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강의 기구한 팔자, 검정말
샛강의 기구한 팔자, 검정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5.31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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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은 오산(鰲山) 만회정에서 십리대밭교 쪽으로 뻗은 길이 약 1.1km의 실개천으로 옛날 이름은 ‘열녀강’이었다. 필자는 매일 아침 조류 조사를 하러 이곳을 찾는다.

샛강에는 흰뺨검둥오리, 쇠물닭, 개개비, 제비 등 평균 13종 이상이 관찰된다. 특히 개개비는 제철을 만난 듯 아홉 마리나 관찰됐다. 부들, 물억새, 갈대, 달뿌리풀 풀숲을 옮겨 다니며 ‘개-개-개-’하는 울음소리를 쉼 없이 낸다. 번식기 울음에는 세력권 과시, 암컷 유인의 두 가지 목적이 있다. 그 사이사이 작은 몸집의 쇠물닭은 꽁지깃을 연신 까닥거리며 먹이 찾기에 열중하다 간간이 금속성 소리를 크게 낸다. 몸집은 작아도 두루미 목(目)이라 울음소리가 커서 멀리까지 들린다.

꽃양귀비, 수레국화, 안개꽃이 화려함을 다한 끝에 갈아엎기를 기다리는 요즈음, 개개비와 쇠물닭은 샛강의 주인공으로 깜작 등장해 탐방객들의 발걸음을 끌어내며 귀와 눈을 즐겁게 해준다. 반면 샛강에서는 주관적 행동의 현장을 볼 수 있어서 서글퍼질 때도 있다. 기구한 신세 탓인지 샛강과의 잘못된 만남 때문인지 검정말의 팔자(八字)는 찾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만든다.

검정말은 큰 키 전체가 물속에 잠겨 자라는 침수식물로 자라풀과 같은 여러해살이 수초다. 줄기는 가늘고 약하고, 키는 30∼60㎝로 마디가 많으며, 잎은 녹색으로 광합성을 한다. 줄기 밑부분 마디에서 수염뿌리를 내리고 산다. 검정말은 또 수심이 깊은 환경에서는 건강하고 연한 녹색으로 군집을 이루어 큰 키를 물결에 맡기면서 싱그럽게 산다. 특히 흐름이 약하거나 빠른 물속, 실개천이나 깊은 못, 연못을 안 가리고 뿌리를 내린 채 집단으로 모여서 산다. 자세히 살펴보면, 흐르는 물속에서는 연한 녹색이지만 물이 고이거나 유속이 느린 곳에서는 짙은 녹색 또는 흑갈색을 띤다. 못같이 수심이 깊으면 키대로 서 있지만, 수심이 얕으면 키대로 길게 누워 있다.

어릴 적 여름날 연못 속의 검정말 숲을 헤치면 울긋불긋 화려한 버들붕어가 숨어 있다가 멈칫멈칫 헤엄치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런 검정말이 샛강에는 반드시 필요하다. 광합성으로 물속에 산소를 공급해 수질을 정화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11일 오후 4시께, 태화강국가정원 오산못 일원에서는 국가정원 내 실개천 유지수 확보사업의 준공을 기념하는 통수식 행사가 열렸다. 울산시는 그동안 오산못과 실개천으로 유입되는 인위적 수량이 적어 수위가 낮고 탁도가 높아 실개천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되자 개선공사를 시작했다. 지난해 9월부터 사업비 14억원을 들여 중구 다운동~태화강국가정원 실개천 2.5㎞ 구간에 지름 400~500㎜ 크기의 송수관로를 파묻는 ‘국가정원 실개천 유지수 확보사업’에 들어가 이날 준공식을 가졌다.

“울산시는 태화강 국가정원의 오산못과 실개천에 하루 용량 1만t 규모의 맑고 깨끗한 물을 흐르게 돼 수변공원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11일 밝혔다.”(본보, 2020.5.12일자) ‘하루 용량 1만t 규모의 맑고 깨끗한 물이 샛강에 공급된다…’는 기사를 좋아서 몇 번이나 흥얼거렸다. 이유는 검정말 때문이었다. 매일 샛강의 검정말을 볼 때마다 누워있어서 안쓰러운 생각이 들곤 했었다.

샛강은 지금껏 태화강 물을 바로 끌어들이지 못해 생태환경이 열악하다. 특히 샛강 물속의 대표식물인 검정말은 수심이 낮고 유속이 없어 긴 몸을 드리운 채 누워있었다. 이 때문에 건강하고 연한 녹색을 되찾지 못하고 병든 짙은 녹색과 흑갈색을 띠어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 샛강을 찾을 때마다 상쾌함은커녕 피로감만 쌓여 갔다. 그러던 차에 통수식 이후 매일 1만t 규모의 맑고 깨끗한 물이 공급된다니 기쁠 수밖에.

한 달이 채 안 된 현재의 상태는 어떠할까? 샛강은 여전히 수심이 얕고 물의 흐름이 약하다. 그런데 통수식 이후 뚜렷한 변화가 생겼다. 통수식이 있은 얼마 후 오산다리 주변에 길게 드러누워 있던 검정말이 깨끗하게 치워진 것이다. 또 얼마가 지나지 않은 시점, 이번엔 오산다리와 징검다리 사이의 검정말마저 감쪽같이 사라졌다. 개구리는 배를 깐 채 옹알거렸고, 쇠물닭은 양탄자로 삼았으며. 붕어는 숨바꼭질을 즐겼고, 오리새끼는 어미를 따라 먹이를 찾아다녔으며, 소금쟁이는 수면 스케이트 타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검정말….

그런데 검정말이 사라지니 덩달아 이 녀석들도 보이지 않는 게 아닌가.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한참이나 샛강을 바라보며 서성거렸다. 몇 걸음 걸었을 때 달뿌리풀 풀숲 사이로 난 서너 개의 고라니 길이 눈에 들어왔고, 그 길을 따라 샛강 가까이로 다가갔다. 순간 버드나무 아래에 쌓여있는 검정말 더미가 시야에 잡혔다. 한동안 멍했다. 몇 컷의 사진을 남겼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그런지 바로 앞 부들 군락지에서는 개개비가 목 놓아 슬프게 울고 있었다. 문득 ‘늙기도 서러운데 짐까지 지실까?’라는 송강의 시구가 생각났다. 검정말이 사람 말을 한다면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누워있기도 서러운데 제거까지 하실까?’ 기구한 것이 샛강 검정말의 팔자(八字)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조류생태학박사·철새홍보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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