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토함~무룡산 능선에 펼쳐진 찬란한 슬픔의 봄
5월, 토함~무룡산 능선에 펼쳐진 찬란한 슬픔의 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5.26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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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 스마트폰 울림에 놀라 불에 덴 사람처럼 일어났다. 토함산~무룡산의 종주산행을 약속해놓고 알람 소리를 미처 못 듣고 잠이 들었던 것이다. 토함산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전 5시 31분. 동쪽 전망을 바라보는 망원경 부근에서 사람들이 일출을 감상하고 있었다. 해는 이미 떠올랐으나 옅은 구름의 화선지 덕에 빛살을 내지 못한 채 중후한 검붉은 색으로 두둥실 떠 있었다. 토함산(745m) 지명의 유래가 생각났다. 동해의 안개와 구름을 삼켜 앞을 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가 일출이나 일몰 때 낙락장송과 산봉우리가 한데 어우러진 한 폭의 수려한 동양화를 토해내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가 그렇게 붙였다는 설에 나도 몰래 공감이 갔다.

서둘러 석굴암 일주문 앞에서 왼쪽 경사면을 따라 토함산 정상으로 향했다. 오르는 도중 철쭉, 애기나리, 둥굴레들이 반겨준다. 성화채화지에도 잠깐 들렀다. 6시 8분, 오늘 산행의 출발지인 토함산 정상에 도착했다. 산정의 배나무 두 그루에는 배꽃들이 막 수분(受粉)하기 좋게 피어있었다. 바람에 꽃잎의 일부가 찢어졌을 뿐 동상해는 입지 않았다. 정상의 추운 날씨로 개화시기를 늦추어 냉해를 비켜가는 지혜가 감탄스러웠다. 따뜻했던 지난겨울 탓에 울산에서는 배꽃 개화시기가 빨라 동상해를 세 번이나 입은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개화시기가 늦은 ‘황금’이나 ‘그린시스’ 품종으로 바꿀 필요성을 토함산 정상 배꽃을 보고 한 번 더 실감했다.

드디어 토함산에서 무룡산까지 능선 길 28km의 출발이다. 다시 왔던 길을 따라 토함산 자연휴양림 쪽으로 가는 길가에는 개심사에서나 볼 수 있다는 귀한 청벚꽃이 겹벚꽃과 함께 흐드러지게 피어 우리를 반기고 민들레, 제비꽃이 아스팔트 틈새로 줄을 서듯 피어있다. 토함산 목장지대에 이르니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쉼 없이 돌아가고, 전망대 주차장에는 전날 차량 위에서 텐트 야영을 마치고 차량과 오토바이로 경관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시야에 잡혔다. 8시 2분, 전망대에 올라 빵과 김밥과 달걀로 아침을 먹고, 개방된 화장실에 들러 손을 씻는데 따뜻한 물이 나와 감사했다. 친환경에너지 공급원인 풍력발전기 1단계는 경주 조항산 일원에 2.4MW 7기(16.8MW)가 설치되어 연간 약 3만9천588MWh의 전력을 생산해서 약 1만2천 가구에 혜택을 주고, 온실가스 감축량은 연간 CO₂약 2만5천 톤이나 되어 20년생 소나무 약 8백만 그루의 대체효과가 있다는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두 번째 정상인 조항산(562m)은 목장 끝자락에 위치해 정상 표지석에서 간단하게 사진만 찍고 진달래, 둥굴레, 철쭉, 병꽃, 조개나물 사이를 지나 2단계 풍력발전기가 힘차게 돌아가는 신작로 같은 길을 따라 지겹게 걸어갔다. 2단계 전망대에 올라 풍력발전기 소리를 귀에 담으면서 1단계 7기에 이어 2단계 9기마저 설치가 끝났음을 눈으로 확인했다. 총 16기에서 계산상 약 2만7천400가구에 공급할 친환경 전기가 생산됨을 알 수 있었다.

울산에도 건설되는 해상풍력단지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11시 1분, 마우나 골프장 뒷산 삼태봉(629m)에 도착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갑갑하던 일상을 날려 보내기라도 하려는 듯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올라오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관문성을 거쳐 기령까지 여기저기 만발한 철쭉 군락을 감상하면서 시원스레 걸어갔다. 낮 12시 정각, 기령에 늘어선 포장마차 한 군데를 골라 칼국수와 맥주, 햇반을 곁들여 점심을 먹었는데, 사람들로 붐비는 포장마차의 행렬은 코로나19 사태가 가져다준 일상탈출의 진풍경, 그것이었다.

무룡고개까지 앞으로 14km. 속도를 내기로 했다. 신흥재와 마동재를 거쳐 마침내 4번째 봉우리인 동대산(447m)에 오후 1시 36분에 도착한 뒤 정자에서 20분 남짓 눈을 붙이니 먼지처럼 쌓인 피로가 일시에 씻겨 날아간 듯 개운했다. 멀리 북구 하우스단지와 문수산 남암산이 그림처럼 펼쳐져 다가왔다. 대안마을 달령재 서당골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지나면서 무룡산이 가까워짐에 감사했다. 무룡산으로 향하는 마지막 오르막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니 조국 사랑탑이 바로 눈앞이다. 뒤이어 아홉 마리 용이 춤을 추어 비를 내려준다는 산 무룡산(舞龍山, 451m) 정상에 도착해서 뒤를 돌아보니, 토함산의 안개와 이어진 철쭉능선이 풍력발전기의 바람에 실려 무룡산의 용이 되어 승천하기 위한 찬란한 슬픔의 봄을 연출하고 있었다.

윤주용 울산시농업기술센터 소장·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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