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 ‘본다’는 것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 ‘본다’는 것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6.04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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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본다’는 행위가 사실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양자역학(量子力學)의 세계로 들어가면 금세 알게 된다. 참고로 양자역학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미시세계의 물리학이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나 분자, 소립자 등의 운동법칙을 밝히는 학문이다.

그런데 미시세계의 운동법칙은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거시세계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단도직입적으로 미시세계에서는 측정 자체가 아예 불가하다고 한다. 다시 말해 원자나 전자처럼 이 세계를 구성하는 최소단위들은 너무 작고 가벼워서 우리가 보기만 해도 눈에서 반사된 광자(光子)에 부딪혀 그 위치나 운동량을 측정할 수가 없게 된다는 것. 그러니까 측정하기 위해 보는 순간, 대상이 이미 움직여버리기 때문에 측정이 불가하다는 이야기다. 이 법칙을 양자역학에선 ‘불확정성의 원리’라고 한다. 양자역학의 근간을 이루는 이 원리는 1927년에 독일 물리학자인 ‘하이젠베르크’에 의해 완성돼 그에게 노벨물리학상을 안겼다.

그런데 불확정성의 원리는 과연 미시세계에서만 해당되는 이론일까? 솔직히 거시세계에서 엄연히 존재하는 ‘마음’이란 것도 분명 위치와 운동량이 존재하지만 측정이 어렵지 않나? 가령 누군가를 보고 첫눈에 반해 ‘심쿵’할 땐 위치와 떨어지는 속도가 분명 존재하지만 측정이 어렵다. 그리고 심쿵은 ‘본다’는 행위에서 출발한다. 참,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개똥철학에 불과함을 미리 밝혀둔다. 그러니 공감여부는 자유다.

18세기 후반 프랑스.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멜랑)는 원치 않는 정략결혼을 앞둔 귀족 아가씨 엘로이즈(아델 에넬)의 결혼 초상화 의뢰를 받고 그녀가 있는 해안가 마을로 가게 된다. 초상화가 예물로 사용되던 시절이었고, 프랑스혁명 전이어서 여성의 지위가 아주 낮았던 때였다.

원치 않는 결혼이 싫었던 엘로이즈의 언니는 이미 절벽에서 뛰어 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터였고. 언니를 대신해 시집을 가게 된 엘로이즈 역시 비슷한 심정이었다. 그런 탓에 그녀는 초상화 모델이 되는 걸 극히 싫어했고, 억지로라도 딸을 시집보내야 했던 백작부인(발레리아 골리노)은 마리안느를 시중드는 하녀이자 말동무로 접근하게 한 뒤 엘로이즈를 몰래 관찰하게 해서 초상화를 그리도록 시킨다.

페미니즘이든 뭐든 어떤 시선으로 봐도 충분히 매력적인 영화지만 셀린 시아마 감독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보였던 건 ‘본다’는 행위였다. 그러니까 초상화를 완성하기 위해 마리안느는 엘로이즈를 계속 볼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깊은 감정이입이 됐던 것. 엘로이즈를 그리기 위해 계속 바라보다 보니 마리안느의 시선은 어느덧 그녀에 대한 교감과 애정으로 바뀌어갔고, 그걸 알았던 엘로이즈의 마음도 심하게 요동쳤다. 하지만 그 때도 육안으로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18세기 프랑스 귀족 집안답게 우아하기 그지없었다.

허나 그들의 마음은 달랐다. 단순히 ‘본다’는 행위로 서로의 마음은 뜨겁게 날뛰었고 마침내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 영화, 클래식한 듯 전혀 클래식하지 않다. 아무튼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고, 화폭에 쌓여가는 선(線)들처럼 느리지만 켜켜이 쌓여가는 감정들로 인해 마침내 그들의 사랑은 정당성을 얻게 된다. 그들에게 동성애 따윈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 영화, <기생충> 대신 칸 황금종려상을 받았어야 했다고 봉준호 감독이 극찬한 작품이다.

첫 초상화를 망친 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에게 자신이 온 목적을 실토하게 되고. 엘로이즈는 마리안느를 위해 정식으로 모델이 되어 준다. 그 동안 몰래 지켜보면서 엘로이즈의 손짓이나 몸짓을 이미 꿰뚫고 있었던 마리안느는 마치 고백을 하듯 그것에 대해 말하게 되고, 엘로이즈 역시 마리안느의 손짓과 몸짓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흠칫 놀라는 그녀에게 엘로이즈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나를 볼 때 나는 누구를 보겠어요?”

따지고 보면 사실 거시세계에서도 측정하거나 확정지을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지 않을까. 모든 건 측정 불가한 마음이 하는 일이고, 그래서 본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위대한 일이 아닐 런지. 영화 <아바타>에서 제이크(샘 워싱턴)와 네이티리(조 샐다나)도 서로의 사랑을 표현할 때 이렇게 말한다. “I See You(내가 당신을 본다)”

마침내 초상화를 완성한 뒤 엘로이즈와 마리안느는 헤어지게 되고, 마리안느는 우연히 극장에서 건너편에 앉은 엘로이즈를 오랜만에 보게 된다.

몰래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동안 극장 안에는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이 흐르고, 여름처럼 뜨거웠던 마리안느와의 사랑을 그리워하듯 엘로이즈는 격정적인 눈물을 흘린다. 거시세계에서 확정지을 수 없는 것 하나 더. 어떤 이별은 영원한 사랑을 의미하기도 한다.

2020년 1월 16일 개봉. 러닝타임 121분.

취재1부 이상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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