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열사를 기리며
박종철 열사를 기리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6.1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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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6월이 돌아오면 가슴이 먹먹하고 저리는 이름이 있습니다. 故 박종철 열사입니다.

1987년 1월 13일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에 끌려가 전기고문과 물고문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6·10 민주항쟁의 불씨가 되었고, 이 땅의 민주주의가 꽃피울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박종철 열사는 제가 나온 부산 혜광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1년 후배입니다. 소위 ‘똥파리’라고 불렸던 82학번 대학생으로서 저 역시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젊은이이자 바람직한 시대정신의 구현을 꿈꾸던 청년이었습니다. 고교 동문이나 학과 선배의 권유로 각종 사회과학 독서연구회에 참석해 활발히 토론하며 그 시절의 고뇌를 함께 나눴습니다. 친구들과 밤새워 막걸리를 마시며 격정을 토로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의 영향으로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는 못했지만 ‘우상과 이성’, ‘해방전후사의 인식’ 등 소위 이념서적을 탐독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권위주의의 타파는 많은 국민들이 공유하는 가치였고, 저 역시 깊이 공감했었습니다. 이후 공직생활을 하면서도 구체적인 안건에 관해선 비교적 열린 시각과 유연성을 가지게 된 것도 그 시절의 영향 덕분이었습니다.

박종철 열사가 민주주의를 위해 산화하셨지만 저는 경찰에 투신했습니다. 박종철 후배를 고문한 치안본부는 1991년 7월 경찰청으로 개편되었고, 저는 1993년 11월에 경찰공무원이 되어 25년간 일했습니다. 고교, 대학 1년 선후배가 서로 다른 삶을 살았지만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은 같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종철 열사와 저의 모교인 혜광고등학교의 교훈이 문득 떠오릅니다. ‘진실’, ‘용기’, ‘실천’…. 혜광고등학교의 교훈을 그분처럼 잘 구현하신 분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자랑스러운 고교 후배이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박종철 열사를 생각하며 제대로 된 경찰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습니다.

엊그제는 6·10 민주항쟁 33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를 찾아 박종철 열사의 영정에 헌화하셨습니다.

참으로 잘하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박종철 열사에게 마음속 큰 빚을 지고 있기에 더욱 뜻깊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제6공화국의 민주헌법은 박종철 열사를 비롯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신 모든 분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꿈 많던 청년의 삶이 짓밟히는 비극,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국민 한 분 한 분의 삶을 지켜내는 것이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라는 점, 정치인으로서 가슴 속에 새기고 또 새겨봅니다. 그분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며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갈 수 있도록 더 노력할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오늘을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서범수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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