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業)은 쌓기 나름이다
업(業)은 쌓기 나름이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6.0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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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이 길을 가다 어떤 집 앞을 지나갈 때였다. 그 집 앞마당엔 대여섯 살이나 되었을까, 예쁘장하고 똘똘하게 생긴 사내아이가 즐겁게 놀고 있었다. 노승은 그 아이를 유심히 보다가 끝내 탄식을 터뜨렸다. “좋은 기운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참 안타깝네~” 마침 밭일을 마치고 돌아온 그 아이의 엄마가 그 소리를 듣고 노스님께 여쭤 보았다. “스님~ 우리 아이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아이 엄마의 거듭된 채근에도 한동안 묵묵부답이던 노스님이 마침내 하는 말이 “아이는 참으로 영민하나 명이 짧습니다. 앞으로 길어야 1년 살겠습니다.”라는 것이었다. 억장이 무너진 아이 엄마는 “스님, 제발 우리 아이를 살려 주세요~ 우리 아이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습니다, 스님께서 우리 아이의 명줄까지 보셨으니 제발 오래오래 살게 해 주세요~~”라며 애걸복걸을 했다. 노스님은 잠시 자신의 경망스러움을 탓하다가 “이 아이의 운명을 제가 바꿀 수는 없습니다. 혹시 절밥이라도 먹으면, 수명을 좀 더 연장할 수 있을지도…”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렇게 그 아이는 노스님을 따라 절로 들어가 동자승이 된다, 열심히 수련을 시키고 불경을 외게 했음에도 그 아이의 명줄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아이가 산사에 들어온 지도 근 일 년이 지났다. 어느 날 명줄을 보니 앞으로 딱 일주일을 못 넘길 팔자였다, 노스님은 이 아이가 죽을 때 죽더라도 엄마 품에서 죽는 게 낫겠다 싶어, 아이를 집으로 보내기로 했다. “아이야, 그간 수고가 많았다. 집에 가서 일주일 쉬다 오렴~”

그리고 일주일 쯤 지났을 때, 그 아이가 씩씩하게 돌아왔다. 노스님은 깜짝 놀라 아이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리곤 더 깜짝 놀라고 만다. 아이의 명줄이 오래오래 남은 것이었다. “아이야, 그간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냐? 소상히 일러 보거라~”

아이의 대답은 실로 놀라웠다. 노스님이 집에 다녀오란 말에 신이 난 아이는 발걸음도 가볍게 산을 내려갔다. 이윽고 마을 근처 평지에 이르렀다. 때는 바야흐로 벼농사를 위해 논에 한창 물을 대던 시기였다. 걷다가 어느 논을 봤는데, 그 논에 물이 들어오자 차오르는 물에 갇힌 개미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한동안 바라보던 아이는 나뭇가지를 주워 와서는 개미집과 논두렁 사이에 걸쳐 놓았다. 그러자 개미는 새까맣게 나뭇가지를 타고 논두렁으로 탈출을 했다. 그걸 다 확인하고 나서야 아이는 기쁜 마음에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집으로 갔다. 아이의 말을 들은 노스님은 합장을 하고 ‘나무 관세음보살’을 연호했다.

이 이야기는 전래되어 오는 유명한 불교 우화이다. 자고로 사람의 사주팔자는 타고난 것이라 바꿀 수 없으며, 운명에 순응하라는 세론을 반박하는 스토리이다. 불가에서는 좋은 업(業)을 지으면 수대에 걸쳐 쌓인 나쁜 업장(業障)이 소멸된다고 한다.

며칠 전, ‘부처님 오신 날’ 을 맞아, 오랜만에 산사를 찾아 그동안 쌓인 업장을 씻어 달라고 빌었다. 물론 다 부질없는 짓이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주변에 봉사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좋다.

필자 부부는 결혼 후 근 30년을 우리 자식 말고는 반려동물조차 키워 본 적이 없다. 집안에 동물 털 날리는 게 너무 싫었고, 배설물 냄새 나는 것도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큰 딸 아이가 대학교 기숙사로 불쑥 찾아온 길고양이를 키우게 되면서 우리 가족의 삶도 달라졌다.

딸아이가 학업을 마치고 고양이를 집에 데리고 온 것이다. 처음 며칠은 난리였다. 아내가 자다 깼는데 바로 눈앞에 고양이가 있어서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질렀고, 반려동물을 끔찍이 싫어하는 필자는 고양이가 내 근처로 올까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다행히 고양이도 이를 알았는지 늘 필자를 피해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슬쩍 몸을 비비면서 필자를 ‘심쿵’하게 만들었다. 하도 기특해서 이름도 지어 줬다. “미오~ 미오~” 하길래 ‘전미옥’이라고 지었다. 암컷이니까.

몇 달을 같이 살다가 지금은 딸아이와 독일에서 살고 있다. 미물이래도 떠난 자리는 의외로 허전했다. 아내는 지금 동네의 ‘캣맘’이 되어 하루에도 여러 번 동네 길냥이들의 ‘집사’ 역할을 하고 있다. ‘다정(多情)도 병(病)인양 하여~’란 글귀도 있지만, 미물도 정성을 다하면 알아본다. 아내 차도 알아보고 차 밑에서 불쑥 나타나기도 하고, “야옹아~” 부르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나 쪼르륵 달려와 아양을 떤다. 이제는 내가 가도 경계를 하지 않는다.

업(業)은 쌓기 나름이다. 미물이라도 관심을 갖고 정성을 다하면 늘 리스폰스가 있다. 미물도 그런데 사람관계는 어떠하겠는가. ‘개미를 위한 동자의 마음’으로 혹은 ‘길냥이를 위한 캣맘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업장은 소멸되고 좋은 일만 생길 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이런저런 생각을 잠시 해봤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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