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제의 자연산책] 변신의 여왕 수국
[조상제의 자연산책] 변신의 여왕 수국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5.27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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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松花)가루 사랑 찾아 온 세상을 물들이고, 아카시, 밤꽃 향기가 한바탕 벌·나비를 유혹하고 나면 어느덧 여름은 찾아옵니다. 여름 무더위가 시작되면 그렇게도 많던 꽃들은 자취를 감추고 몇 안 되는 여름꽃이 우리 곁을 찾아옵니다.  
한라산의 산철쭉을 늘 동경해 오다 지난해 드디어 6월에야 영실에 올라 그리던 그 꽃을 만났습니다. 거기다가 제주기행에서 뜻밖에 화우(花友) 수국(水菊)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6월의 제주는 수국 천지입니다. 제주허브동산, 휴애리, 여미지식물원, 카멜리아힐, 민속촌, 절물자연휴양림 등 어디를 가든 수국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주 수국의 꽃 색은 너무나 황홀합니다. 다른 곳의 수국은 풍성함과 우아함에서 제주의 수국을 따를 수 없습니다. 여미지식물원의 수국 동산에는 별수국이 좋습니다. 제주허브동산에는 푸른 하늘아래 푸른 수국이 뭉글뭉글 핀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제주수국의 블루색은 동산을 찾은 여인의 원피스 색을 닮았습니다.  
그 아름답고 황홀한 수국. 학명은 히드란게아 매크로피라 오탁사(Hydrangea macrophylla for. otaksa)입니다. 아시죠? 학명은 속명, 종소명, 명명자로 이루어진다는 것. 속명은 그 종의 속성을 나타내고, 종소명은 그 종의 특징을 나타낸다는 것. 속명인 ‘히드란게아’는 그리스어로 ‘물’이라는 뜻이고, ‘매크로피라’는 ‘큰 잎’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수국은 말 그대로 물을 아주 좋아하고, 큰 잎을 가진 꽃이란 뜻입니다. 한자로도 水菊이니까 ‘물을 좋아하면서 마치 국화처럼 풍성한 꽃을 피운다’라는 뜻입니다. 수국은 실제로 약간 그늘진 북사면에서 잘 자라고 물을 무지무지하게 좋아합니다. 중국에서는 수구화(繡毬花)라고 부르죠. 비단으로 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답고 둥근 꽃이라는 뜻입니다. 
그럼 명명자 오탁사(otaksa)는 뭔가요? 
18세기 스웨덴의 분류학자 린네가 ‘자연의 체계’(1735년)란 책에서 학명의 명명자에 식물을 최초로 발견한 식물학자의 이름을 넣도록 함에 따라 많은 유럽의 식물 헌터들이 19세기 들어 진기한 식물들을 찾아 아시아, 아프리카 등으로 식물 사냥을 떠납니다.
네덜란드의 식물학자 주카르느(Zucarnii : 1797~1848)가 약관 28세의 나이에 식물조사단으로 일본에 와 있다가 ‘오타키’라는 기생과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녀는 변심을 하고 다른 남자에게 가버립니다. 가슴앓이를 하던 주카르느는 수국의 품종 종소명에 ‘오타키’의 높임말인 ‘otaksa’를 넣어 변심한 애인의 이름을 만세에 전하게 됩니다. 그래서인가요. 수국 꽃은 피는 시기에 따라, 토양의 성질에 따라 꽃의 색깔이 변합니다. 처음엔 연두색으로 시작해서 흰색으로, 푸른색으로, 붉은색으로 변합니다. 또한 수국은 같은 나무일지라도 토양이 산성이면 푸른색 꽃이 피고, 중성이면 흰 꽃이 피며, 알칼리성이면 붉은색 꽃이 핍니다. 때문에 토양의 산성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선 수국 하면 푸른색이 떠오르지만 토양이 알칼리성인 유럽에서는 수국 하면 붉은색 꽃을 떠올린다고 합니다.
수국 3그루와 새로 산 별수국 등 2그루를 포함한 수국 5그루, 행복정원의 식구가 되었습니다. 그 해 여름 꽃은 몇 송이 피지 않았습니다. 이듬해는 1월에 기온이 두 번이나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져 꽃눈이 거의 얼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듬해 여름에도 그다지 좋은 꽃을 보지 못했습니다. 수국 전지에 온 정성을 쏟은 다음해는 수국이 풍성하고 황홀하게 잘 피었습니다. 수국은 꽃눈이 10~11월경 생기는데 이듬해 좋은 꽃을 보려면 이 꽃눈을 잘 보존해야 합니다. 수국은 구지개화(舊枝開花)로 한해 묵은 가지에서 돋은 새가지가 두 마디 자란 위치에서 꽃이 달립니다. 따라서 수국은 전지(剪枝)를 꽃이 지고 나면 바로 해 주어야 합니다. 수형을 바로잡는다고 늦가을이나 이른 봄에 전지를 하면서 꽃눈을 잘라버리기라도 하면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수국 꽃은 볼 수 없습니다. 반면에 신지개화인 나무수국은 늦가을이나 이른 봄에 전지를 해도 됩니다.
전 세계 수국 속 80여 품종 중 최근에는 산수국을 개량한 일반수국, 1957년 미국에서 들어온 아나벨, 네덜란드에서 온 라임라이트 나무수국, 별수국 등이 식물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사랑받는 수국을 옆에 두고 싶습니다. 오늘도 시원한 6월을 수국과 함께 하기 위해 개구리연못 주변에 수국을 심습니다. 

   

조상제 범서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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