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과 정보
알람과 정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5.28 23: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핸드폰에서 음악이 나온다. 썸씽 스튜피드. 영화 물랑루즈에 나오는 오리지널사운드트랙이다. 이 노래가 내 핸드폰에서 울리는 시각은 월요일에서 금요일, 오후 일곱 시 사십 분이다. 디지털 기기의 특색이 무엇인가? 딱 정한 룰에 따라 어김없이 일을 수행하는 것 아니던가. 한번 설정해 놓으면 또 다른 명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빈틈없이 반복하는 이 행위는 마치 하루가 해 뜨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늦은 저녁을 먹다가 혹은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 혹은 식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듣는다.

음악 알람을 듣는 반응은 식구마다 다르다. 아이들은 이 노래의 음률과 멜로디에 물리고 남편은 내색은 안 하지만 반가워하는 눈치다. 이 노래가 나오는 영화를 좋아하는 까닭이다. 니콜 키드만과 이안 맥그리거가 함께 부르는 노래, 둘의 음색은 꽤 매력적이다.

이 노래를 굳이 같은 시각에 울리도록 알람을 해 놓은 이유는 딱히 없다. 그저 예전에 즐겨봤던 시트콤, ‘하이킥 시리즈’를 시청하던 시절 정했던 알람이다. 시트콤이 막을 내린 지 한참 지났다. 더는 알람이 울리는 시각에 시작하는 프로그램도 즐겨 찾는 프로그램도 없다. 알람을 없애지 않은 것은 그 시절로, 그 시간으로 돌아가는, 타임 슬립이라도 하는 양 느껴지는 것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알람이 알람으로 구실을 못하더라도, 무의미하더라도 날마다 똑같은 시각에 노래를 듣는 것은 뭔가 오늘을 정리하는 느낌이다. 간혹 알람이 울리지 않아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극장에 간다거나 공연을 보러 갈 때 혹은 제사 같은 집안 행사가 있을 때다. 사실 엄숙하고 조용한 자리에서 알람이 울려 당황한 적도 많다. 이후 신경 써서 알람을 끄긴 하지만 알람을 지울 생각은 없다.

무릇 알람이란 어떤 의미인가? 문제나 조건에 맞추어 경고를 주는 장치라는 뜻이 아니던가. 잊어버리기 쉬운 일을 일깨워준다. 하이킥 알람은 저장해 놓은 알람 중에 가장 오래 살아남은(?) 알람이다.

며칠 전 하이킥 알람이 바뀌었다. 정확히는 하이킥 알람 음악이 변했다. 하이킥 음악이 울릴 때마다 반강제적으로 듣던 노래를 바꾼 것이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다. 변화가 오니 반응도 다르다. 바뀐 노래에 맞춰 아이들은 흥을 돋우기도 하지만 나는 왠지 허전한 생각도 든다. 일상이 변한 요즘이라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경고의 의미로 다가온 질병으로 많은 변화를 느끼는 나날이다. 다시 이전으로 되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경고에 두려움이 앞선다. 약속을 잡고 만나서 웃고 떠들고 함께한 우리의 일상이 그립다. 언젠가부터 타인의 사생활이, 동선이 질타의 대상이 되어서 더 그렇다.

정보는 경고의 바로미터이다. 시간대별로 낱낱이 쏟아지는 타인의 정보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끈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행동이 왜, 도대체 라는 비난을 받으며 뭇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정보가 많아야 알람도 제 기능을 한다. 정보의 부족함에 답답함과 목마름을 동시에 느끼는 나날이다. 우리 지역의 정보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 기자와 관계자를 대상으로 하면서 시청 공무원은 늘 서면자료를 보고 읽는다. 하지만 서면 브리핑 자료는 기자들과 관계자들의 전유물인지 찾아보기 힘들다. 시청 홈페이지, 각 구 군청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자료는 동선 자료와 통계자료 이외에 별 게 없다. 공무원이 작성해서 건네는 보도자료 중 기자는 보도의 가치를 선별해서 보도할 것이다. 심지어 우리 지역에 대한 뉴스를 다른 지역 신문이나 포털사이트에서 접할 때도 적지 않다. 시청이나 구청에서 운영하는 공식 SNS에 올라오는 정보는 행정 광고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과연 시민은 기자가 보도하는 것만을 들어야만 할까? 차라리 서면 브리핑 자료를 많은 시민이 보는 곳, 예를 들어 시청 홈페이지 보도자료에 올려주면 더 좋겠다. 비상시국, 공무를 담당한 이들의 노고와 수고는 정말 고맙다. 객관성을 담보한 정보, 거르지 않은 정보가 정확히 시민에게 전달되었으면 싶다.

박기눙 소설가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