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 한국화라 불러야”
“민화, 한국화라 불러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5.31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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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佛紀) 2564년 5월 29일 오후, 햇볕이 불볕 같은 양산 통도사 성보박물관 앞 광장. 햇빛 가리는 모자와 감빛(紅枾色) 승복 차림의 스님들이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채운다. 가지런한 의자 사이의 거리와 희고 검은 마스크가 코로나19에 대비한 영축총림(靈鷲叢林) 통도사의 ‘생활 속 거리두기’ 준비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해준다.

이날 행사의 이름은 ‘세계문화유산 통도사와 함께하는 치유와 상생을 위한 기획전-통도사 옷칠민화 특별전’으로 비교적 긴 편. 처음엔 4월 25일부터 5월 10일까지 보름 동안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한 달 넘게 길을 내주지 않았다.

삼귀의례(三歸依禮)-반야심경 봉독-주지스님 인사-내빈 축사가 뙤약볕에 달구어진 박물관 광장을 서서히 식히고 있었다. 한참 만에 이날의 주인공이자 서운암 주인인 성파 방장(方丈)스님이 연단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말문을 열었다. “세계 미술을 다 봐도 민화(民畵)는 한국 토종입니다. 한국에서 생겨났고, 완전히 한국적인 것이고, 세계 어느 미술 장르에도 없는 독특한 화풍(畵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민화를 ‘한국화’라 해야 된다, 그런 주장을 하고 싶습니다.”

늘 온화한 표정의 스님인데도 이날따라 ‘한국화’를 강조하는 대목에서는 듣는 이들이 장작가마의 열기를 느껴야 했다. “일본사람이 ‘조선의 민화’라 했다고 해서 이름을 그대로 불러야 된다는 법이 있습니까? 통도사 성파스님이 이 민화를 한국화라 해야 된다고 해서 그 이름을 안 불러야 된다는 법이 있습니까? 우리 ‘독도’를 일본사람이 ‘다케시마’라 한다고 해서 우리가 독도라고 안 부르고 일본사람이 부른 그대로 다케시마라고 불러야 되겠습니까? 이것은 우리가 예사로 넘길 문제가 아니고 깊이 한번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대한불교조계종단에서도 손꼽히는 ‘예술가스님’의 그 어디에 이런 우국충정(憂國衷情)이 다 숨어있었나 싶을 정도로 팔순(八旬) 노스님의 말씀은 의로운 기운으로 넘쳐났다.

“우리 민화의 화풍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독특한 장르라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이번 전시회의 뜻은 한마디로 ‘민화’를 ‘한국화’라 불러야 된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 대해 전국 미협의 이사님께서 예술적, 회화적 가치가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지만 저는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이 화풍을 많이 발전시켜 우리 민족이라면 누구나 ‘이것이 한국화다’ 하고, 전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 봐도 ‘이거 한국화네’ 하고 알아주기를 원하고, 그런 뜻에서 이번 전시회를 연 것입니다. 그림은 별것 아니고 하찮은 것이지만 뜻은 큰 뜻이 있다, 그렇게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파스님 옻칠민화의 소재는 얼핏 보기에 조선조 민화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옻판에 옻칠’을 해서 그려낸 성파스님 특유의 민화이기 때문이다.

성보박물관 전시실을 장식하고 있는 ‘미륵존’, ‘연화도’, ‘책가도’, ‘금강산도’, ‘맹호수기도’를 비롯한 전시작품 100여 점 모두가 독특한 옻칠 기법의 작품들이다. “18세기 이후에 등장한 민화에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중생의 염원이 깃들어 있다.” 스님의 말씀이다. 그래서일까, 옻칠민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처님 손’ 모양의 남방과일 ‘불수과(佛手果)’를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찾아낼 수 있다.

전시회는 6월 28일까지 이어진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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