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학·연·정 협의체 만들어 직업훈련 뒷받침했으면”
“산·학·연·정 협의체 만들어 직업훈련 뒷받침했으면”
  • 김정주
  • 승인 2020.11.24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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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종만 한국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학장
나종만 한국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학장.
나종만 한국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학장.

산업수도 울산의 석유화학 유관 인사들에게 2020년 10월 30일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한 날이었다. 먼저 이날은 ‘제14회 울산 화학의 날 기념일’이었다. 처음에 3월 22일로 잡혔던 기념행사가 7개월 남짓 늦어진 것은 코로나19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또 이날은 ‘제28회 화학네트워크포럼’이 열리고 한국폴리텍 소속 ‘석유화학공정기술교육원’이 공식 출범을 알린 날이기도 했다.

그래서 정해진 포럼의 주제가 ‘산업안전의 중요성 및 석유화학공정기술교육원의 현황과 미래’. 바쁘게 돌아간 이날의 릴레이 행사에는 한국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관계자는 물론 울산대 산업대학원,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 울산테크노파크 관계자와 울산석유화학단지 전·현직 공장장, 그리고 울산지역 중소기업 CEO 등 관련 전문가 수십 명(코로나19 사태로 선별된)이 겹치기 출연의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석유화학공정기술교육원’(이하 ‘교육원’) 개원 행사. 울산 테크노일반산업단지(남구 두왕동) 안에 둥지를 튼 교육원에는 3층짜리 강의동과 화학공정시험생산설비를 갖춘 2층짜리 파일럿플랜트(pilot plant) 건물(일명 ‘PP동’), 관리동 등 세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이 고용노동부 산하 교육원은 석유화학 업종에 특화된 국내 유일의 직업교육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그 무게감은? 궁금증을 직접 만나서 풀고 싶었다.

베이비부머 대량은퇴 대비한 직업교육

지난 11월 20일(금) 오후, 강의동 2층의 ‘교육원장실’ 문을 조용히 두들겼다. 학자풍의 나종만 교육원장(62, 한국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학장, 2018년 6월 1일 취임)이 정중히 손을 맞이했다. 부산대 학부에서 대학원까지 10년 내리 한 우물만 판 ‘정치학박사’가 이공계대학 학장과 기술교육원 원장을 겸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전국 40개 폴리텍대학 가운데 학장이 2개 기관을 동시에 맡는 곳은 울산 말고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였을까. 나 학장은 한 달 내내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는 게 측근의 전언.

교육원 소개가 시작됐다. 나 학장에 따르면 이곳의 교육은 △신규인력 양성교육(일명 ‘양성교육’)과 △기업체인력 직무향상교육(일명 ‘향상교육’) 두 가지로 나뉜다. 둘 다 ‘산업현장 맞춤형 교육’이라는 점은 같아도 차이는 뚜렷하다. 양성교육은 ‘만 15세 이상 남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향상교육은 ‘석유화학업체 종사자’만 참여할 수 있다. 또 양성교육 참가자는 훈련수당(교육비+식대)으로 매월 20만원을 받지만 향상교육 참가자는 거꾸로 교육비를 내야 한다.

“NCN(울산전문경력인사지원센터) 회원 중에도 그런 분이 더러 계시겠지만, 이런 기술교육에 대한 구상은 베이비붐 세대의 대량은퇴에 대비해서 나왔을 겁니다. 2012년에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가 선거공약으로 들고 나오기도 했지요.”

지난달 30일 한국폴리텍대학 석유화학공정기술교육원 강당에서 열린 ‘제28회 화학네트워크포럼’ 참석자들. 앞줄 오른쪽 네 번째가 이동구 RUPI사업단장.
‘PP동’에서 단합을 과시하는 양성교육 수강생들과 나종만 학장(뒷줄 가운데), 고광춘 교수(뒷줄 왼쪽 두 번째), 이동형 운영지원처장(뒷줄 맨 왼쪽).

코로나 때문에 양성·향상교육 모두 차질

대화 도중 두 가지 문제점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첫째, 양성교육생 자격이 ‘만 15세 이상 남녀(인문계고교 출신도 가능)’이라는 것은 자칫 ‘석유화학산업 현장맞춤형 교육’과의 거리를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나 학장은 화학, 화공 또는 기계, 산업설비를 전공한 대학졸업생이 교육을 받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지닌 것 같았다.

둘째, 코로나19로 인한 후유증이 의외로 크다는 사실이다. 지난 3월 초부터 시작한 양성교육만 해도 3주간은 ‘비대면 강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이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교육생 파견을 미루는 바람에 향상교육에 차질이 생기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영국산·중국산 장비 설치가 계획보다 늦어진 것도 순전히 코로나19 때문이었다. 처음 프로그램대로 하자면, ‘양성교육’은 연간 300명(첫해는 상·하반기 100명씩 200명), ‘향상교육’은 연간 1천명(첫해는 800명)을 받게 돼 있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그런 구상은 구상으로 그쳐야 했다.

그래도 나 학장은 기대의 끈을 놓지 않는다. 삼성SDI 양산공장에서 11월 30일 직원들을 교육원 향상교육에 보내주기로 한 것도 고무적인 일이다. LG화학 평택공장이나 대림산업 서울 본사에도 계속 교육생 파견을 요청할 생각이다.

교육원의 기본사항에 대한 설명을 마친 나 학장은 교육원 내부 몇 군데를 같이 둘러보자고 제의했다. 강의동과 PP동(pilot-plant동)에 대한 안내가 차례로 이어졌다. 이동형 교육원 운영지원처장(교수, 공학박사)이 안내에 동참했다. 우연히 마주친 고광춘 에너지화학공정과 교수(이수화학 31년 근속)도 안내 대열에 합류했다.

PP동에 대한 나 학장의 애착은 대단했다. PP동의 실습용 장비와 시설은 얼핏 보기에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무전기가 없어도 소통이 잘 된다고 했다. “정유에서 탈황, 반응 실습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비와 시설이 석유화학업체의 현장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보시다시피 구명실습장비도 다 갖춰 놓았습니다. ‘안전’이 제일 아니겠습니까?”

지난달 30일 한국폴리텍대학 석유화학공정기술교육원 강당에서 열린 ‘제28회 화학네트워크포럼’ 참석자들. 앞줄 오른쪽 네 번째가 이동구 RUPI사업단장.
지난달 30일 한국폴리텍대학 석유화학공정기술교육원 강당에서 열린 ‘제28회 화학네트워크포럼’ 참석자들. 앞줄 오른쪽 네 번째가 이동구 RUPI사업단장.

 

재취업 꿈꾸는 신중년 비학위수강생 급증

양성교육생들과의 기념촬영을 ‘번개팅’ 하듯 마치고 다시 교육원장실로 돌아온 나 학장. 그는 직업교육의 현주소에 대한 그 나름의 지론을 진지하게 펼쳐 보였다. “최근 저출산,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울산캠퍼스만 해도 해마다 ‘학위과정’ 지원이 줄어드는 대신 ‘비학위과정’ 지원은 갈수록 늘어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요점을 간추리면, 저출산 현상으로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반면, 고령화 현상으로 재취업 직업교육에 매달리는 중장년(신중년) 실업자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것. 또한 3개월, 6개월, 1년짜리 ‘신중년’ 대상 직업교육 수강생을 모두 합치면 연간 수천 명을 헤아린다는 것. 결론적으로, 비학위과정 수강생이 정규과정(학위과정) 학생 수를 훌쩍 뛰어넘는 역전 현상이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으므로 대책을 서둘러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게 나 학장의 지론이었다.

폴리텍대학의 경우, 학위 학생 정원을 줄이고 신중년 교육생 정원을 늘리는 게 대안이라는 말로도 들렸다.

“2022년 울산캠퍼스에 ‘수소전기차과’ 신설”

나종만 학장의 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히든카드 가운데 하나를 꺼내보였다. 포철연구소 출신 수소 전문가를 영입해서 2022년도에 ‘수소전기차과’를 울산캠퍼스에 신설하는 카드라고 했다. 때마침 울산시의 요청이 있었던 터라 준비는 내년부터 서두를 계획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모른 채 할 수는 없는 노릇. 6개월간이나 교육받은 산업인력을 적극 수용해 주기를 지역 석유화학업체에 요청하는 짐 같은 일도 그의 두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울산지역에서 ‘산학연정 협의체(거버넌스)’를 만드는 일도 히든카드의 하나. 울산테크노파크와 울산정보산업진흥원, 석유화학업계, 울산시는 물론 울산과학대, 울산대, 공장장협의회, NCN, 화학네트워크와 같은 유관단체들과 손잡고 직업교육을 뒷받침하는 일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는 의미 있는 대응책이라는 게 그의 신념이다.

‘조방앞’이 멀지 않은 부산 동구 범일동이 고향. 부산진고등학교를 거쳐 부산대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대통령직속 지역정책 및 공약 특별위원회 위원, 산자부 경제자유구역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데 이어 현재 산자부 북항통합개발추진협의회 위원, 울산연구원 이사도 맡고 있다.

부산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부인 이한옥 여사(56)와의 사이에 1녀1남(대4, 대2→군복무)을 두고 있다. 집안 분위기를 좇아 불교에 심취해 있고 집히는 대로 책 읽는 것이 취미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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