 철조망이 길을 막고 있는 게 아닌가. 나와 반대편 숲길 산책로에서 데크광장 쪽으로 오던 가족과 지인 일행이 발길을 되돌리고 있었다. 길은 나 있어도 오갈 수 없는 반쪽 길이 되고 만 것이다.

얼마 전, 연애인 최주봉이 성안 둘레길과 구도심 길을 걷는 프로그램에 따라 숯못을 찾은 적이 있다. 그도 예외 없이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어머, 철조망이 왜 쳐 있어. 저쪽에서 사람들이 못 오잖아”를 연발하며 어리둥절해하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무슨 이유로 길을 막아야 했을까? 안내문도 없이…. 혹시 ‘삼천갑자 동방삭과 마고할미’ 전설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전설에 따르면 옛날 중국 곤륜산에 서왕모(西王母)라는 여선(女仙)이 불로불사의 명약을 가지고 있었다. 동방삭이 그 약을 훔치려다 실패하고 대신 복숭아를 훔쳐 먹고는 18만 년을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서왕모의 분노를 산 동방삭이 도피생활에 나섰고, 서왕모의 명을 받은 마고할미가 그를 잡으러 울산 숯못까지 오게 되었다. 할멈은 변신술이 뛰어난 동방삭을 잡기 위해 꾀를 부렸다. 숯못에서 오랫동안 검은 숯을 씻고 있었던 것. 이를 기이하게 여긴 한 나그네가 “할멈은 왜 숯을 그렇게 씻고 있소”라고 묻자 할멈은 “검은 숯이 흰 숯이 되도록 물에 씻어 바래는 중이오”라고 답했다. 그러자 나그네는 “난 삼천갑자를 살았지만 검은 숯이 흰 숯으로 바래는 일은 처음 보는 일이오”라고 말했고, 마고할미는 기다렸다는 듯이 동방삭을 잡아갔다.

이처럼 숯못은 동방삭의 실언과 마고할미의 인내가 주는 교훈과 재미를 담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동방삭의 실언이 스스로 화를 자초했듯, 중구청이 사유지 구매와 환매를 매끄럽지 못하게 한 것이 화근이 되고 말았다. 생태공원과 구민문화체육센터를 짓겠다고 사유지 등 1만여㎡를 사들였으나 구민문화체육센터를 다른 곳에 옮기기로 하면서 토지를 원소유자에게 도로 팔고 말았던 것. 중구청은 이때 공원데크도 포함된 용지를 같이 팔았고, 땅주인은 사유지 침범을 이유로 공원 일부를 통제했다. 출입통제는 일시 풀렸다가 땅주인의 실력행사로 길은 또다시 막히고 만다. 많은 세금을 들여 꾸민 산책로가 사유지 침범을 이유로 막히면서 그 길을 걷고 싶어도 걸을 수가 없으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주민들의 생태학습과 안식의 공간이 불구로 방치되어선 안 된다. 성안옛길을 걷거나 맛집을 찾아와 숯못에 들렀던 사람들은 마고할미처럼 인내심이 강하질 못하다. 하루빨리 산책로의 철망을 걷어내고 숯못생태공원의 온전한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당국이 신경을 써주어야 할 것이다.

이애란 울산과학대학교 학술정보운영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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