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6.02 21: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루 동안에 두 가지 풍경을 만났다. 하나는 고성의 상족암이고, 또 하나는 밀양 위양지이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울산을 벗어난데다가 둘 다 한 번도 안 가본 곳이어서 반가움이 더한 풍경이었다. 상족암은 상다리 모양의 해식동굴이 해안 풍경의 정점인데, 공룡과 새발자국 화석지로 세계 최대여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위양지는 신라시대부터 존재했던 못인데, 화악산이 물속에 내려앉아 있었다. 2만여 평의 넓이에 다섯 개의 섬과 못가에 심어진 왕버들 둥치가 놀랍고, 이팝나무 숲속의 완재정(宛在亭)은 화룡점정이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풍경이 무수히 많다. 불가사의에 가까운 기이한 풍경이 있는가 하면, 어찌 이리도 절경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다. 여행길에서 세상에 널린 기막힌 풍경과 마주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풍경은 비단 이러한 유형뿐만 아니다. 꽃이나 새싹이, 산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물이며 노을 진 강변과 탁 트인 바다도 일품이다. 연록의 이파리들이, 곱게 물든 단풍들이, 눈 내리는 날의 모습이 그렇다. 비오는 날의 창 너머 풍경, 이른 아침에 물안개 피어오르는 호숫가, 산정을 넘나드는 운해…….

사람의 모습인들 어찌 아름답지 아니하랴. 아기들이 고이 잠든 모습이나 티 없이 맑게 웃는 모습, 아이들이 어울리며 깔깔대는 장면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즐거워진다. 무언가에 열중하거나 어려움을 무릅쓰고 도전하는 청년들을 보는 일도, 자전거 타고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노동요를 부르며 멸치를 터는 어부들이나 어울려 부르는 합창단의 모습도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는 주인공들이다. 봉사에 땀 흘리는 사람들이나 품격을 잃지 않는 노인들을 보면 때로 부럽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내가 부끄럽기도 하다.

<풍경>이라는 노래를 한 가수가 있다. ‘시인과 촌장’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하덕규’인데, 지금은 침례교회 목사이다. 그는 그가 지은 노랫말에 곡을 붙이고, 직접 노래를 부르는 음유시인이다. 음유시인들은 한 편의 시 같은 노랫말로 세상을 향한 저항이나 시대의 고민을 담아낸다. 그 중에서 나는 하덕규의 <풍경>이라는 노래가 전하는 메시지가 마음에 든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우∼ 우∼ 풍경/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하덕규는 말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갈수록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윤리 같은 것들이 점점 약해지고 사라져 갑니다. 가치가 상대화되다 보니까 무엇이 절대적으로 중요한지 잃어버리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생명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경시하는 경향이 많아요. 제가 노래하는 의미도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내용이 주된 내용이었고요. 사람들에게 음악을 통해서 자연을 펼쳐보여서 위안을 얻고, 우리가 생각해야 할 본질적인 순수의 회귀 같은 것들을 노래를 통해서 말하려고 했기 때문에 저에게는 너무나 삶의 중요한 화두였고, 큰 주제였어요.”

그런데 세상은 아름다운 풍경만 연출하지는 않는다. 인류사는 전쟁의 역사이고, 분쟁과 갈등을 끊임없이 되풀이해 왔다. 끔찍한 사고와 숱한 범죄가 판을 치는가 하면,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는 모습도 공존하는 세상이다. 지진이나 홍수, 가뭄 등 자연재해에다가 환경파괴와 각종 유해물질들이 인류를 위협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권력 유지를 위해 되풀이되었던 국가 폭력, 칼등 위에서 춤추는 판검사와 언론 부역자들도 다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거대한 아픔들의 강줄기 같은 근현대사를 치유해야 하고, 이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올해 2월께부터 코로나19로 세상이 많이 위축되었다. 넉 달여 동안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집 안팎 구석구석의 일거리를 찾아 나섰다. 나물 밭을 정리하다보니 복잡하여 식재면적을 확장했다. 도라지와 잔대 씨앗들은 오랜 기다림 끝에 싹을 틔웠다. 토마토와 오이, 옥수수를 빨리 심었다가 냉해를 입어 다시 심었다. 더덕 지주를 보강하고, 고구마며 갖가지 작물을 심었으니 없는 게 없는 식자재 마트가 다 돼간다. 어쩌면 ‘코로나’라는 괴질은 인간들에게 성장을 멈추고 생태사회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풍경>은 가사도 좋지만 곡도 아주 서정적이다. 노랫말이 무척 간결하고 같은 말이 되풀이 된다. 하덕규는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을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과 돌아오는 풍경’이라고 노래한다. 그가 전하는 것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이다. 나는 여기에 ‘인간 본래의 심성’으로 되돌리는 일, ‘잘못이나 억울함’을 바루는 일, ‘환경 재앙’을 멈추게 하는 일도 ‘제자리로 오가는 풍경’에 함께 넣고 싶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과 마주하고 싶은 것이 희망고문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노니.

이정호 수필가·전 울산교육과학연구원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