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 릴리스 - 외모, 권력
워터 릴리스 - 외모, 권력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9.24 19: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워터 릴리스' 한 장면.
영화 '워터 릴리스' 한 장면.

 

인간세상에서 ‘외모’가 얼마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지는 초등학생만 되도 잘 안다. 잘 생기고 예쁘다는 게 엄청난 무기라는 건 스스로 누군가를 좋아해보거나 사랑을 받아보면 알게 된다. 문제는 전자보단 후자가 훨씬 편하다는 것. 사랑을 주는 쪽은 받는 쪽에게 늘 패자다. 따지고 보면 사랑도 권력관계이고 그건 주로 외모에 의해 결정되곤 한다. 물론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순 있지만 그건 일단 차치하고 처음 만나 끌리는 순간에만 집중하자.

많이들 하는 이야기지만 사실 처음 만난 상대방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점쟁이도 아니고 그나마 명확한 건 외모밖에 없다.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이란 게 쉽게 안 움직이는데도 그 짧은 순간에 끌리거나 사랑에 빠지게 하는 외모의 힘이란 참으로 어마무시하다.

영화 <워터 릴리스>에서 마리(폴린 아콰르)도 외모의 그런 힘을 경험하게 된다. 이제 겨우 중학생인 마리는 우연히 학교 수영장에 갔다가 동급생으로 싱크로나이즈드(수중발레) 선수인 플로리안(아델 에넬)을 보고는 첫눈에 반해 덜컥 사랑에 빠져 버린다. 둘 다 여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생애 처음 찾아온 사랑이란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마리는 플로리안에게 접근하게 되고, 급기야 친해지게 된다. 하지만 외모적으로 모든 걸 다 갖춘 플로리안은 나이를 불문하고 뭇 남성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었고, 남자들과도 자유로운 관계를 맺는 것 같아 보였다. 그것 때문에 마리는 괴로워하게 되고, 그런 마리가 친구로서 자신을 진심으로 위하는 거라 생각했던 플로리안은 자신의 진실을 마리에게 털어놓는다.

한편 마리에게는 오랜 친구로 안나(루이즈 블라쉬르)가 있었다. 안나는 수영부의 잘 생긴 프랑수와를 좋아하고 있었고 그와 자고 싶어 지금 안달이 난 상태다. 탈의실에서 일부러 옷을 벗은 채 그를 기다리기도 하고 파티에서 유혹도 하고 용기를 내 쪽지를 전달하기도 하지만 프랑수와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학교 최고 인기녀인 플로리안과 어정쩡하게 사귀는 관계이기도 했지만 사실 안나의 외모가 그닥 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 이 영화는 프랑스 영화다. 성(性)에 대한 인식 자체가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넓고 자유롭다. 또 감독인 셀린 시아마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라는 작품으로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었다. 그러니까 도덕보다는 예술의 잣대로 영화를 봐달라는 얘기.

아무튼 이렇듯 <워터 릴리스>는 소녀들의 욕망과 성장통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 담백하게 그려나가지만 그 이면에 존재하는 외모의 불평등에 따른 소녀들 간의 권력구조가 유독 눈에 띤다. 물론 정점에는 플로리안이 있다.

이자벨 아자니와 소피 마르소를 잇는 프랑스 대세 배우 ‘아델 에넬’이 연기한 플로리안은 아름다운 얼굴에 또래보다 성숙한 육체로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지배한다. 심지어 그녀는 착하기까지 하다. 원래 예쁜 사람은 착해지기도 쉬운 법이다. 돈이 많은 사람이 그렇듯.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런 플로리안을 사랑하게 된 마리는 플로리안에 비해 아직 앳된 얼굴과 육체를 지녔다. 딱 봐도 마리가 플로리안을 사랑하게 된 건 플로리안이 지닌 아름다움에 대한 부러움을 넘어선 일종의 동경 같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마리는 플로리안이 먹다가 쓰레기통에 버린 사과를 몰래 들고 와서 먹는데 그 장면에서는 백설공주를 시기한 마녀의 모습이 겹쳐진다. ‘시기’와 ‘동경’은 탐한다는 점에서 같은 감정이고 결국 마리는 외모 상류층인 플로리안이 되고 싶어 했다.

마지막으로 세 주인공 중 권력구조의 최하층에 위치한 안나의 마음과 육체는 늘 쉽게 소비된다. 그녀는 자신을 드러내는데도, 또 마음을 표현하는데도 주저하지 않았지만, 그러니까 매사에 열심이었지만 돌아오는 건 좌절뿐이었다.

결말이 인상적이다. ‘엔딩장인’이라는 별명이 붙은 셀린 시아마 감독답게 데뷔작인 이 영화에서도 감독은 마치 행위예술을 하듯 마무리를 짓는다. 수많은 남자들에게 둘러 싸여 춤을 추는 플로리안에 비해 마리와 안나는 아무도 없는 수영장 물 위에 배영 자세로 누워 손을 맞잡은 채 떠 있게 되는데 그 모습이 참 편해 보인다.

사실 이 영화에선 플로리안이 수중발레 선수로 등장하는 설정이 꽤 중요한데 수중발레란 게 그렇다. 물 밖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유지하게 위해 물속에선 떠 있거나 높이 조절을 위해 죽기 살기로 발을 휘저어야 한다.

영화 속에서 플로리안의 그런 모습을 마리도 물속에서 찬찬히 보게 되는데 함께 보는 내가 다 피곤해지더라. 권력에 책임이 따르듯 그렇게 예쁨이나 잘생김을 유지한다는 것도 참 피곤한 일이 아닐까 싶다. 안 겪어봐서 잘 모르겠지만.

2020년 8월 13일 개봉. 러닝타임 83분.

취재1부 이상길 차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