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가 꽃이라면, 우린 버섯으로 승부해야죠”
“네덜란드가 꽃이라면, 우린 버섯으로 승부해야죠”
  • 김정주
  • 승인 2020.06.02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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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 한국’ 꿈꾸는 최석영 울산대 명예교수
최석영 울산대 명예교수
최석영 울산대 명예교수

 

다양한 별명 ‘버섯 전도사’ ‘버섯 산신령’…

‘버섯 전도사’임을 자처하는 최석영 울산대 명예교수(65, 식품영양 전공, 이학박사).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김언배 울산대 교수(63, 섬유디자인학과장)는 최근 그에게 ‘버섯 산신령’ 별명을 하나 더 지어주었다. 지인들은 그를 ‘버섯에 미친 사나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2월 퇴임하기까지 그의 전공은 식품영양학. ‘교수’ 직함을 벗은 지금도 그는 후학 양성으로 바쁘다. 하지만 개인의 시간, 자유의 시간이 늘었다는 사실은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축복이자 ‘버섯도사’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사실 그는 퇴임 전에도 버섯에 미쳐 있었다. 산림청 주관 <2015 임업·산촌 6차 산업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했고(2015.11.27.), 농촌여성신문과 가진 인터뷰(2016.3.10)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1년 365일 중 250일은 산에 있어요. 집 뒷산 근린공원부터 학교 정원, 울산시내의 산 할 것 없이 틈만 나면 희귀 버섯을 찾아 산으로 가지요.”

그의 아이디어는 <세계 최초·최고의 버섯시장&버섯공원 조성>. 이 꿈에 대한 그의 소신은 확고하다. “네덜란드가 어떻게 세계적인 튤립 나라가 되었겠어요? 그에 걸맞은 스토리와 문화, 관광객이 즐길 수 있는 볼거리들을 개발해냈기 때문이지요.”

버섯사진 촬영 삼매경에 빠진 최석영 교수.
버섯사진 촬영 삼매경에 빠진 최석영 교수.

 

탐사 휴대품엔 멧돼지 퇴치용 라디오도

산에 오르는 습관이 최 교수에겐 지금도 생활의 일부다. 그에게 ‘버섯 탐구’가 신앙이라면 산행은 신앙생활의 일부나 다름없는 것.

5월 마지막 수요일(5.27) 오후, 최 교수를 울산대 11호관(교수연구동) 카페에서 만났다. 6월 14일로 잡힌 가칭 ‘영남알프스 버섯연구회’ 발족 행사에 대한 소식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도 버섯연구회 추진위원 3인 중 한사람.

최 교수는 이날도 등산복 차림. 대화는 전날(5.26)의 양산 통도사 남산(서운암 뒷산, 해발 550m) 산행 얘기로 시작됐다. “오전 7시에 일어나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8시간, 그 더운 날씨에도 샅샅이 탐사했지요.” 이날 스스로에게 부여한 임무는 ‘버섯길 개척’. 이날의 탐사로 그에게는 누에고치 모양의 ‘버섯길 지도’가 땀의 흔적으로 남았다. 최 교수가 소매를 걷어 올렸다. “여길 보세요. 이런 미친 교수가 없으면 누가 해내겠어요?” 온통 상처투성이인 팔뚝. 가시에 찔리고 긁힌, ‘상처뿐인 영광’ 같은 것.

평소의 산행차림이 궁금했다. 요즘 같은 날씨엔 등산복, 배낭, 김밥, 모기채에다 트랜지스터라디오가 필수품이라 했다. 산에서 마주치는 생물 중에 성가신 녀석은 모기와 뱀이고, 이따금 멧돼지와 조우할 때도 있다. “라디오는 멧돼지 퇴치용으로 갖고 다니지요. 기척이 날 때 크게 틀면 금방 달아나지요. 지금까지 사고는 없었지만….”

작년의 울산 야생버섯 사진 1천700종

고향 서울의 보성고교를 거쳐 1979년 2월 서울대 약대 제약학과를 졸업한 최 교수. 그는 그해 3월 연구터전을 대학원과정인 한국과학기술원 생물공학과로 옮긴 후 1981년 2월엔 이학석사, 1984년 2월엔 이학박사의 꿈을 이룬다. 특기할 것은 이 무렵의 전공이 ‘독성학(毒性學, toxicology)’이란 사실. 1999년 2월부터 1년간 포항공대 환경공학부에서 진행한 ‘환경독성학’ 강의도 그런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최석영 교수가 식품영양학과 교수로서 울산대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85년 3월, 햇수로 치면 36년차다. 버섯과의 인연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그러나 ‘버섯사진 촬영’에 본격 뛰어든 것은 2007년 여름부터였고, 연구년(안식년)인 2009년에는 ‘울산전역 탐사’의 기록도 세웠다. 그가 사진에 담은 울산의 야생버섯은 울산생명의숲 ‘버섯탐구회’ 지도교수직을 맡은 2016년에는 1천400종이었으나 지난해에는 1천700종으로 불어났다.

그랬던 그가 올해부터는 영토 확장 사업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뛰어들었다. ‘영남알프스 버섯연구회’ 창립의 깃발을 높이 든 것. 이 야심찬 사업에 뜻을 같이한 지인들이 있다. ‘마당발’ 김언배 교수와 양항석 전 대흥농산 대표(58, 사진작가). 대흥농산이라면 국내 식용버섯의 30%를 생산하는 경북 청도군에서도 ‘알짜배기’로 불리는 기업. 김 교수는 특히 이 사업에 자연생태계에 관심이 깊은 양산 통도사 방장 성파스님(82)을 모시는 일에 숨은 공을 들였다.

울산생명의숲 버섯 탐구회 회원들과 함께.
울산생명의숲 버섯 탐구회 회원들과 함께.

 

추진위원 3인방의 통도사 성파스님 모시기

최-김-양 추진위원 3인은 현재 성파스님 회장 추대 카드를 뽑아 들고 최종작전에 돌입한 상태. 6월 14일 발족 행사 직전까지는 좋은 소식이 들려올 것으로 기대하면서 촉각을 곤두세운다. 추진위원들의 열정과 실천의지에 감탄한 성파스님은 ‘영남알프스 버섯연구회’ 현판을 직접 써서 연구회에 기증했고 최 교수에게는 통도사 서운암 경내에 버섯 연구 공간을 선뜻 내준 것으로 전해진다.

울산생명의숲 버섯탐구회 지도교수이기도 한 최 교수가 버섯연구회 이름 앞머리에 굳이 ‘영남알프스’를 집어넣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버섯 생태(학습)원’, ‘버섯 테마파크’ 조성의 꿈을 실현하고픈 욕망이 너무도 강했기 때문. 그의 이런 면면은 영남알프스를 울산, 양산과 같이 끌어안고 있는 밀양시에 장문의 사업제안서를 제출한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사업제안서에서 최 교수는 ‘Mushroom Park & Mushroom Market(버섯공원과 버섯시장)’이란 표현을 거리낌 없이 구사했다. ‘세계 최초·최고의’라는 수식어도 덧씌워가며….

이해를 도울 겸 농촌여성신문의 인터뷰 기사(2016.3.10.)로 잠시 돌아가 보자. “앞으로는 실생활과 연결된 버섯 연구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영농조합이나 기업, 지자체, 정부의 의뢰로 ‘버섯 테마파크’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길 계기가 마련된다면 적극적으로 도울 생각입니다.” 그의 이 생각은 만고의 진리인양 여전히 불변이다.

친필로 빚은 '영남알프스 버섯연구회' 현판과 통도사 방장 성파스님.
친필로 빚은 '영남알프스 버섯연구회' 현판과 통도사 방장 성파스님.

 

“야생버섯 생육 여건, 석남사 계곡이 최고”

울산 근교의 버섯 탐사 얘기를 따로 듣고 싶었다. 지난 1월의 <태화강 대곡천 야생버섯 사진 전시회>까지 합치면 올해로 벌써 4회째 울산의 야생버섯 사진전을 마련한 최 교수는 그 스스로 대가(大家)임을 부정하지 않는 ‘야생버섯계의 대부(代父)’다. 다음은 생생한 경험담의 일부.

“‘태화강 100리길 최고의 하이라이트’, ‘백운산 태화강의 발원지’, ‘비밀의 정원’이라고도 부르는 두서면 미호리~탑골샘의 대곡천 상류 가매달 계곡이 너무 좋지요. 야생버섯만 보자면 석남사 계곡이 일등이고. 제 경험으론 비온 뒤 축축한 습지에서 버섯이 잘 돋아납디다. 그래서 비가 온 다음날 누구든지 나를 부르면 되게 싫어하죠. 버섯 탐사에 방해가 되니까.”

그러면서 최 교수는 나름의 생각을 풀어헤쳐 보였다. 1차 산업이 생산, 2차 산업이 가공, 3차 산업이 관광이라면 6차 산업은 이 세 가지를 하나로 묶는 융·복합형 산업이라 할 수 있다는 지론이었다. 버섯생태원을 꾸미게 된다면 생산은 물론 체험학습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중국·일본 큰 시장…6차 산업이 승부수

중국과 일본, 미국이라는 큰 시장을 가까이에 두고 있는 만큼 우리의 활로를 버섯에서 찾자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네덜란드에는 꽃시장, 한국에는 버섯시장”, “버섯산업은 6차 산업의 총아”라고 힘주어 말하는 최석영 교수. 그가 평가하는 우리의 버섯 재배기술은 일본에 이어 2위. 그러나 일본 따라잡기는 시간문제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석·영’ 이름 석 자는 심심찮게 언론에 오른다. 희귀 야광버섯 ‘받침애주름버섯’을 2016년 7월 석남사 계곡에서 찾아냈을 때도, 비슷한 태화동 유곡중학교 뒤편에서 ‘도깨비광대버섯’을 국내 최초로 발견했을 때도 그랬다.

<2019 국립공원 자연자원조사, 고등균류 분야(지리산국립공원, 한려해상국립공원)>를 비롯해 13건의 보고서를 냈고, 특허(‘버섯의 기체치환 포장방법’, 등록일 2006.12.12.)도 1건 보유하고 있다. 그만의 블로그는 ‘한국의 야생버섯(http://blog.daum.net/foodtox)’.

영세명이 ‘비오’인 그는 주일마다 중구 우정성당을 찾는다. 부인 이난수 여사(63)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둔 다복한 가정.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장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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