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영어를 써야 알아주나?
꼭 영어를 써야 알아주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1.24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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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어느 TV방송국 연예 프로그램의 안내방송을 보았다. 새로 나온 영화를 소개하면서 영화 출연자와 진행자의 대담이 있었다. 대담 중에 영어가 자주 나와서 이마를 찌푸렸는데 ‘friendly business’가 같이 떠올라 혼자 피식 웃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의 첫 번째 영어 사용이다. 참여정부 때에는 아마도 code이었던 것 같다.

영어의 남용이 문제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요즈음은 너무 심한 것 같다. 언제부터 웰빙(well-being)인가? 이것을 비꼬아 번역하면 ‘잘 먹고 잘 살아라’이다. 지금은 이명박 정부를 그냥 친기업적 정부라고 하지 영어로 ‘friendly business government’라고 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웃기는 영어를 써서 권위를 세우려고 하면 안 된다.

연예인 대담 중에, 연예인이 ‘예, 이 영화는…’하면서 망설이니까 옆에서 다른 사람이 ‘고독의 극복이라는 컨셉이야’라고 거들어준다. 그러니까 ‘예, 인내력의 시험, 컨셉이어요’한다.

대담자 역시 ‘아, 그런 컨셉이군요’라고 맞장구 쳐준다. 그냥 이런 이런 주제라든지, ‘이런 내용이라든지’ 하면 될 것을 굳이 영어의 concept을 써야 되나? 영어의 concept은 동사 conceive(‘---을 품에 안다’)에서 나온 말로 어떤 뜻을 품에 안는, 자기 나름으로 생각하는 그 뜻을 말한다. 바로 알고 써야 한다.

옛날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시험을 치러 갔다 오는 학생들이, 한 일주일 머물다 왔을 텐데 금방 서울말 억양을 흉내 낸다. 정말 어색하고 닭살 오르는 장면이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쓸데없이 일상 대화에서 영어를 쓰는 경우이다. 나이 한 50된 교수가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 미국의 대학에서 안식년(sabbatical leave)을 보내고 돌아와서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영어가 아니어도 될 말을 굳이 영어를 섞어 쓰는 것은 닭살이 아니라 소름끼치는 일이다. 미제사대주의(美製事大主義)가 무서워서 소름이 끼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기게 된 데에는 그럴만한 연유(緣由)가 있었던 것 같다. 수호지에 나오는 이야기로, 중국 산적(이들도 사람)들이 사람을 잡아 그 고기로 만두 속을 빚었듯이 우리나라 옛날 사람들은 가난한 살림에 장사하면서, 중국식으로 들키지 않으면 된다는 방식으로, 속임수를 많이 썼던 것 같다. 오죽하면 순 우리말에 ‘이 기름은 진짜 기름’이라는 ‘참기름’이 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여기에 6.25 전쟁을 겪으며 미제 구호물자는 모두 진짜이면서 모두 영어(꼬부랑글씨)로 되어 있었으니 영어=사대주의(事大主義), 영어는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이 쉽게 형성되었으리라고 본다. 해방되고 난 뒤에 우리나라 가게들의 이름에 영어가 등장하면서 여기저기 퍼져 가다가 오늘에 이르러서는 ‘정원 가든 갈비탕’이 나오게 되었다. 그 가게 주인 말, ‘영어가 들어가야 젊은 사람들이 와요.’이다. 어디 음식점뿐이겠는가. 양장은 물론 한복 집 가게 이름도 ‘뉴 모드 한복’이니까 할 말을 잃고 만다.

전남 대불산업단지의 번갯불에 콩 튀어 먹기 식의 전봇대 이전을 friendly business라고 해야 하는가? 영어로 말하지 않아도 책임감으로 정직하게 일하면 국민의 기대에 맞추는 것이다. 한 가지 충고해둘 것은 국가 원수(元首)가 아무리 영어를 잘하여도 공식 석상에서는 영어로 말하지 않고 통역을 둔다는 국가 간의 의전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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