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남용이 문제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요즈음은 너무 심한 것 같다. 언제부터 웰빙(well-being)인가? 이것을 비꼬아 번역하면 ‘잘 먹고 잘 살아라’이다. 지금은 이명박 정부를 그냥 친기업적 정부라고 하지 영어로 ‘friendly business government’라고 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웃기는 영어를 써서 권위를 세우려고 하면 안 된다.
연예인 대담 중에, 연예인이 ‘예, 이 영화는…’하면서 망설이니까 옆에서 다른 사람이 ‘고독의 극복이라는 컨셉이야’라고 거들어준다. 그러니까 ‘예, 인내력의 시험, 컨셉이어요’한다.
대담자 역시 ‘아, 그런 컨셉이군요’라고 맞장구 쳐준다. 그냥 이런 이런 주제라든지, ‘이런 내용이라든지’ 하면 될 것을 굳이 영어의 concept을 써야 되나? 영어의 concept은 동사 conceive(‘---을 품에 안다’)에서 나온 말로 어떤 뜻을 품에 안는, 자기 나름으로 생각하는 그 뜻을 말한다. 바로 알고 써야 한다.
옛날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시험을 치러 갔다 오는 학생들이, 한 일주일 머물다 왔을 텐데 금방 서울말 억양을 흉내 낸다. 정말 어색하고 닭살 오르는 장면이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쓸데없이 일상 대화에서 영어를 쓰는 경우이다. 나이 한 50된 교수가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 미국의 대학에서 안식년(sabbatical leave)을 보내고 돌아와서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영어가 아니어도 될 말을 굳이 영어를 섞어 쓰는 것은 닭살이 아니라 소름끼치는 일이다. 미제사대주의(美製事大主義)가 무서워서 소름이 끼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기게 된 데에는 그럴만한 연유(緣由)가 있었던 것 같다. 수호지에 나오는 이야기로, 중국 산적(이들도 사람)들이 사람을 잡아 그 고기로 만두 속을 빚었듯이 우리나라 옛날 사람들은 가난한 살림에 장사하면서, 중국식으로 들키지 않으면 된다는 방식으로, 속임수를 많이 썼던 것 같다. 오죽하면 순 우리말에 ‘이 기름은 진짜 기름’이라는 ‘참기름’이 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여기에 6.25 전쟁을 겪으며 미제 구호물자는 모두 진짜이면서 모두 영어(꼬부랑글씨)로 되어 있었으니 영어=사대주의(事大主義), 영어는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이 쉽게 형성되었으리라고 본다. 해방되고 난 뒤에 우리나라 가게들의 이름에 영어가 등장하면서 여기저기 퍼져 가다가 오늘에 이르러서는 ‘정원 가든 갈비탕’이 나오게 되었다. 그 가게 주인 말, ‘영어가 들어가야 젊은 사람들이 와요.’이다. 어디 음식점뿐이겠는가. 양장은 물론 한복 집 가게 이름도 ‘뉴 모드 한복’이니까 할 말을 잃고 만다.
전남 대불산업단지의 번갯불에 콩 튀어 먹기 식의 전봇대 이전을 friendly business라고 해야 하는가? 영어로 말하지 않아도 책임감으로 정직하게 일하면 국민의 기대에 맞추는 것이다. 한 가지 충고해둘 것은 국가 원수(元首)가 아무리 영어를 잘하여도 공식 석상에서는 영어로 말하지 않고 통역을 둔다는 국가 간의 의전 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