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로부터 안전한 환경에서 살 권리
범죄로부터 안전한 환경에서 살 권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8.30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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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감염병 세계적 유행)의 시대,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예방의학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마스크 없이는 생활할 수 없고, WHO는 손 씻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예방’이란 단어는 안전에서도 중요하다. 그러나, 범죄예방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시작된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CPTED)’ 이론은 1980년대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학문적 연구가 시작되었으나, 실제 법률로 규정된 것은 2014년 ‘범죄예방 건축기준 고시’ 제정이 그 시작이다. 이후 2019년 8월 범죄예방 건축기준 고시가 개정되어 100세대 미만 아파트, 다가구주택에도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고시원 등 일부 건축물에 대한 규정이 완화되면서 미흡하다는 의견도 일부 있다. 그럼에도 CPTED 기준이 적용된 범죄예방 건축기준 고시는 범죄예방을 위한 시설개선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갈 길 또한 멀다. 의학계에서 예방의 중요성을 팬데믹 시기에 인식하게 된 것처럼, 범죄예방 건축기준 고시 역시 실무현장에서는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유관기관과 업체에서는 범죄예방이 영상정보처리기기와 건축물의 배관커버를 설치하는 것쯤으로 인식하는 게 현실이다.
물론 CCTV와 조명이 범죄예방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는 있다. 하지만, 대지의 특성과 주변 환경이 각각 다르듯 환경에 맞는 범죄예방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어둡고 으슥한 곳은 조명과 반사경, 영상정보처리기기 등으로 최대한 사각지대를 없애고, 투시형 담장 등으로 외부인의 접근을 통제해 범죄를 미리 막는 자세가 중요하다.
특히, 현재의 범죄예방 건축기준 고시는 정부가 주도해 한계가 있다. 또한, 각 지자체마다 범죄예방을 위해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지만 민간의 자율적 참여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문제다. 건축물을 신축할 때도 범죄예방 건축기준을 소극적으로 적용해 그 중요성을 인식하기가 더 어려운 실정이다. 범죄예방 건축기준 적용이 당장 눈앞의 효과로 나타나기가 힘든 탓에 민간의 참여가 쉽지 않은 것도 문제점이다.
이와 관련, 연세대 변기동 박사는 민간에 대한 지원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녹색건축이나 에너지 정책에 있어 정부가 일정부분 지원해주는 것처럼 환경개선을 통한 범죄예방 건축에 대해서도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거나, 시공 후 유지관리비용의 일부를 지원해주는 등 능동적인 지원정책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사회적 욕구가 증가하는 오늘날 범죄로 인한 사후처리보다 범죄예방을 통한 사회적 비용 절감이 절실하다는 주장에는 설득력이 있다. 이제 우리에게는 범죄예방을 위한 공감대 형성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언제 닥쳐올지 모를 범죄를 효과적으로 예방해 더욱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병희 울산 울주경찰서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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