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문제는 주택문제가 아니다
아파트문제는 주택문제가 아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8.12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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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지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정권 출범 초기에는 보유세 인상과 대출규제 강화에 소극적이었던 정부가 이제는 다급하게 관련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지난 국회의원선거에서의 압승 여세를 몰아 ‘임대차 3법’ 등 부동산 관련 법안을 전광석화처럼 통과시켰다. 이렇게 되자 여기저기서 반발과 불만이 터져 나오고 당 지지율도 곤두박질치고 있다. 2022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2년이 채 남지 않은 정치적 시간 속에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거센 역풍을 이겨낼 수 있을지 염려된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서 ‘아파트 공화국’이 되었는지 살펴보면 오늘날의 사태를 이해할 수 있고, 해결책도 찾을 수 있다. 아파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정부에 의한 다양한 유인책, 제도를 통한 감독과 통제, 그리고 간접적 지원으로 유지되어 왔다. 대표적인 것이 아파트 가격 통제와 분양제도다. 아파트 가격은 ‘분양가 상한제’라는 이름으로 통제했는데, 건설경기에 따라 냉탕과 온탕을 오갔을 뿐 지금까지 가격이 내려간 적은 없었다. 아파트 공화국으로 이끈 대표적인 제도는 1972년에 제정된 ‘주택건설촉진법’이다. 1977년 개정으로 국민주택 청약저축, 청약부금, 청약예금 계좌 개설과 불입을 통한 분양제도가 자리 잡았고, 1981년의 개정으로 국민주택기금이 만들어지면서 아파트 건설은 더욱 가속화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1979년에 토지개발공사가 설립되고, 1980년에는 ‘택지개발촉진법’이 만들어졌다. 이로써 공기업이 대규모 택지를 조성해서 민간건설업자에게 아파트부지로 공급하는 틀이 갖추어졌다. 여기에다 우리나라만 가지고 있는 ‘선분양제도’가 가세하니 그야말로 아파트 건설은 허가만 받으면 땅 짚고 헤엄치기보다 쉬운 사업이 되었다. 선분양제도는 건설업자는 착공과 동시에 아파트를 분양할 수 있지만, 소비자는 계약과 동시에 은행 빚을 떠안는 구조다. 물론 자기자금 없이 아파트 분양을 받을 수 있어서 좋지만 빚은 빚이다. 그런데 이 빚의 부담을 상쇄시키고 남는 것이 ‘프리미엄’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아파트는 전체적으로 보아서 가격이 떨어진 적이 없다.

최근의 아파트 가격 변동을 예로 들어보자. 가령 5년 전 서울에서 아파트를 구입한 사람과 울산에서 아파트를 구입한 사람, 아파트를 구입하지 않은 세 사람이 있을 때, 5년 동안 같은 회사에서 같은 수준의 월급을 받고 다른 재산이나 수입이 없다고 가정하면 누구의 재산이 가장 많이 늘었는지는 삼척동자도 다 안다.

이번에는 건설업자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가령 중구 우정혁신도시에 지금 85㎡ 규모의 아파트 1천 세대를 짓는다고 가정했을 때 분양가가 5억이라면 5천억 프로젝트다. 연면적이 8만5천㎡ 정도 되니 토지는 용적률 250%로 나누어보면 약 3만4천㎡ 정도면 된다. 대략 1만 평이니까 평당 600만원이라면 토지대금이 600억 원이다. 건축비는 평당 500만원이라고 보면 1천300억원 정도 나온다. 그러면 5천억원에서 1천900억원을 빼면 얼마인가. 무려 3천100억 원이 남는다. 물론 금융비용부터 수많은 부대비용이 들지만, 분양가 상한제의 기준은 토지비와 건축비 및 기타부대비용이다. 기타부대비용이 토지비와 건축비보다 많을 수는 없으니, 놀랍지 않은가.

아파트만 분양받으면 가만히 앉아서 로또 당첨이 되는 소비자와 건설회사가 생기는 구조가 우리나라다. 그래서 아파트 문제는 주택 문제가 아니라 금융의 문제이며, 시대성에 맞지 않는 낡은 제도를 바꾸지 않아서 생긴 문제이다. 아파트로 가만히 앉아서 부자가 되는 길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아무리 아파트를 많이 공급해도 소용없다. 지금처럼 가격이 오르기만 하는 구조에서는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는 계층이 정해져 있다. 주택임대차 3법도 마찬가지다. 아파트 가격이 가치와 관계없이 올라만 가는데, 전세와 월세가 가만히 있을 리 없고 세금폭탄을 맞은 1주택 소유자도 분노한다. 세금과 제도로 억지로 묶기만 하면 반발과 갈등만 커질 뿐이다.

50년 동안 깊어질 대로 깊어진 묵은 상처가 쉬 해결될 리는 없다. 아파트 투기를 막고 국민의 주거복지 실현을 앞당기는 길은 장기적 로드맵을 통해서 ‘선분양제도’를 없애고, 질 좋고 다양한 장기임대주택을 대규모로 공급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e-나라지표를 보면 2018년 현재 우리나라 아파트는 전체 주택의 61.4%다. 하지만 순수 단독주택과 영업용 건물 내 주택이 불과 2.4%이니 사실상 97%가 공동주택이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만들어 온 아파트공화국, 이제는 바로잡아야 한다.

강혜경 울산광역시 중구의회 행정자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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